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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워킹홀리데이 마무리: 시드니 여행 D-1]

정든 브리즈번과의 작별 인사




 오지 않을 것 같았던 그 날이 오고야 말았다. 호주에서의 1년, 그 마지막 순간이.




 평범한 평일 아침, 이른 시간부터 우리는 짐 챙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전날 밤 쉐어하우스 식구들이 우리를 위해 정성껏 만들어준 꿀맛 닭갈비를 몇 그릇 뚝딱 해치우고, 아쉬움 가득한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늦게 잠든 탓인지 계획보다 늦잠을 자버렸다. 다른 식구들이 출근하기 전 일어나서 마지막 인사도 나누고, 여유롭게 짐 마무리를 할 생각이었는데.. 눈 뜨니 이미 사람들은 다 일을 나가고 덜 정리된 짐들만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애지중지하던 빨빨이를 몇 주 전 팔아버린 탓-귀국세일-에 우리는 브리즈번(Brisbane) 공항에 가기 위해 카 쉐어를 구해야했다. 마침 *썬브리즈번(Sunbrisbane) 게시판에 스탠소프에서 브리즈번까지 저렴한 가격으로 함께 가자는 천사같은 분이 나타나 냉큼 낚아채긴 했는데.. 출발시간이 너무 일렀다. 듬뿍 정이 든 스탠소프를 떠나기가 아쉬워 조금이라도 더 붙어있고 싶었지만 딱히 다른 방법이 없어 따를 수 밖에 없었다. 


 며칠 전부터 챙기기 시작한 거대한 짐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빠뜨린 게 없나 또 한 번 둘러보고.. 모든 준비가 된 것을 몇 번이고 확인한 후 간신히 차에 올랐다. 무거운 짐들을 싣고, 내 추억도 싣고서. 안녕 스탠소프, 모두 다시 만날 날까지 잘 지내고 계시길!



로마 스트리트 역 바로 앞 숙소



 사람 좋아보이던 차 주인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금세 브리즈번 시티(Brisbane City)에 도착했다. 이른 아침에 출발해서일까, 아니면 떠나야한다는 아쉬움 때문이었을까.. 매번 지루하게만 느껴졌던 스탠소프에서 브리즈번까지 오는 길이 짧게 느껴졌다. 


 가장 먼저 무거운 짐을 처리하기 위해 미리 예약해 둔 로마 스트리트 역 바로 앞 아파트로 향했다. 운전자 분께서 감사하게도 역 앞까지 차로 데려다주셔서 수고를 덜 수 있었다. 우리는 아파트 체크인을 하고서 방에 짐만 던져두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추억이 겹겹이 쌓인 이곳 브리즈번에서의 마지막 날을 그냥 보낼 수는 없으니.





 로마 스트리트 역에서부터 산책하듯 설렁설렁 걸어 브리즈번 강을 건넜다. 여느 때와 하나도 다를 것이 없는 평범한 모습이었지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 조차도 특별해보였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도, 하늘에 뜬 구름도, 옆을 스치는 사람들도 이 날만큼은 다르게 느껴졌다. 시간이 흘러 추억해보면 이렇게 평범한 날들이 가장 그리울 것 같다. 그래서 모든게 특별해 보였는지도.



브리즈번 대관람차 (Wheel Of Brisbane)



 익숙한 *사우스 뱅크 공원(South Bank Parkland)을 걸으며 어떻게 하면 마지막 날을 더 특별하게 보낼 수 있을지 생각했다. 주말이면 열리는 시장에서 쇼핑도 해봤고, 립톤 자전거도 타봤고, 인공 해변에서 물놀이도 해봤고, 포켓몬도 신나게 잡아봤고.. 이것저것 다 해본 이곳에서 딱 하나 안 해본게 있었으니, 바로 브리즈번 대관람차(Wheel Of Brisbane) 타보기! 1년동안 그림의 떡 마냥 지나가면서 구경만 했지 돈이 없어서 타보겠다는 생각은 못하고 있었는데. 딱 좋은 타이밍이었다.


 브리즈번 대관람차 탑승 가격은 현장 구매 시 성인 1인당 20달러(한화 약 17,000원 정도)로 가난한 여행자에게는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하지만 브리즈번 대표 관광코스에 속하는만큼 할인 상품이 다양하다는 것! 구글에 "Wheel Of Brisbane Deals"로 검색만 하면 그루폰(Groupon)과 같은 티켓 할인 사이트나 각종 여행사에서 제공하는 할인 쿠폰을 아주 쉽게 구할 수 있다. 우리는 이 날 그루폰을 통해서 2인 탑승권을 17달러에 구입했다. -1인 20달러인 탑승권을 2인 17달러에! 무려 23달러를 절약할 수 있었다.- 할인율은 탑승 시간이 평일인지 주말인지, 낮인지 밤인지에 따라 천차만별이니 여러 곳을 비교해보고 구입하는 것이 좋겠다.





 그늘이 진 시원한 공원 벤치에 앉아 폭풍 검색으로 할인 탑승권을 구입하고, 저렴하게 관람차에 탑승! 브리즈번에 머무르는 동안 언젠가는 타봐야지 했던 대관람차에 탑승하는 아주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두근두근





 밖에서만 보던 대관람차를 안에서 올려다본 감격스러운 순간, 하늘마저도 나의 관람차 탑승을 축하해주는 듯 청량했다. 새하얀 관람차의 구조물들과 어우러져 더 예쁘게 보이던 하늘!



