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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브리즈번 워킹홀리데이]

-EPISODE 016-

암벽을 타기를 배우다. 인생을 배우다.




 주중의 노동으로 인한 피곤함이 채 가시지 않은 토요일 이른 아침. 항상 나에게 좋은 정보를 물어다주는 일본인 친구 나나와 함께 암벽등반을 하러 갔다. 지난 번 *English Conversation에서 만난 일본인 친구가 Free Rock Climbing을 하러오라고 제안했다며. 암벽등반은 물론이고 그 어떤 운동과도 가깝지 않은 나는 재밌겠다는 생각보다는 겁이 먼저 났지만 언제 이런걸 또 해보나 싶어 일단은 가겠다고 했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Kangaroo Point Cliffe



 토요일 이른 아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Kangaroo Point Cliffe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대로 암벽타기를 즐기고 있었다. 이 거대한 절벽이 모자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있어서 깜짝 놀랐다. 주말 늦잠을 잔 우리는 아침 8시에 만나기로 약속하고 9시에 만났지만 나나의 친구는 아침, 아니 새벽 6시부터 암벽을 타고 있었더랬다. 꿀 같은 주말, 잠을 포기하고 암벽을 타는 이 친구들이 멋있고, 대단하다고 느낌과 동시에 평소 같았으면 이 시각 이불 속에서 드르렁거리고 있었을 내 자신을 반성하게 됐다. 같은 시간, 다른 느낌.





 나나의 일본인 친구를 비롯한 함께 Climbing을 하는 외국인 친구들을 만나 반갑게 통성명을 하고 곧바로 나의 생명줄을 붙들어줄 안전장치를 지급받았다. 무료 암벽등반이 친구 찬스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이곳 Kangaroo Point Cliffe에서는 마음껏 무료로 암벽등반을 즐길 수 있었다. 그저 적절한 시간에 가서, 친절해 보이는 누군가에게 '나도 암벽타기 하고 싶은데 껴줄 수 있니?' 한마디면 끝. 이렇게 쉽게 친구도 만들고 '무료로' 건강한 취미도 시작할 수 있다. 대부분의 호주인들은 열린 마음-Open mind-을 가지고 있으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살갑게 웃으면서 다가가는 용기 뿐!


 아침 일찍 일어나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어찌저찌 여기까지 오긴 했는데 안전장치를 입고나니 두근두근대기 시작했다. 정말로 내가 암벽을 탈 수 있을까... 난 둘째가라면 서러운 몸치인데...? 내 차례가 다가올수록 암벽을 타고 있는 친구들이 더더욱 대단해보였다. 잡을 곳도, 디딜 곳도 없어보이는 돌덩어리를 스파이더맨이라도 된 것 마냥 어쩌면 저렇게 잘 올라가는건지!





 나를 겁나게 만든 빨간 안전장치를 입고 약 1시간 정도를 기다린 것 같다. '빨리빨리', '시간이 없어' 하며 한 사람마다 시간 제한을 두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최대한 올라갈 때까지, 포기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기다리는 시간은 길었지만 심심하거나 지루하진 않았다. 따사로운 햇빛 맞으며 오늘 새로 만난 스파이더맨 친구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보니 금방금방 시간은 또 흘러갔다. 



언제나 고마운 일본인 친구 나나



 호주에 오기 전, 일본에서 실내 암벽타기를 해본 적이 있다는 나나는 곧잘 올라갔다. 처음에는 힘들어 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나중엔 다른 친구들이 알려주지 않아도 성큼성큼 잘 올라갔다. 나나가 생각보다 너무 잘해서 놀랐다. -못할 것처럼 말하더니.. 배신자..- 약 40여 분 동안 거대한 암벽과 자신과의 싸움을 치르던 나나는 결국 꼭대기를 터치하고 모든 친구들의 박수를 받으며 자랑스럽게 내려왔다. 땀에 흠뻑 젖은 모습이었지만 그 어느때보다 개운해보였다. 


