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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브리즈번 워킹홀리데이]

-EPISODE 014-

해리포터가 아닌 레드클리프(Redcliffe)




 1992년 생인 나에게 '레드클리프'는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주인공을 연기한 배우의 이름으로 익숙하다. 해리포터의 첫 시리즈인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은 나를 비롯한 전국의 초딩들에게 재미와 함께 충격을 안겨준 영화였다. 초등학교가 아닌 마법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이라니! 우리들에게 해리포터는 점심시간마다 '해리포터 놀이'를 할 정도로, 학교의 작은 도서관에 해리포터 책이 꽂혀있는 날이 없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아마 내 또래의 사람들 중에 해리포터를, 그리고 영화에서 해리포터 역을 맡은 다니엘 레드클리프(Daniel Radcliffe)를 모르는 사람을 없을거다.


 어쨌든 어렸을 때부터 해리포터 주인공 이름으로만 알아왔던 레드클리프(Redcliffe)는 호주 브리즈번 북쪽, 바닷가 앞 작은 마을의 이름이기도 했다. 





 날 좋은 일요일 오후, 기차 타고 버스도 타고 한참을 달려 레드클리프에 도착했다. 매번 대중교통만 이용하며 드넓은 호주를 여행하고 있는데 낭만은 있지만 갈수록 체력이 없어진다. 더 자유로운 싸돌아다님을 위해 아무래도 차가 있어야 할 것 같다. 한국에서는 딱히 필요성을 못 느꼈는데 확실히 호주는... 넓어도 너무 넓다. 이 날도 브리즈번 시티에서 레드클리프까지 대중교통으로 오는데 2시간은 걸린 것 같다.

 도착하자마자 우리의 눈에 띈 건 윙- 소리를 내며 하늘을 빙글빙글 돌고 있는 글라이더. 2시간을 달려온 우리를 반겨주는 것 같았다. 초등학교 땐 과학의 날마다 글라이더나 고무동력기를 만들곤 했었는데.. 요란하게 머리 위를 맴도는 글라이더를 보며 우리는 잠시 초딩 시절 만들던 그 글라이더를 추억해보았다. 1교시부터 4교시까지 내내 만들었지만 1m를 채 날지 못하던 내 글라이더...



Redcliffe Yabbey Road



 남들 다 쉬는 일요일에도 열심히 오전 노동을 한 나는 레드클리프로 향하는 기차에서부터 배가 고팠다. -꼬르륵- 레드클리프는 바닷가 근처 마을인만큼 피쉬 앤 칩스(Fish n' Chips)가 유명하다길래 대충 구글에 검색해서 먼저 나오는 곳으로 찾아가 보았다. 버스정류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있던'Yabbey Road'라는 -왠지 야비할 것 같은- 피쉬 앤 칩스 가게. 딱히 기대 하지 않았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호주에 와서 세 번째로 먹어 본 *피쉬 앤 칩스였는데 이 전에 먹은 두 번의 피쉬 앤 칩스는 다시 갖다주면 못 먹을 정도로 맛있었다. 아니, 호주에서 여태까지 먹어본 호주 음식 중에 가장 맛있었다! 양도 엄청 많고, 냄새도...♥ 맛도...♥_ 

 생선으로 배가 찰까 싶었는데 배가 부르다 못해 터질 것 같아서 남은 건 포장해갔다. 이렇게 배부르고 맛있게 먹고 집에 가서 또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뻤다. 가방에 기름 냄새와 생선 냄새가 스며들고 있었지만 우리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마냥 신날 뿐 XD





 감동적인 해산물 튀김으로 배를 두둑히 채우고 본격적인 관광에 나섰다.

 가장 먼저, 봐도봐도 지겹지 않은 바다가 하늘과 맞닿는 곳까지 펼쳐져 있었다. 유독 날씨가 좋았던 이 날, 햇볕은 뜨거웠지만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나의 온 머리칼을 -과하게- 휘저으며 땀을 식혀줬다. 코끝을 간질이는 바다의 짠내가 참 좋았다.


