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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PISODE 14 - 

프랑스 리옹 응급실에서 하룻밤




유럽 여행을 다짐하고, 계획하고, 그리고 시간이 점점 더 다가와 짐을 싸고...

'여행을 가겠다!' 생각한 그 순간부터 바란 것이 딱 한 가지 있다면 한 달 간의 나홀로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몸 성히 돌아오는 것이었다.

죽지 않고 돌아와서 지금 이렇게 블로그를 하고 있으니 다행히 나의 바람은 이루어진 것이나, 중간에 엄청난 위기가 있었다.



프랑스 니스 해변



때는 34일 여정의 첫 목적지였던 로마, 그리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묵었던 *한인민박.

거기서부터 모든게 뒤틀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전 포스팅에서도 언급했지만 그 곳에서 아침으로 먹은 삼겹살 고기로 된 제육볶음은 내 위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제육 섭취 이후 계속 속이 불편했지만 약국에서 산 8,000원짜리 게비스콘으로 요동치는 위를 달래가며 여행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치만 게비스콘은 일시적인 안정감(?)만을 줄 뿐이었다.


원래도 위가 별로 좋지는 않았지만 학업 스트레스에서 해방된 수능 이후로는 별다른 이상없이 지내왔었다.

그래서 이 불편함 또한 낯선 곳에서 적응하지 못한 내 몸이 과민반응하는 것이라고 여겼었는데, 로마에서부터 약 10일이 지난 니스에서부터 여행이 힘들어졌다.

조금만 걸어도 어지럽고, 피곤하고, 점점 더 창백해지고...



프랑스 니스 샤갈 박물관



그리고 프랑스 니스에서의 마지막날 내 몸상태는 거의 최악의 정점을 찍었다.


도시 이동 전, 호스텔에서 만난 언니와 함께 샤갈 박물관에 갔는데, 가는 것부터가 너무 힘들었다.

10 발자국 쯤 걸으면 세상이 핑핑 돌았고, 오르막길이라도 나오는 순간엔 지옥에 발자국 찍고 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함께 간 처음 만난 언니에게 미안해서 내색은 못하고.. 억지로 웃고 대화하며 힘들게 도착.


박물관에서도 그림은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의자만 찾아다녔다.

그러다가 10여 분짜리 샤갈 영상을 보며 졸기도 하고.. -다시 생각해도 같이 간 언니에게 너무 미안하다. 내가 가자고 했는데..-



아비뇽 거리



그렇게 힘든게 난 체력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했다.

저질체력인 내 자신을 욕하며 젖먹던 힘까지 동원해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기차를 타고 아비뇽으로 이동했다.

기차역까지 캐리어 끌고 가면서 길바닥에 몇 번을 주저앉았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글을 쓰고 있지만 진짜 울면서 갔다.-


겨우 도착한 아비뇽은 유난히 바람이 많이 불었고, 엄청 추웠다. -2월 초-

심지어 호스텔은 난방이 되지 않았고. -자면서도 지옥문을 몇 번 두드린 것 같다.-



아비뇽에서 추운 하루를 보내고, 리옹에 도착해서야 내 상태가 정상이 아님을 깨달았다.

호스텔의 침대 2층에 사다리로 올라가는게 힘듦을 느꼈을 때.


잘 생각해보니 나는 어느 순간부터 흑색변을 보고 있었고, 검색해보니 이건 위출혈의 증상이라고 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호스텔에서 하루를 묵었고, 다음 날... 아침부터 거의 울면서 병원에 갔다.



[출처] 구글 지도



호스텔에서는 가장 가깝고 큰 병원이라며 이 곳을 구글 지도에 찍어줬다.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프랑스에서 과연 내가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을 수 있을까, 한국으로 가야할까 한참을 고민한 것 같다.



[출처] 프랑스 위키백과: Hôpital Édouard-Herriot



호스텔 주인 언니가 알려준대로 지하철을 타고 도착한 병원은 엄청나게 컸다.