 박수를 받으며 나나가 내려오고나니,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청기저귀를 차고 돌덩어리를 기어오르는 빨간모자



 불규칙하게 깎여진 거대한 암벽을 탄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암벽을 오르내렸는지 발을 디딜 수 있을만한 곳, 손으로 잡을 수 있을만한 곳은 수많은 터치로 인해 반들반들해져 있었다. 다른 친구들이 알려주는대로 발을 디디고, 손을 뻗었지만 왜 이렇게 미끄러운건지, 안 그래도 미끄러운데 손에서 땀은 왜 뻘뻘 나는지. 또 내 팔다리는 왜 이렇게 짧고 힘이 없는건지!

 이 모임의 대장처럼 보이는 친구가 도와준 덕분에 고맙게도 생각했던 것보다 높이 올라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부턴 정말 나 혼자만의 싸움이었다. 나는 내 사지가 이렇게 따로따로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이 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껴본 것 같다. 왼쪽 다리는 저기, 오른쪽 다리는 여기, 그리고 양 두 팔은 또 각각 요기와 조기에. 한 발자국 더 나아가기 위해서 한 쪽 팔은 또 다른 한 쪽 팔을 위해 더 많은 힘을 써야했고, 그 팔을 위해 다리는 부들부들 떨어야했다. 이 높은 암벽-1미터 쯤 올라갔으려나-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선 팔다리에 붙어있는 그 어떤 근육도 여유를 부릴 수 없었다.


 나를 끌어올려준 그 친구가 'Good Luck!'을 외치고 떠난 후 3분 쯤 더 기어올라 갔을까, 위기가 찾아왔다. 왼쪽 팔만으로 온 몸을 지탱한 채 오른쪽 팔을 쭉 뻗어서 튀어나온 돌을 잡아야하는 구간이었다. 팔근육이라고는 수저 쓸 때만 사용하던 나에게 한 쪽 팔로 균형을 잡으며 또 다른 한 쪽 팔을 뻗는 동작은 너무 어려웠다. 왼쪽 팔에 아무리 힘을 줘봐도 무거운 내 몸뚱아리를 지탱할만큼의 힘은 나지 않았다.

 그 때 밑에서 나의 생명줄을 잡아주는 블레이더 역할을 해주던 Jess의 응원 소리가 들렸다. 도저히 못 하겠어서 내려가려고 했는데 Jess가 계속 'You can do it! You can make it!'을 외쳐줘서 몇 번 더 시도해봤다. 그렇지만 역시... Jess에게 'I can't do this.. i wanna go down..(엉엉)'이라 말했지만 그 친구는 몇 번이고 계속 물어왔다. 'Are you sure? Do you really wanna come down? You can do it! Have guts!' 확실해? 진짜 내려올거야? 너 할 수 있어! 한 마디 한 마디가 돌을 붙잡고 있는 내 근육에 달라붙는듯 했고 그 힘으로 계속 도전했다. Jess는 원투쓰리가 한국어로 뭐냐며, 일이삼!을 외쳐가면서까지 끊임없이 응원해줬다. -일이삼이 아니라 하나둘셋이라 알려줬어야 했는데...-


 그 순간 뒤돌아 바라본 브리즈번 강의 경치와 목이 아플텐데도 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며 너는 할수있다며 외쳐주는 Jess를 보며 창피하게도 눈물이 날 뻔 했다. 제대로 하지 못해서, 성공하지 못해서 슬펐다기 보다는 살면서 누군가에게 이렇게 열렬한 응원과 지지를 받아본 적이 없어서 그랬던 것 같다. 감동 받아 눈물이 날 정도로 Jess는 정말 진심으로, 열렬히 나를 응원해주고 있었다.



나에게 폭풍 감동을 안겨준 Jess!



 Jess는 나에게 온 진심을 다해 '할수있다'며 외쳐주었지만 나는 결국 해내지 못하고 마지막으로 묻는 그녀의 'Are you sure?'에 Yes라 대답해버렸다. 아쉬웠지만, 그리고 이 이야기를 '응원을 받아 마침내 성공했다'로 아름답게 끝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하지만 Jess는 중도 포기하고 내려온 나에게 정말 대단했다며, 오늘 처음인데 너가 올라간 저 위치를 보라며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을거라고 또 힘을 실어주었다. 실패했다고 핀잔을 주는게 아니라 그래도 잘해냈다며 다음에 또 해보자는 그 한 마디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고마웠다. 내 하찮은 글솜씨로는 이 때 받은 감동을 1도 표현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Jess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암벽등반을 하는데 힘을 준것은 물론, 커다란 감동과 깨달음도 함께 주었다. 내가 정말 이렇게 누군가의 열렬한 지지를 받아본 적이 있는지 생각해보게 했고, 그 사실로 정말 큰 감동이 되었으며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까지하게 만들었다. 호주에 두 달동안 있으면서 경험한 것들 중 아마 베스트가 아닐까 싶다.

