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059_피톤치드 팡팡 터지는 폭포속으로~


[호주 스탠소프 워킹홀리데이]

-EPISODE 059-

피톤치드 팡팡 터지는 폭포속으로~




 따뜻했던 호주에서의 어느 날, 빨빨이를 몰고 스탠소프(Stanthorpe)와 워릭(Warwick) 사이에 위치한 Queen Mary Falls(퀸 마리 폭포)로 향했다. 워릭에서 별로 멀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고 떠났거늘.. 생각보다 굉장히 먼 곳이었다. 



우중충한 폭포 가는 길



 사실 이 날 폭포에 가려고 마음 먹고 나온 것은 아니었다. 워릭에 볼 일이 있어 들렀다가 그냥 돌아가기에는 아쉬워 보이는 표지판을 무작정 따라갔을 뿐. 계획에 없는 여행이었던만큼 스릴(?)이 넘쳤다.


 분명 내가 본 표지판은 30분을 달리면 폭포가 나온다고 했다. 30분.. 그것은 슈퍼카 기준이었던걸까. 쭉 뻗은 도로를 달리고, 또 달려도 폭포는 보이지 않았고 표지판들만 듬성듬성 세워져 있었다. 게다가 쨍하던 날씨는 표지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향하면 향할수록 어두워졌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여기가 주유소..?



 한 시간을 넘게 달려 마침내 Queen Mary 폭포가 위치한 마을, Killarney(킬러니)에 도착했다. 빨빨이에게 밥도 먹이고 잠시 휴식도 취할 겸 마을에 위치한 주유소에 들렀는데 여기도 느낌이 좋지 않았다.. 여기가 주유소인지 아니면 좀비가 등장하는 폐가인지. 수십 년 전 좀비의 공격을 받고 문을 닫은 것 같은 주유소 모습에 휴식은 다음에 취하기로 했다. 물론 빨빨이에게 기름도 먹이지 못했다. -여기 기름 먹이면 중간에 차가 폭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꾸물꾸물한 날씨 탓인지 이상하게 동네 분위기는 서늘했다. 주유소에 떡하니 세워진 LUV 번호판을 가진 차에도 운전자는 없었고, 주유소 직원도 없었다.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도 없고, 지나다니는 차도 없고.. 시간이 갈수록 먹구름과 함께 오늘의 여행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다. 기분이 쎄-해..



텔레토비 동산에 해가 떴어요.



 불안한 마음을 애써 감추고 우리의 목적지인 폭포로 향했다. 최종 목적지인 Queen Mary Falls에 가기 위해서는 차로 산을 올라야했다. 나날이 발전하는 남자친구의 운전 실력 덕분에 무사히 산을 오르긴 했지만.. 사실은 오르는 내내 둘 다 초긴장 상태였다. 구불구불하고 가파른데다 낭떠러지가 보이는 산길 운전은 정말이지.. 발가락까지 긴장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다행히 산을 오르는 동안 날씨가 점점 개었다. 낭떠러지 너머로 보이는 반대편의 텔레토비 동산과 맑게 갠 하늘을 보니 충분히 오를만한 가치가 있는 곳 같았다. 



Queen Mary Falls Cafe



 체감상 24시간 같았던 운전 끝에 드디어! 최종 목적지에 도착했다. 차 문을 열고 내리자마자 가장 먼저 우리를 반겨준 것은 코 끝에서 강하게 느껴지는 한약 냄새였다. 숨만 들이쉬어도 건강해지는 향기에 산길을 오르느라 긴장된 마음이 사르르 녹는 듯 했다. 어릴 적 엄마와 손 잡고 시내를 돌아다닐 때 어린 나를 인상 쓰게 만들었던 한약방의 바로 그 냄새였다. 호주 산골짜기에서 한약 냄새라니. 이 산에는 귀한 약초들이 나고 있는게 분명했다.


