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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브리즈번 워킹홀리데이]

-EPISODE 018-

골드코스트에서 발견한 천공의 성 라퓨타




 천공의 성 라퓨타(天空の城 ラピュタ)는 1986년에 개봉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 중 하나로 제목 그대로 하늘 위에 떠있는 성, 라퓨타에 대한 이야기다. 하울이 사는 곳이 삐그덕삐그덕 움직이는 성이라면 라퓨타는 떠다니는 성인 정도? -한국말로는 부유도라고 불린다.-





 '라퓨타'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위 그림과 같다. 뭉실뭉실한 구름들 사이에 가려진 하늘 위 거대한 성의 모습. 

 얼마 전 안작데이에 골드코스트의 Burleigh 지역을 여행하다가 우연히 이 라퓨타가 생각나는 곳을 발견했다. 어렸을 적 영화를 보며 상상했던 바로 그 모습에 아르키메데스가 '유레카!'를 외친 것처럼 나와 남자친구는 '라퓨타!'를 외쳤다. 





 생각보다 훨씬 아름다웠던 *Burleigh Head National Park에서 버스를 타고 Burleigh의 시내로 향했다. 아름다운 그곳에 계속 머물고 싶었지만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라 '동네 예쁜 바다' 또는 '동네 예쁜 공원'에 가까웠던 그곳에는 우리의 주린 배를 채울만한 음식이 없었다. 허기를 달랠 만한 건 주머니 속에 몇 개 들어있던 Mentos 사탕이 전부.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2시간동안 기차를 타고, -쓸데없이- 돌다리도 건너고, 투명한 바닷물에 발도 담그며 노느라 에너지 소비가 매우 컸는데 오후 2시가 될때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2시가 지나자 배고프면 예민해지는 남자친구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지는 것을 발견, 예쁜 공원과는 아쉬운 인사를 나누고 시내로 나왔다. 


 Burleigh는 시내도 아름다운 바다에 둘러싸여 있였다. 조금 전에 있던 Burleigh Head National Park가 동네의 작은 물놀이 공간이었다면 이곳 시내는 서핑보드를 들고 다니는 서퍼들과 거친 파도를 즐기며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이 북적북적한 해수욕장이었다. 아까 있던 곳에 비하면 확실히 사람이 많기는 했지만 그래도 잘 알려진 곳이 아니어서 관광객들이 많거나 하지는 않았다. -정확히는 중국인들이 없어서 좋았다.-





 바다 구경은 잠시 뒤로 미뤄두고 일단 배부터 채웠다. 공휴일이어서 문을 연 가게들이 많지 않았다. 여기까지와서 맥도날드나 KFC를 먹어야하나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그건 아닌 것 같아 구글이 추천해준 그리스 음식점으로 향했다. 우걱우걱 집어삼키며 아침부터 고된 여행(?)에 굶주렸던 배를 채우고 다시 바다 구경을 하러 나왔...는데... 바닷가 앞에 도착하자 타이밍 좋게 비가 내렸다. 쏴아아아- 하며.

 얼굴에 미스트 뿌리듯이 부슬부슬 내리던 비는 몇 분 만에 수도꼭지를 잘못 틀은 것 마냥 장대비로 바뀌었다. 소나기인것 같아 일단은 두꺼운 잎이 무성한 나무 밑으로 숨었다. 파인애플 비슷한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있는 나무였는데 나뭇잎이 두껍고 무성해서 비를 피하기에 딱 좋았다. 





 비는 다행히 금방 잦아들었다. 아직 완벽하게 그친 것도 아니고 조금 전의 장대비 때문에 벤치는 흠뻑 젖어있었는데 이곳 사람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 했다. 버거와 칩스를 들고 젖은 벤치에 앉아 갈매기들에게 나눠주기까지 하는 사람들. 비에 젖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는 이상한 열매 달린 나무 밑에서 이들을 구경했다. 





 비가 내리는게 이상할 정도로 맑았던 하늘은 비가 그치자 무지개 장식을 달았다. 지평선에서부터 시작해 둥그렇게 떠오른 무지개는 골드코스트의 아름다움을 극대화시켜 주었다. 일곱빛깔 무지개 아래 일렁이는 파도와 황금빛 모래, 그리고 그 위를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은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같았다. 저 무지개가 하늘을 뚫고 내 마음도 뚫어버린 것 같다. -빨주노초파남보, 뻥!-





 오른편으로는 무지개 장식을 한 하늘이, 왼편으로는 끝없이 이어진 바다와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었다. 맑게 갠 하늘의 태양빛을 받으며 산책하는 사람들, 모래 위에 누워있는 사람들은 한없이 여유로워 보였다. 언제 비가 왔었냐는 듯 반짝이는 파도와 모래사장, 그리고 저 멀리 물안개에 가려진 도시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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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퓨타!' 카메라 줌을 잔뜩 당겨야 어렴풋하게 보이는 물안개에 가려진 도시의 모습은 라퓨타를 생각나게 만들었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는 경계선, 그 위에 물안개로 희미하게 가려진 도시의 모습은 영화를 보며 상상하던 라퓨타와 매우 비슷했다. 중학교 때 학교에서 라퓨타를 봤다는 남자친구도 내 생각에 동의해줬다. '오 진짜 라퓨타네!'하는 착한 리액션과 함께.

