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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스탠소프 워킹홀리데이]

-EPISODE 039-

극한 등산! Girraween National Park




 때는 스탠소프에서 머문 지 5일 째 쯤. 한국으로 따지면 이름도 낯선 어느 읍이나 면에 해당될 스탠소프에서의 일상은 좋게 말하면 한적하니 여유로웠고, 나쁘게 말하면 더럽게 지루했다. 다른 친구들처럼 바쁘게 농장일을 하고 있지도 않았고, 놀거리가 있는 어느 곳으로 달려갈 차와 돈도 없었기에. 일단 집을 나와 10분만 걸으면 구경거리와 즐길거리가 가득했던 시티에서의 생활이 벌써부터 그리워졌다.


 끝이 보이지 않는 지루함 속에서 몸부림치던 어느 날 아침, 버섯농장 쉬는 날이니 다같이 놀러가자는 친구의 반가운 전화를 받고 들뜬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언젠가부터 모든 글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그 친구'와 남자친구, 그리고 Connor st의 하우스메이트로 친해진 홍콩 친구들과 함께!



햇빛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



 며칠 전 함께 사는 형님들과 왔다가 '호주스러움'에 반했다는 친구의 강력추천으로 우리는 차로 30분을 달려 근처의 국립공원-Girraween National Park(기라윈 또는 지라윈 국립공원)-에 도착했다. 오늘의 테마는 등산이라길래 살짝 긴장이 됐지만 뭐 얼마나 힘들겠냐며 호기롭게 걸음을 뗐다. 적어도 오늘은 지루한 하루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에 마냥 좋았던 것 같다.





 평지의 공원에서부터 시작한 등산길 초반은 수월했다. 잘 닦여진 길을 따라 코끝을 간질이는 풀냄새를 쫓는 느낌?

 그렇게 조금 걷다보니 신기한 곳에 발이 닿았다. 흙길이 끊기고 튀어나온 거대한 돌. 그 주변에는 산을 따라 졸졸 흐르는 물이 있었고, 돌 위에 자연적으로 파여진 곳에는 흐르던 물이 고여 작은 생물들의 삶의 터전이 되어주고 있었다. 이 곳에서 우리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다른 등산객들과 함께 물 속에서 헤엄치는 작은 생물들을 구경했다. -물고기는 아니고 올챙이 친구 정도-



하트모양 웅덩이



 신기하게도 하트 모양으로 파여진 곳도 있었다. -호주가 나에게 보내는 애정어린 마음 정도로 해석하련다.-





 거대한 돌 위에서 잠깐동안의 휴식을 마치고 다시 익숙한 등산길로 발길을 돌렸다. 이 때부터가 진짜 등산의 시작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오르막길에 조금 전 호기로웠던 내 모습은 사라진지 오래.. 거친 숨을 헥헥 몰아쉬며 얼른 끝이 나오기만을 바랐다. 저질체력의 무거운 몸뚱아리로 앞서가는 친구들을 따라가느라 오르는 동안은 사진도 제대로 찍지 못했다.  





 그렇게 한참 오르막길을 오르니... 말도 안되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헉헉거리는 내 숨은 이제 꼭대기에 도착했다고, 도착한 것이어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었으나 현실은 차가웠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었고 이전의 오르막길은 준비운동이었을 뿐이다.



오르막길 - 이제부터 웃음기 사라질거야



 말도 안되는 풍경에 더 말이 안 되는 경사였다. 등산이 아니라 거의 *암벽타기 수준. 그런데도 지구의 중력이 대단한 탓인지 사람들은 두 발로 잘만 오르고 있었다. 발 한 번 헛디디면 한국에 못 돌아갈 수도 있다는 생각에 꼭 올라야만 하는 것인가에 대해서 극심한 내적갈등을 겪었다.

 내적갈등의 결론은 다행히도(?) '여기까지 왔으니 그래도 시도는 해봐야지'였고,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가파른 돌산을 올랐다. 사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기어'올랐다. 남들처럼 두 발로 오르고 싶었으나 내 운동신경으로는 두 발이 부족해서 다른 두 발을 이용해야만 했다.. -네 발로도 진짜 무서웠다.- 





 오르는 과정은 사진도 제대로 찍지 못할 정도로 험난했으나.. 끙차끙차 꼭대기에 다 오르고나니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발로- 꼭대기까지 정복했다는 뿌듯함과 성취감,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진 호주스러운 풍경 덕분에! 사진에 그 웅장함이 다 담기지 못해 아쉬울 뿐이다. 돌산 꼭대기에서 세차게 부는 바람 탓에 온 몸을 휘청거리면서도 '우와-' 하는 감탄사가 끊이지 않을 정도로 정말 멋있었다.