-지금 이 사진만 봐도 다시 배가 아파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응급실에 가야할 거라고 했는데 이 넓은 병원, 모든게 불어로 쓰여있는 이 곳에서 응급실을 내가 어떻게 찾아.......


병원이 서울대 마냥 건물에 A동, B동.. 쓰여져있는데 끝이 없었다.

일단은 들어가서 가장 빨간 글씨로, 응급실처럼 생긴 곳에 들어가서 물어봤더니 여긴 '치과 응급실'이라고 했다.

대충 어디가 아프다고 손짓 발짓 다 해가며 설명했더니 L 건물로 가란다.

이제 됐구나, 하고 나왔는데 L동은 대체 어디에...?

건물 찾는데만 30분을 넘게 돌아다녔다.

걷는 게 너무 힘들어서 중간에 또 주저 앉고.. 병원에서도 지옥 노크를 했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찾아간 L 건물의 접수원들은 영어를 전혀 하지 못했고, 굉장히 불친절했다.

구글 번역기도 쓰고, 출국할 때 문자로 날아온 프랑스 대사관에도 전화해보고, 영어도 써보고 손도 발도 다 써봤지만 불통.

내 몸은 점점 더 아파오는데 이 사람들은 내가 환자가 아니라 별 필요없는 외국인 고객으로 보는 것 같았다.


그 때, 천사처럼 나타난 흑인 아저씨......

접수원과 나 사이에서 적절하게 통역을 해주셨다. 그 분 덕분에 무사히 접수는 성공.

기다리면서 몇 마디 나눴는데 나이지리아였나..에서 온 이민자라고 했다.

그리고 가족사부터 뭐 별 얘기 다 해줬는데 아픈데다가 영어로 말하니.. 기억이 날리가 만무하다. -어쨌든 너무너무 고마운 분!-



그치만 역시 일은 잘 풀릴리가 없었다.

앰뷸런스 타고 오는 환자들이 절대 우선인 이 곳에서 제 발로 걸어온 난 장장 8시간을 기다려야했다.

아침 11시가 되기 전에 도착했는데 내 이름이 불린건 오후 7시가 넘은 시간.


기약없는 기다림 속에 몸도 아팠지만 정신적으로 너무 고통스러웠다.

왜 나를 부르지않냐 몇 번을 물어봤지만 아직 앞에 대기자가 많다며 못 기다리겠으면 그냥 가라는 접수원.

너무 서러워서 구석에 쪼그려 앉아 울기도 했다. -의자에 오래 앉아있는 것도 힘들어서..-

그렇게 점점 해가 저물어가고, 내가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어서 돌아가려던 찰나, 의사가 날 불렀다.


제옹, 제옹이라고 했다.

-내 이름은 전인데.. 이 사람들은 제옹이라고 부르더라. 레옹도 아니고..-

난줄 모르고 가려고 했는데 울고 짜고 항의해서 눈에 띄었었는지 의사가 친절하게 들어오라며 안내해줬다.



thumb제옹 다현



그렇게 힘들게 들어간 응급실.

밖에 있는 접수원들과는 달리 의사들은 영어도 잘하고 엄청 친절했다.

심지어 엄-청 예쁘고 잘생겼다.. -유럽 여행하는 한 달 동안 만난 서양 사람들 중에 가장 예쁘고 잘생긴 사람을 병원에서 봤다.-


내가 서양 병원에서 진료를 받게 될 줄이야, 마치 그레미 아나토미나 하우스 같은 미국 의학드라마를 현장에서 보는 느낌이었다.

우리 나라 응급실과는 달리 다 1인실이었고, 환자마다 담당 의사랑 간호사가 정해져서 그 사람들만 들어오는 것 같았다.

그렇게 들여보내 달라고 떼를 썼는데 막상 들어오니 아픈거고 뭐고 신기했다..