 그 다음으로 우리의 관심을 끈 것은 폭포 입구 주차장 건너편에 위치한 작은 카페였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본격 폭포 구경 전 먼저 카페로 발길을 돌렸다.




앵무새 마을



 하지만 카페는 우리가 도착하기 10분 전 문을 닫은 상태. -개똥같은 타이밍- 고운 색을 가진 앵무새들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호주에서 예쁜 앵무새들을 많이 보긴했지만 이렇게 많은 수의 새들이 한 곳에 모여있는 것은 *동물원 이후로 처음 본 듯. 어느새 폭포는 잊고 빨갛고 노란 새들 구경하는데 정신이 팔려버렸다. 어쩜 이렇게 곱니 너네는!




폭포 입구



 고운 앵무새들과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누고 다시 우리의 진짜 목적지인 폭포를 찾아 떠났다.

 폭포를 보기 위해서는 순환형 산책로(Circuit)을 따라 걸어야했다. 친절하게 안내판에 15분 정도 소요 된다고 표시되어 있어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을 시작했다. 몇 시간짜리 *등산도 하는데 15분짜리 산책로 쯤이야 뭐.

 이름 그대로 '순환형'이어서 산책로 입구가 왼쪽, 오른쪽에 하나씩 있는데 어디로 가도 상관없다. 왼쪽으로 들어가서 오른쪽으로 나와도 되고, 오른쪽으로 들어가서 왼쪽으로 나와도 되고~.



시냇물은 졸졸졸



 한 5분 쯤 걸으니 -아마도 폭포로 이어질-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이 나타났다. 지저귀는 새소리, 바람에 풀잎이 스치는 소리,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에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 또 깊숙히 들어갈수록 점점 더 진하게 코 끝을 자극해오던 한약 냄새까지. 어릴 적에는 고약하게만 느껴졌던 한약 냄새가 반갑게 맡아지는걸 보니 나도 정말 나이가 들긴 들었는가보다. 한약 냄새가 좋다던 엄마의 말을 이해하게 되다니.



폭포!



 시냇물을 따라 조금 더 걸으니.. 꽉 막힌 마음까지 시원하게 뚫어버릴 것 같은 폭포가 쏴아아아아! 조금 전 잠깐 비가 내려서 그런지 물줄기가 더 세보였다. 시골 마을의 산골짜기에 위치한 폭포라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큰 폭포의 규모에 놀랐다. 호주의 자연은 정말 놀라움의 연속이다.


 산책로는 폭포 아래까지 쭉 연결되어 있었다. 하지만 다시 먹구름이 몰려와 그만 돌아가기로 했다. 그냥 돌아가기엔 아쉬웠지만 *비 오는 날 산길 운전은..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덕분에 산길은 안전하게 내려올 수 있었지만 구글이 쓸데없이 지름길을 알려주는 바람에 한 시간 동안 캥거루들이 뛰댕기는 비포장도로를 달려야했다. *뺑소니 사고를 당한 그 날 다음으로 기억에 남는 아주 위험천만한 운전 경험이었던 것 같다. 바퀴에 밟혀 튕기는 비포장도로의 돌들이 차를 긁는 소리, 차 앞/옆을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캥거루들, 오후 다섯시 우리의 안구를 공격하는 정면의 따가운 햇살.. Old Stanthorpe Road라는 길 이름에서 이를 예상했어야만 했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달리는 차 바로 앞을 콩콩 뛰어가던 사람 크기만한 캥거루의 모습이 훤하다. 정말, 정말정말 아찔한 경험이었다. 집에 도착해 오늘도 살아있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신께 수 번을 감사하며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알록달록 앵무새



 그리고 얼마 뒤, 다시 한 번 폭포 나들이에 나섰다. "우리가 전에 다녀온 데가 있는데 한약 냄새가 폴폴 나는 데다가 폭포도 진짜 시원해!!"라며 같이 사는 친구를 꼬셨다. 운전을 잘 하는 친구니까 구불구불한 산길도, Old Stanthorpe Road도 문제 없겠지 싶었다.