살려주소



 남는 건 사진뿐이라며 우리는 힘들게 기어오른 돌산의 꼭대기에서 쉬지 않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한 명 씩 돌아가면서 SNS 프로필로 등록해놓을 사진도 팡팡 찍고 단체로 웃긴 사진도 찍고. 사진은 좀 위험해보이지만 사실 평지에 엎드려서 찍은 이 날의 베스트컷. 사진을 부탁드렸던 외국인 아주머니가 센스 있게 각도를 잘 잡아주셔서 우리가 의도했던(?) 사진을 건질 수 있었다. 아주머니께서는 너네 너무 웃기다며 본인 핸드폰으로도 사진을 몇 개 찍었다고 하셨다. 언젠가 *골드코스트의 버레이 헤드(Burleigh Heads)에서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구경거리가 되었었나 보다. 알 수 없는 누군가의 SNS에서 웃긴 애들이라며 내 사진이 돌아다닐지도 모르지만.. 웃음을 주었으니 그걸로 만족하련다.

 


타잔 국



 남자친구는 신기하게 생긴 돌 사이를 신기하게 기어오르기도 했다. 아래 위로 맞춰 입은 검정색 츄리닝이 돋보인다.





 신나는 포토타임 후, 잠시 바람을 피해 간식을 먹으며 떨어진 당을 충전했다. 고생한 뒤에 먹은 이 날의 간식은 돌바닥에 앉아 더러운 손으로 파리와 함께 나눠먹은 것임에도 꿀맛이었다.


 당 섭취로 다시 조금 충전이 된 몸을 일으켜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국 어느 산에 있다는 흔들바위처럼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지만 떨어지지 않는 거대한 바위 사이를 지나니 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The Turtle Rock (Girraween National Park)



 거북이 등딱지 같이 생긴 맞은편의 또다른 돌산. -이름은 The Turtle Rock- TV 광고에서나 보던 호주의 아웃백에 갑자기 뚝 떨궈진듯한 느낌이 들었다. 와~ 우와~ 오.. 하는 감탄말고는 뭐 달리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이럴 땐 정말 글로 제대로 표현할 줄 모르는 공대생인게 참 서럽다. 





 거북이 등딱지 돌산, 그리고 코알라와 캥거루를 비롯한 야생동물들이 집 짓고 살고 있을 울창한 숲. 



쁘잇



 거북이 등딱지를 배경으로 또 사진을 팡팡 찍었다. 예쁘게 나온 사진을 올렸을 뿐, 메모리에는 웃긴 사진이 훨씬 많다. 





 우리 사진을 찍어주셨던 호주 아저씨와 세 꼬마. 어린데도 참 잘 생긴 꼬마들이었다. 아저씨는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다니시며 계속 꼬마들 사진을 찍으셨는데 그 모습이 마치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나오는 송일국 아저씨와 삼둥이 같았다. 


 웅장한 풍경을 눈에 담고 카메라에도 담은 후, 우리는 하산했다. 손과 발로 등산을 할 때와는 또 다르게 나는 엉덩이로 내려왔다. 남들은 오를 때도 내려갈 때도 두 발로 잘만 내려가던데.. 아무튼 다치지 않고 잘 내려왔으니 됐다. 발을 쓰건, 손을 쓰건, 엉덩이를 쓰건 안 다쳤으면 된거지 뭐. 





 여기까지 달려온 길이 아쉬워서 내려오는 길에 있는 다른 한 곳에 더 들렀다. 국립공원의 다른 코스 중 하나인데 앞서 올랐던 산과는 달리 산책하듯 조금 걷다보면 나오는 곳이다. 자연이 만들어놓은 거대한 돌문이 신비스러운 곳이었다. 충분히 인상 깊었지만 그 전에 훨씬 더 인상깊은 곳을 갔다온지라 감동은 좀 덜했다. 



왈라비 다섯 식구



 돌문코스까지 완벽하게 찍고난 뒤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캥거루가족들도 만났다. 가까이 가보고 싶었는데 우락부락하니 멀리서도 돋보이는 근육에 겁나서 관뒀다. 그저 먼발치에서 바라볼 뿐.. 두 발로 서서 고개를 까딱거리는 모습이 귀여웠다. 다음에는 혹시 모르니 왈라비들이 좋아한다는 당근이랑 바나나를 좀 챙겨와봐야겠다. 




카라멜라떼



 길었던 이 날의 여정은 스탠소프에서 꽤나 유명하다는 초콜렛 카페에서 마무리되었다. -사실 이 때는 유명한 곳인지 몰랐다. 돌아가는 길에 지친 몸을 달래러 들어갔을 뿐.- 달달한 초콜렛과 시원한 음료를 들이키니 하루의 피로가 싹 가시는 것 같았다.



 산을 오르고 내리는 동안은 다리가 후덜덜 거릴 정도로 무섭고, 또 힘들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참 기억에 남는 하루가 된 것 같다. 한국으로 돌아갔을때 누군가 호주에서 했던 것 중 기억에 남는 것들이 뭐가 있냐 물으면 다섯 번째 안에 이 날의 등산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며칠간 지속되던 지루함에서 벗어나 자연의 웅장함을 느낄 수 있었던 극한 등산, 알찬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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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Darney

그만 좀 싸돌아다녀 이것아
@darney.trav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