 사진 속 저~ 끝에 살짝 보이는 섬은 세계에서 세번째로 큰 모래섬이라는 Moreton Island! 호주에서 꼭 가봐야 하는 곳 중 하나라는데 언제쯤 갈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아쉽지만 이 날은 이렇게 멀찍이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thumbRedcliffe Jetty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따라 걷다보니 레드클리프의 랜드마크인 레드클리프 제티(Redcliffe Jetty)에 다다랐다. -여기서 'Jetty'란 우유에 타 먹는 달달한 가루가 아니라 배를 탈 수 있는 '부두'를 의미한다.- 저 멀리 보이는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지평선, 그리고 그 가운데에 뾰족 솟아오른 제티의 빨간 세모 지붕이 평화롭고 안정적인, 그야말로 보고만 있어도 힐링이 되는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과거 Redcliffe Jetty [출처] mustdobrisbane.com



 레드클리프의 제티는 19세기, 정확히는 1885년에 지어져 아주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오래된 흑백영화 속의 한 장면 같은 과거 사진 속 제티는 현재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하지만 그 때도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이 찾는 인기 장소였다고 한다. 가끔 이렇게 옛날 사진을 보면 몇 십 년, 몇 백 년의 시간차를 뛰어 넘어 같은 장소를 공유한다는 것이 참 신비롭게 느껴진다. 





 다시 2016년 현재로 돌아온 제티(Jetty) 한 쪽에는 부두답게 커다란 배가 한 대 묶여있었다. 앞에 Brisbanewhalewatching.com이라고 쓰여있는 것으로 보아 관광객들을 태우고 고래를 구경하러 가는 배인 것 같다. 고래도 보고 싶고, 배도 탈 줄 알지만 돈이 없으니 다음기회에... -또르르- 





 제티는 관광객들 뿐만 아니라 동네 주민들에게도 아주 사랑 받는 장소였다. 운동을 하러, 산책을 하러, 심지어는 낚시를 하러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었다. 특히 주말을 맞아 여유롭게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들의 낚시통도 여유로워보였다. 낚싯대에 대롱대롱 매달려 건져지는 물고기를 구경하고 싶었는데 보기 힘들 것 같아 금방 포기했다. 이곳에서 정말로 물고기가 잡히기는 하는건지 모르겠다. 





 제티에서 내려와 조금 더 가까이서 바라본 바다는, 잔잔하게 육지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해가 조금씩 저물면서 밀물 때가 되었는지 물이 슬슬 들어오고 있는 중이었다. 



갈매기떼



 물이 들어오거나 말거나 갈매기들은 무리지어 서서 누군가 먹을 것을 던져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짧은 다리로 뒤뚱뒤뚱 걸으며 로봇 마냥 고개를 휘젓는 갈매기들이 귀여우면서도 우리 나라의 닭둘기들이 생각나 징그러워 보이기도 했다. 이곳 갈매기들은 분명 사람들이 먹는 감자튀김이나 빵에 더 익숙할 것이다. 닭둘기들이 그렇듯이.. 닭둘기를 닮은 갈매기들을 보고 있으니 새우깡이 먹고 싶어졌다. -손이 가요 손이 가-





 내가 새우깡 생각을 할 때 남자친구는 갈매기들 데리고 놀기에 여념이 없었다. 내가 보기엔 남자친구가 데리고 노는게 아니고 갈매기들이 남자친구를 갖고 노는 듯 보였으나 무척 즐거워보여서 그냥 조용히 지켜봤다. 푸드덕거리는게 꼭 새우깡 하나 집어먹고 신난 까만 갈매기 같다. 





 주인 할아버지와 바닷가에 산책 나온 강아지도 눈에 띄었다. 귀엽다는 생각보다 부럽다는 생각이 앞섰다. 매일 주인 할아버지 따라 이렇게 바다 구경도 할 수 있고, 돈 걱정이나 먹을 거 걱정 없이 마냥 해맑게 뛰다닐 수 있는 저 멍멍이가... 개 팔자가 상팔자라는 말은 괜히 있는 말이 아니었다. 





 갈매기들과 뛰놀고 조금씩 차오르는 바다를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는 사이, 두둥실 떠오른 달이 나무 위에 걸려있었다. 







 핑크핑크 주홍주홍한 하늘을 감상하며 바닷가를 따라 걷고 또 걸었다. 특별한 목적지가 있었다기 보다는 그저 조금이라도 더 보고, 느끼고 싶었던 것 같다. 일요일은 왜 이렇게 짧은건지.. 





 점점 더 해가 저물고 어두워짐에 따라 우리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보고싶은건 아직 많은데 차도 없고 시간도 없고.. 안전하게 집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걸음을 빨리해야 했다. 빨리빨리 지나가는 길에 바람 따라 움직이는 링이 달린 거대한 조형물도 보았다. 버스 타고 지나가면서 얼핏 봤을 땐 기계로 움직이는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바람이 세게 불면 빨라지고, 약하게 불면 느려지는 신기한 링이었다.