그렇게 피도 뽑고, 흑변 본다고 하니 응아 검사도 하고... -정말.. 특별한 경험-

온갖 검사를 다 하고 나서 알게 된 나의 상태는 생각보다 더 심각했다.

'위염을 계속 둬서 위에 구멍이 났고, 그로인해 출혈이 생겼는데 멎지 않아서 빈혈이 왔다.'라고 카리스마 넘치는 의사 선생님이 말해주셨다.

-위염 > 위 천공 > 위출혈 > 빈혈-

타지에 있다고, 돈이 아깝다고 내 몸의 소리를 무시한 내 자신이 참.. 한심했다.


그리고 의사선생님은 피가 많이 부족하니 오늘 밤 있으면서 수혈을 받고 가라고 했다.

나는 서양인의 피를 맞았다.



밤새도록 응급실에서 서양인의 피 2팩을 맞고, 포도당을 맞고나니 좀 살만해졌다.



리옹 한인식당, 도시락



다음날 아침, 유럽여행 중에 본 제일 잘생긴 남자인 의사가 와서는 하루 더 있을 것을 권했다.

어제보다는 나아졌지만 혹시 모르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그치만 병원비 문제도 있었고, 호스텔도 문제고.. 그냥 퇴원 했다.


병원비 문제로 잘생긴 의사 선생님이랑 왕 친절한 보험회사 직원이랑 전화통화도 했었는데 둘이 싸우는 줄 알았다.

-나를 사이에 두고 싸우는 것 같아서 묘하게 기분이 좋았다. 변탠가.. '감동 받았다'가 더 적절한 표현인 것 같다.-

어쨌든 난 하루만에 퇴원을 했고, 약 50만 원 정도 청구된 엄청난 병원비는 여행 후에 보험 회사를 통해 지급받았다.

-병원비 아니었으면 의사 보려고 하루 더 있었을 것 같다. 올랜도 블룸 닮았었는데..-


그리고 바로 식사해도 된다길래 당장에 한식집을 찾아갔다.

아마 한식집 사장님은 나를 무일푼으로 여행하는 거지 여행자인 줄 아셨을거다. -왕 꼬질꼬질..-





원래 리옹에서는 2일을 머물고, 샤모니 몽블랑에 가려고 계획해뒀었지만 샤모니는 갈 수 없게 됐다.

이 몸으로 캐리어를 끌고 기차를 몇 시간 씩 타고, 샤모니의 높은 산을 구경하는 건 아무래도 불가능 할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샤모니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호스텔도 2일을 예약해둬서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쉽게도 다음 날은 만실이어서 연장을 할 수도 없었기에 여행 중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호텔을 갔다.

매번 2-3만 원 하던 호스텔에 있다가 호텔에 오니 갑자기 신분상승한 느낌도 들었다. -그래도 여전히 꼬질꼬질-


예상치 못한 병으로 인해 예약해뒀던 기차표, 호텔 숙박비 등 엄청난 지출이 생겼다.

그 중에서 제일 비쌌던 건 리옹에서 파리로 가는 기차... 하루 전에 예약하니 거의 저가항공 비행기 값이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역시 사람은 건강이 최우선이라는걸 다시금 깨달았다.

4년 째 자취하면서 혼자 있을 때 아프면 서럽다는건 알고 있었지만, 말 안 통하는 나라에서 아프면 몇 배는 더 서럽다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됐다.


이 당시에는 정말 지옥 같았지만 지금은 거의 무용담(?)처럼 말하고 다닌다.

'누가 프랑스 여행 가서 응급실을 가봤겠어?'라는 굉장히 긍정적이며 낙천적인 마음가짐.

멋진 풍경이나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보다도 먼저 떠오르는 추..추억이지만 다시 경험하고 싶지는 않다. 절대! -한 번이면 충분해.. 네버 어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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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겨울 나홀로 유럽 | 2015.01-02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댓글,

Darney

그만 좀 싸돌아다녀 이것아
@darney.trav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