호주 분홍 새 Galah



 하루종일 날이 좋은 날이었다. 지난 번처럼 음산한 기운도 없었고, 쎄하지도 않았다. 다만, 날이 너무 좋아서 더위에 힘들었을 뿐. 중간에 내려서 시원한 음료수로 에너지를 충!전!하고 큰 문제없이 한 번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지난 번 그 카페 앞에는 그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예쁜 새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그 때는 닫혀있었던 카페도 날이 좋은 오늘은 활짝 열려있었다. 시원한 음료를 한 잔 씩 주문하고, 천천히 카페를 둘러보는 여유도 가질 수 있었다.





 카페 내부에서는 음료와 디저트 뿐 아니라 바깥에 모여있는 예쁜 새들을 모델로 한 여러가지 물품들도 판매하고 있었다. 컵, 쟁반, 인형 등 여러가지 상품들은 기념품으로 한국에 가져가기 딱 좋아보였다. 특히 가격도 크기도 부담스럽지 않은 컵이 마음에 딱 꽂혔는데... 살까말까 10번을 고민하다가 나중에 짐이 될 것 같아서 사지 않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현명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Queen Mary Falls



 카페에서 구입한 시원한 음료수를 한 잔 씩 들고 폭포로 향했다. 한 번 왔던 곳이라 익숙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지난 번 들렀던 곳을 지나, 산책로를 따라서 폭포 아래까지 신나게 걸어내려왔다. 날도 좋고, 기분도 좋았지만 저번만큼 한약 냄새가 진하지 않아 조금 아쉬웠다. 그 때는 비가 와서 습기 때문에 냄새가 진했었나보다.


 아래에서 보는 폭포는 위에서 보는 것과는 느낌이 또 달랐다. 위에서 볼 때의 폭포가 시원한 느낌이었다면 아래에서 보는 폭포는 웅장한 느낌에 가까웠다. 그리고 훨씬 더 시원했다. 물이 튀어서... 호주 자연산 미스트를 온 몸에 팡팡팡!



Queen Mary Falls with Rainbow



 신기하게도 폭포에서 튄 물방울들이 그려낸 무지개가 선명히 보였다. 선녀와 나무꾼에 나오는 선녀탕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이런 모습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금도끼 은도끼의 산신령? 뭔지는 몰라도 무지개를 타고 뭐가 짠!하고 나타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여기는 호주니까 선녀나 산신령보다는 요정이 더 나으려나.



나무아미타불


오빤 LA 스타일


폭포는 그 방향이 아니야



 이런 동화같은 배경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서 각자의 포즈로 사진도 여러 장 남겼다. :D





 가까이서 보아도 선명하던 빨주노초파남보 일곱빛깔 무지개! 여기가 바로 #호주의_무지개_동산





 현실판 무지개 동산 같았던 폭포 산책을 마치고 다시 차를 타고 달려 집으로 돌아왔다. 그 전 날의 경험을 토대로 구글 지도의 말은 듣지 않았다. 캥거루가 차를 위협하는 Old Stanthorpe Road 따위의 비포장도로를 다시 달리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앞으로 Old가 붙은 길은 절대 들어서지 않는걸로..-



 스탠소프나 워릭 근처에 머물고 있다면 Queen Mary Falls는 한 번 쯤 방문해 보기를 권한다. 보슬비가 내리는 날, 또는 잠깐 소나기가 내린 날에 간다면 몸과 마음을 정화시켜주는 한약 냄새에도 흠뻑 취해볼 수 있을 것이다. Old Stanthorpe Road를 추천해주는 구글 지도를 믿지만 않는다면 분명 좋은 추억으로 남을 하루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무지개 동산에서 진짜 요정을 만날 수 있을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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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rney

그만 좀 싸돌아다녀 이것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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