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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PISODE 06 - 

이토록 평화로운 아씨시




제 2의 예수라고 불리는 성 프란치스코의 도시, 아씨시

순례객들이 끊이질 않는, 어쩌면 평화로울 수 밖에 없는 작은 동네.


비록 아씨시로 향하는 나의 여정은 전혀 평화롭지 않았지만...



아씨시 새벽 풍경



나의 여행 일정은 '로마 > 아씨시 > 피렌체'로, 일반적으로 아씨시를 거치는 여행객들과는 반대였다.

-일반적으로는 '피렌체 > 아씨시 > 로마' 순으로 여행한다.-


나의 첫 여행지였던 로마에서의 여행을 마치고 아씨시로 가는 날.. 여행 중 처음으로 기차를 놓쳤다.

-처음이 붙는 건 이후에도 여러 번 차를 놓쳤음을 의미..-


로마에서 아씨시를 가는 기차는 Regionale로, 티켓을 사면 그 날 시간에 관계없이 출발지/목적지가 같은 아무 열차나 탈 수 있는 티켓이다.

아씨시에서는 '아씨시 델질리오 수녀원'에 묵으려고 예약을 해둔 상태였고, 수녀원 공지에 따라 오후 7시 이전에는 도착해야 했다.

-[참고] 아씨시 수녀원 블로그를 통해 수녀원 숙박 예약을 할 수 있다.-





로마에서 아씨시로 가는 Regionale 기차는 하루에 2~3대.

공지한 7시 이전에 도착하려면 로마에서 2시 23분 차를 타야했는데.. 이걸 놓쳐버린거다.



로마 여행을 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테르미니역은 정말 어마어마하게 크다.

제 시간에 역에 도착했음에도 기차를 타지 못한 것은 역이 너무 컸기 때문.


Regionale는 기차번호와 플랫폼이 정해져있지 않아 티켓에 아무 정보도 기재되어 있지 않았다.

따라서 전광판을 보고 알아내야 했는데 전광판에 목적지가 Assisi가 아니라 F..로 시작하는 최종 목적지만 떠서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테르미니 역에 20분 전에 도착했음에도 언제 기차가 오나 멀뚱멀뚱 전광판만 보고있었다.


열차 출발 시간 5분 쯤 남았을 때 뭔가 이상해서 아무나 붙잡고 물어봤더니 1-East 플랫폼에서 열차가 곧 출발한다고.

그 때 나의 위치는 25번 플랫폼 앞......

심지어 1-East는 1번 플랫폼도 아니고 더더더! 더! 구석에 위치해있었다.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전력질주 했으나 드넓은 테르미니역 끝에서 끝까지 5분은.. 부족한 시간이었다.



아씨시 풍경



10시가 다 되어 도착할 수는 없었기에 역무원에게 사정을 말해 티켓을 바꾸고, 한 번 갈아타고 가기로 결정했다.

2시간이면 갈 수 있는 곳을 테르미니역에서 30분을 기다리고, 환승역에서 또 1시간을 기다리고..

심지어 환승역은 작고, 사람도 없고, 분위기도 으스스해서 거의 울면서 기다림의 시간을 보냈다.


열심히 갔지만 7시가 넘어 깜깜해진건 물론 버스도 끊겨서 택시를 탔는데 바가지 쓰고..

이래저래 서러움 폭발하는 날이었다.



아씨시에서 만난 고양이



하지만 수녀원에 들어서자마자 '아, 고생해서 온 보람이 있구나' 싶었다.

하룻밤 지낼 도미토리에 들어가기 전에 보이는 아씨시 야경에 오늘 일어난 모든 힘든 일들에 대해 보상 받는 느낌!



수녀원에서 본 아씨시 새벽 풍경



폭풍 개고생으로 꿀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본 풍경은 더 환상적이었다.

가만히 기대 서서 구름 지나가는 것 보는게 이렇게 행복한 일인지 처음 알았다.

과장 조금 보태서 지구 끝까지 보일 듯 탁 트인 풍경과 겨울이지만 따갑지 않은 선선한 바람.

바람 마저도 이 풍경에 멈춰선 것 같았다.

-나중에 수녀님께 여쭤보니 아씨시에서 보이는 초록 들판은 올리브 밭이라고 한다.-




아씨시 아침 풍경



조식 시간까지 시간이 남아서 잠시 아침 산책을 하러 다녀왔다.