 





 신기한 조형물 앞에는 'Bee Gees Way'로 불리는 작은 골목길이 있었다. Bee Gees는 호주의 유명한 형제 팝 그룹이라고 한다. Redcliffe는 이들 형제가 거주했던 곳이자 Bee Gees가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위 사진과 같은 동상은 물론이고 양쪽 벽은 이들의 활동 당시 사진과 그림들로 가득 차있다. 스피커에서는 흘러나오는 이들의 음악은 대부분 익숙한 멜로디였다. 제목은 모르지만 영화나 CF 등에서 많이 들어본 노래들이었다. 

 노래도 좀 더 들어보고, 벽을 가득 채운 사진이나 글들도 읽어보고 싶었지만 밀려오는 어둠에 빨리 자리를 떠야만 했다. 옛날 가수 Bee Gees와의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우리는 바닷가를 따라 걷고 또 걸었다.





 얼마나 더 걸었는지 뒤를 돌아보니 출발지였던 제티가 저 멀리에 보였다. 하늘의 분홍 기운도 점점 더 사라져가고 있었고 여기저기 하나 둘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더 늦기 전에 돌아가야 할 것 같았지만 이대로는 뭔가 아쉬워서 조금 더 걸었다. 어쩌면 나는 일요일 저녁의 끝을 잡고 늘어지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제발 가지 말라고, 아 월요일 좀 오지 말라고! 가야할 때를 알고 돌아서는 일요일의 뒷모습은 아름다웠고 멀지 않은 곳에서 빼꼼히 인사하는 월요일의 앞모습은 얄미웠다. 





 일요일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한없이 늘어졌지만 언제나 그렇듯.. 외면당했다. 언제 밝았었냐는 듯 금세 하늘은 어두워졌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발길이 닿은 곳은 레드클리프의 인공해변, Settlement Cove Lagoon(세틀먼트 코브 라군). *South Bank(싸우스뱅크)에 있는 인공해변과 비슷하지만 도시 한 가운데가 아닌 진짜 바다 앞에 있는 곳이었고, 더 잘 꾸며져 있었다. 해가 진 후여서 사람이 얼마 없어 그랬는지는 몰라도 -아예 없지는 않았다.- 내가 보기에는 싸우스뱅크의 인공해변보다 훨씬 더 좋아보였다. 물론 아쉽게도 둘 다 구경만 했지 직접 물에 들어가보진 못했지만..






 어린이용 풀장에는 나를 뛰어들고 싶게 만드는 귀여운 버섯과 애벌레 모양의 물뿌리개도 있었다. 어둡고 추운 밤이라 물놀이를 하는 아이들은 없었지만 물은 계속 뿜어지고 있었다. 누구보다 신나게, 애들보다 더 애들처럼 놀 자신이 있는데.. 이렇게 예쁜 수영장을 구경만 해야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물놀이...





 당장이라도 뛰어들어 첨벙첨벙 헤엄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우리는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늦은 밤임에도 불구하고 물놀이를 즐기던 몇 안 되던 사람들이 우리 몫까지 신나게 즐겨주었길 바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북적북적 거리던 길거리는 무서울만큼 조용했다. 오후 6시 밖에 되지 않았는데 문을 다 닫아버린 가게들과 듬성듬성 세워져 있는 가로등, 자동차마저도 지나다니지 않는 길거리.. 그리고 가까이에서 들려오는 성난 밤바다의 파도소리는 우리를 겁 먹게 만들었다. 구글맵이 알려주는대로 따라서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지만 정류장에도 역시 사람은 없었고, 지나다니는 차도 없었다. 여기서 버스를 탈 수는 있긴 한건지, 오늘 밤 집에 들어갈 수는 있는건지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버스가 올 시간이 다 되어가니 우리처럼 이곳을 돌아다니던 사람들이 정류장으로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역시 구글이 알려준 정보는 틀리지 않았고, 우리는 무사히 버스를 타고, 기차도 타고 집에 잘 도착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가방 속의 피쉬 앤 칩스는 온기가 남아있지 않음에도 여전히 맛있었다. 살짝 눅눅해진 감자칩까지도..♥ 아무래도 정말 피쉬 앤 칩스를 먹으러 꼭 다시 한 번 가야만 할 것 같다. 그 땐 라군에서 물놀이도 즐겨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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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rney

그만 좀 싸돌아다녀 이것아
@darney.trav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