브리즈번 대관람차 안에서 바라본 브리즈번 풍경



 관람차 안에서 바라보는 브리즈번의 풍경도 더할나위 없이 아름다웠다. 언젠가 건너편 페리 선착장에서 관람차를 바라보며 타보고 싶어하던 과거의 나와 눈맞춤을 하는 것 같고 좋았다. -해리포터 속 한 장면처럼-


 대관람차는 매우 빠르게 돌아 금방 다시 지상으로 돌아왔다.  오오! 하는 사이에 끝나버려서 허무하고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드..려는 찰나, 다시 지상에서 멀어져갔다. 그렇다. 브리즈번 대관람차는 놀이공원의 느릿느릿하게 한 바퀴를 도는 관람차와는 달리 빠르게 여러 번 도는 관람차였던 것이다. 관람차에 타면 머리 위 스피커에서 브리즈번을 소개하는 안내 방송이 나오는데, 1번부터 10번까지 설명해주는 동안 관람차가 멈추지 않고 계속 돈다. 정확하게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7바퀴 정도 돌지 않았나 싶다. 여유롭게 사진 팡팡 찍고 바깥 구경도 충분히 할 수 있을 정도로 오래오래 돈다. 햇빛 쨍쨍한 더운 날에도 관람차 내부에 에어컨이 빵빵해서 쾌적하고 좋다.





 빙글빙글 도는게 슬슬 지겨워질 즈음, 마지막 10번째 브리즈번 추천 명소를 알리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같은 시간.. 관람차에 타기 전 먹은 점심은 뱃속에서 분해되어 가스가 되었고, 관람차의 회전과 함께 부룩부룩 팽창하던 가스는 이내 뒷문을 시원하게 빠져나왔다. 생전 맡아본 적 없는 기괴한 향기를 가진 가스는 밀폐된 관람차 안을 순식간에 가득 채워버렸다. 남자친구는 놀라움에 비명을 질렀고 가스 주인인 나는 당황했다. 배에 품고 있을 땐 얘가 이런 향기를 가진 줄 몰랐지...

 하지만 질식하기 직전에 타이밍 좋게 관람차 문이 열렸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관람차에서 튀어나와 숨을 몰아쉬었다. 그렇게 끝이 났으면 좋으련만.. 애석하게도 대관람차의 관리인 아저씨는 그 많은 관람차 중에서 하필 가스가 가득 찬 그 관람차에 다음 손님을 태웠다. 한껏 들뜬 표정으로 관람차에 오르던 노부부의 뒷모습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죄송해요....-





 마무리가 좀 찝찝했지만 아무튼 더운 봄날 에어컨 빵빵하게 나오는 브리즈번 대관람차 탑승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10점 만점에 9.5점! -가격 때문에 1점 뺐는데 가스 분출한게 미안해서 0.5점 다시 더해줬다. 하하-




브리즈번 초콜렛 카페 Max Brenner



 한참 또 사람 구경, 꽃 구경, 물 구경하며 공원을 산책하다보니 금방 출출해졌다. -가스를 내뿜은 탓일까..-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사우스 뱅크에서 가장 핫한 디저트 카페인 *Max Brenner(맥스 브레너)로 향했다. 여기도 브리즈번 대관람차와 마찬가지로 오며가며 구경만 했었는데 마지막 날이니까 한 번 들러주기로.

 단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남자친구도 싹싹 긁어 먹게 만든 완전 맛있는 디저트였다. 브리즈번에 조금 더 머물렀다면 세 번 쯤 더 갔을  듯!




치명적인 핑크 궁둥이



 달달한 음식으로 출출한 배를 달랜 후 공원 내에 위치한 인공 해변으로 향했다. 햇빛 아래서 걷느라 지친 몸을 넓다란 평상 위에 눕혀 놓고 물놀이 하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여유로웠다. 한국에 있는 지금, 호주에서만 느낄 수 있었던 여유로운 시간들이 너무너무 그립다.



브리즈번 카지노



 공원에서의 여유로운 시간들을 뒤로 하고 우리는 다시 숙소로 향했다. 사우스 뱅크와 브리즈번 시티를 잇는 다리를 지나니 화려한 모습의 브리즈번 카지노가 햇살을 받아 따스하게(?) 빛나고 있었다. 블로그에 쓰지는 않았지만 브리즈번에 사는 동안 이 카지노에 돈을 얼마나 갖다 바쳤는지... 길게 쓰면 마음 아프니까 이 정도만 써야겠다. 결론은 도박이 정신 건강에 매우 해롭다는 거.





 하루종일 걷고 또 걸어서 숙소에 도착해 말끔하게 정리된 침대 위에 몸을 던졌다. 포근하게 안아주는 침대의 촉감이 좋으면서도 내일이면 떠난다는 생각에 아쉬워 편히 쉴 수가 없었다. 빠르게 흘러가버린 1년이라는 시간이 그저 야속할 뿐.. 



붙잡고 싶었던 저녁



 어느 덧 해는 저물어 숙소 테라스에서 본 하늘은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서쪽으로 떨어지는 해가 유난히 아쉬운 저녁이었다. 





 다음 날 아침. 브리즈번에 도착한 *첫 날의 추억이 담긴 공항행 기차에 탑승했다. 일년을 무사히 마쳤다는 뿌듯함과 안도감, 이곳을 떠나야한다는 아쉬움, 나를 기다리는 시드니에 대한 기대감..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복잡미묘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인채 브리즈번과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많았던 브리즈번아, 잊지 못할 나의 1년아 그동안 참 고마웠다! 시드니에서도, 한국에서도 영원히 잊지 못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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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Darney

그만 좀 싸돌아다녀 이것아
@darney.trav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