아무도 없는 낯설고 조용한 거리는 전혀 무섭지 않았다. 그저 평화로울 뿐.

도시 소음에서 벗어나 아무 생각 없이 걷는 이 단순한 행동이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아씨시 골목



수녀원에서 아침을 먹고 다시 나온 아씨시의 거리는 여전히 평화로움 그 자체.

거리의 사람들도 아씨시를 닮아 평화로운 인상이었다.






골목에서 조금 벗어나니 이렇게 탁 트인 풍경 눈 앞에 촤~

세상에 태어나 눈을 뜬 이후 가장 멀리까지 본 날이지 않나 싶다.



산타 키아라 대성당



풍경따라 걸어내려오다 보니 산타 키아라 대성당이 나왔다.


성당 오른편에서도 역시 가슴 뻥 뚫리는 시원한 풍경을 볼 수 있었는데, 여기서 풍경을 배경으로 셀카 찍다가 외국인한테 한 소리 들었다.

웬 서양 남자가 오더니 여기서 중요한게 너냐, 이 풍경이냐 하더니 왜 stupid하게 셀카를 찍냐 하는 것이었다.

물론 풍경이 중요하긴 하지만 내가 이 곳에 있다는 것도 중요하지 않나.

'풍경 백날 찍어봐라, 구글에 당신이 찍은 거랑 똑같은게 널렸을걸'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영어...En...gli..s...h...-




산타 키아라 대성당 앞 분수



아씨시에서는 분수의 물방울까지도 평화롭다.

정화되는 느낌





성당 반대편으로는 언덕(?)위의 성이 있었다.

호기심에 저 곳을 찍고 오리라 마음 먹고 골목을 헤집고 다녔다.






아씨시 골목에서는 막 찍어도 다 예쁘다.





언덕 위의 성 찾아가다가 우연히 또 다른 성당을 만났다.

이름도 모르고 들어가보지도 못했지만 여행 중에 우연히 만나는 것들은 가끔 찾아가는 곳보다 인상 깊다.

-여기서 stupid 외국인 또 만났다.-





골목에서 본 기념품 가게의 귀여운 콜로세움.

오르골처럼 음악 나오면서 마차가 빙빙 도는데 완전 귀여웠다.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Basilica of Saint Francis of Assisi)



난 분명 언덕 위의 성 찾으러 갔는데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이 나왔다.

너무 생각없이 걸었나보다... -결국 언덕 위의 성은 찍지 못했다. 매우 아쉽다.-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성 프란체스코 대성당은 유럽 여행하면서 가본 성당 중에 가장 성당다웠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이나 스페인의 가우디 성당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소박하고 순결한 매력이 있었다.

주변 풍경과도 잘 어울리면서 웅장한, 그렇지만 또 소박한 느낌이었다.





아씨시에 있으면 성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골목, 큰길 가리지 않고 곳곳에 이렇게 다리가 있는데 시간 여행을 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아씨시는 올 때도 힘들었지만 갈 때도... 너무 힘들었다.

블로그 글들 보면 아씨시에서 다시 역으로 돌아갈 때는 올 때 탔던 버스를 타라던데 올 때 버스를 못 타서 당최 어디서 타야하는지..

버스 정류장 찾으면서 산타 키아라 성당부터 성 프란체스코 성당까지 몇 바퀴를 -캐리어 끌고- 돌았다.

겨우 정류장을 찾았으나 버스비로 챙겨둔 동전이 옷 주머니에 뚫려있던 구멍 사이로 사라져 길에서 옷이랑 얼마나 씨름을 했는지 모르겠다.

아, 인생.



낡은 자동차마저 분위기 있는 아씨시



나에게 아씨시는 가기도, 돌아가기도 힘든 곳이었지만 평화와 잔잔함을 알게해 준 '힐링 동네'였다.

하루 밖에 머무르지 않은 걸 후회하는 곳 중 한 곳인 아씨시.

다음에 방문하게 된다면 아씨시 수녀원에서 3일 정도 넉넉하게 머무르며 아씨시를 가득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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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겨울 나홀로 유럽 | 2015.01-02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댓글,

Darney

그만 좀 싸돌아다녀 이것아
@darney.trav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