 우리는 한동안 그 신비로운 모습에 반해서 카메라로도 사진을 찍고, 핸드폰으로도 찍고, SNS에도 올리고, 카카오톡으로 자랑도 하고... 이곳에 있는 많은 사람들 중에 우리만 저 풍경에 반해있는 것 같았지만 마냥 좋았다. 오른편의 무지개도 아름다웠고, 왼편의 라퓨타도 정말정말 아름다웠다. 





 따뜻한 태양빛 아래 멋진 풍경을 감상하고 있으니 또 다시 출출해졌다. 손과 입이 심심해진 우리는 조금 전에 구입하고 가방에 넣어두었던 칩스를 꺼냈다. 그리고 예상치못하게 갈매기들의 습격을 받았다. 뒤뚱뒤뚱 거리며 모래 위를 걸어다니는 갈매기들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엄청 귀여웠는데 손에 칩스를 들고 있으니 무서운 갈매기로 돌변했다. 한 마리, 두 마리 씩 푸드덕거리며 날아오더니 막다른 골목의 양아치들 마냥 우리를 둘러쌌다. 심지어는 위협적인 모습으로 날아오르며 칩스를 낚아채가려고 하기까지 했다.

 갑작스런 갈매기들의 습격에 당황한 우리는 출출함은 달래지도 못하고 다시 가방에 칩스를 넣어버렸다. 호주에는 한국에서 흔한 닭둘기들이 없어서 좋다고 생각했었는데 닭둘기보다 훨씬 공격적인 갈매기가 있었다.. 다시는 이들 앞에서 무언가를 먹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무서운 놈들.






 구름이 더 걷히고 파란 하늘이 드러나자 조금 전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밀려들어온 파도로 다져진 모래는 거울처럼 하늘을 반사하며 황금빛 모래에서 푸른빛 하늘로 변신했다. 고르지 못한 표면에 살짝 번진 것처럼 보이는 것이 마치 골드코스트 모래 위에 그려진 하늘의 수채화 같았다. 아마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면서도 가장 쉽게 그려지는, 또 가장 쉽게 사라지는 수채화이지 않을까 싶다. 그 가치는 말할 필요도 없고!



멋짐이 뚝뚝 떨어지는 서퍼들!



 그 수채화 위를 걷는 서퍼들도 물에 반사되어 수채화 속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이 사람들은 그저 자기만의 방식대로, 원래 해오던대로 공휴일을 보내는 것일 뿐일텐데 왜 이렇게 멋있는건지. 어떻게 보아도, 어떻게 찍어도 영화 같은 모습이 참 부럽다.






 라퓨타가 생각나는 물안개 속의 도시는 여전히 신비롭게 가려져있었다. '걸어서 라퓨타까지 가볼까?'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여기에서 보아서 아름다운 것이지 분명 저 안은 똑같은 도시일테니.. 환상을 깨지 않기로 했다. 첫사랑은 첫사랑으로 두어야 아름답듯, 골드코스트에서 발견한 라퓨타를 그냥 라퓨타로 두고 싶었다. 물론, 하루종일 걸어도 못 갈 것 같았기 때문도 있지만.





 조금 씩 어둑어둑 해질 무렵, 우리는 다시 버스를 탔다. 차가 없는 우리는 시간에 맞춰 대중교통을 타지 않으면 집에 갈 방법이 없다. 또 지난 번 *레드클리프에 갔을 때 일단 해가 지기 시작하면 다 지는데까지는 정말 얼마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에, 우리는 서둘러 버스에 탑승했다. 해가 지면 길거리에 사람도, 차도 없어지는 호주의 밤거리는 정말 무섭다. -오들오들-





 버스를 타고 20분 쯤 달려 우리는 아침에 내렸던, 그리고 호주에 발을 디딘 첫 날 지났던 Varsity Lakes역에 도착했다. 호주에 도착한 첫 날, 나만큼 무거운 두 짐을 끌고 이 역에서 브리즈번행 기차를 탄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3개월이 훌쩍 지났다. 야속한 시간.. 이렇게 금방 3개월, 6개월, 12개월이 지나가버릴까 무섭기까지 하다. 조금 더 오래, 제대로 호주를 즐기고 싶은데.


 어쨌든 우리의 첫 골드코스트 여행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골드코스트의 숨겨진 명소인 Burleigh를 발견하고, 또 그곳에서 어린시절 꿈꾸던 라퓨타도 만나고. 아름다운 바다와 하늘, 그리고 이름을 증명하는 듯한 황금색 모래가 끝없이 펼쳐져있던 골드코스트에서 신나는 안작데이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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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Darney

그만 좀 싸돌아다녀 이것아
@darney.trav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