 나에게 이렇게 깊은 깨달음은 준 Jess에게 너의 이름을 꼭 기억하겠다며, 다음에 와서는 꼭 성공하겠다고 약속했다. 아쉽게도 이날 이후로 토요일마다 일을 하느라 가지 못했지만 시간이 되면 꼭 한 번 다시 가서 성공할 예정이다.



thumb


대장 스파이더맨 Gabby



 내가 파도처럼 들이닥친 감동에 흠뻑 젖어있을 때, 이 모임의 대장 스파이더맨 Gabby는 순식간에 꼭대기 근처까지 올라갔다. 내가 오른 곳은 돌이 여기저기 파여있어서 그나마 쉬운 구간이었는데 사진에서 보이듯 대장 스파이더맨이 도전한 구간은 잡을 곳, 디딜 곳으라고는 보이지 않는 완전 평평한 돌덩어리였다. 정말로 손목에서 거미줄이 나오나 싶을 정도로 아무렇지 않게 올라가는 Gabby를 보며 나는 그저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직접 올라가보고, 이게 얼마나 힘든 운동인지를 알고나니 더더더욱 대단해보였다. 뒷산 산책하듯 꼭대기를 찍고 내려온 Gabby에게 Hero 같다고 말했더니 사람 좋게 웃어줬다. 그 웃음은 마블 영화에서 흔히 보던, 악당으로부터 소중한 생명을 지켜낸 후 카메라를 향해 미소짓는 영웅의 모습과 비슷했다. 



채널9 촬영 구경



 한참을 기다리고, 한참을 기어오르고, 또 한참을 구경하고 수다 떨었는데 아직도 해가 중천에 있었다. 새로 만난 친구들과 다음에 또 만나자며 인사를 하고 헤어진게 고작 오후 1시 쯤. 나의 토요일이 이렇게 길었던 적이 있나 싶다.

 기진맥진.. 해가 쨍쨍한 오후 1시에 썩은 야채 마냥 너덜너덜해진 우리는 일단 고픈 배를 채우기 위해 가까운 맥도날드로 향했다. 가는 길에 Kangaroo Point의 전망대에서 브리즈번강과 도시를 뒤로하고 촬영을 하고 있는 뉴스팀을 보았다. 무슨 내용의 뉴스인지 궁금했지만 알아들을 수 없었다.. 뉴스를 알아들을 정도의 영어수준은 아직 아닌가보다.


 맥도날드에서 얼음이 동동 띄워진 시원한 스프라이트와 햄버거를 먹으며 좀 쉬다가 나나와도 다음에 보자며, 덕분에 정말 좋은 경험 했다는 작별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그 후로 집으로 돌아온 것까진 기억이 나는데 내가 언제 잠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기절을 한 것 같다.


 다음 날인 일요일 아침은 온 몸을 쑤시는 근육통에 괴로웠다. -눈 뜨자마자 아이고.. 아이고!- 또 무릎이며 허벅지며 팔이며.. 시퍼렇게 내 피부를 염색한 멍덩어리들이 전날의 무모한 도전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돌을 붙잡는데 힘을 써서 손가락 마디마디까지도 쑤셨다. 주먹을 쥐기 힘들 정도로..

 이후로 약 3일동안 근육통 때문에 고생했지만 값진 경험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힘들고 어려운 암벽등반이었지만 또 생각했던 보다 훨씬 많은 것을 배우고, 또 경험했다. 이 날 근육통과 맞바꿔 배운 것들을 잊지 않길 내 스스로에게 바란다. 그리고 다음에는 반드시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친구들의 박수를 받으며 내려올 것이다. 그 땐 '열렬한 응원을 받아 마침내 성공했다!'로 아름답게 마무리되는 글을 써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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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Darney

그만 좀 싸돌아다녀 이것아
@darney.trav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