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브리즈번 워킹홀리데이]

-EPISODE 027-

눈물로 쓰는 3주간의 잉햄 후기




 이 글을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써내려가야 할 지 감이 하나도 잡히지 않지만, 최대한 의식의 흐름대로 써내려가보려 한다. 확실한 건 이렇게 시작한 이 글은 지금 내 블로그에 존재하는 100여 개의 글들 중 가장 사진도 없고, 두서도 없는 긴 글이 될 것이라는 것. 그리고 어쩌면 타이핑을 하다가 노트북 키보드에 눈물이 떨어져 고장이 날지도 모르겠다는 것?.. 





 지금으로부터 2주 전, *구직 활동의 끝 잉햄이라는 글을 쓸 때만해도 나는 호주에서 더이상의 구직활동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내 워킹홀리데이 비자는 3월 초 만료이고 잉햄에 8월 초 첫 출근을 했으니 최대 근무 기간인 6개월, 즉 내년 1월까지 열심히 다닐 생각이었다. 그렇게 잉햄 생활을 끝나고 나면 어느 정도 돈도 모여있을테니, 그 돈으로 한 달 동안 동남아를 여행하고 다시 내 고향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흔치않게도 난 3주만에, 아니 3주도 다 채우기 전에 잉햄에서 짤렸다. 비슷한 표현으로는 치킨공장 강퇴 정도가 되겠다. 내 강퇴 이유는 황당하고, 웃기기도 하고, 그냥 어이가 없고.. 아직도 개꿈을 꾼 것 같다.



 황당한 '그 사건'이 발생한건 며칠 전, 여느 때와 같았던 8월 25일 목요일 오후였다. 잉햄 오후 보닝파트였던 나는 오후 3시 20분 출근이라 매일 여유롭게 아침잠을 즐기곤 했다. 하지만 이 날은 11시 쯤 부업으로 하고 있던 웹 제작 작업과 관련한 미팅이 있었고, 평소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게 됐다. 언제나처럼 일어나서 식빵 두 조각을 굽고, 아보카도를 정성스레 발라 우유를 곁들여 먹고, 양치를 하고, 세수하고 발도 닦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화장을 하던 중 연락이 왔다. 더 급한 일이 있어서 다음주로 미팅을 미뤘으면 좋겠다는 대표님의 문자. 딱히 문제될 게 없었기에 나는 '괜찮습니다~'하는 문자를 보내고 남은 시간동안 간만에 눈화장을 진하게 했다. -화장을 하는 여자들이라면 모두가 아는 아침에 애매하게 남는 시간 활용법 정도가 되겠다.- 화장을 마치고 잉햄 저녁 시간에 먹을 도시락을 만들었다. 전자렌지에 밥을 돌리고, 모짜렐라 치즈가 듬뿍 들어간 계란말이를 후다닥 만들고, 잉햄에서 3달러에 구매해온 아시안 스타일 치킨 미트볼을 후라이팬에 달달달 익히고. 김치는 전 날 Canteen(캔틴)-잉햄에서 쉬는 시간을 보내는 곳, 식당도 되고 카페도 되고..- 냉장고에 보관해두고 왔기에 따로 챙기지 않았다. 어느새 출근하라는 오후 2시의 핸드폰 알람이 울렸고, 집 열쇠와 잉햄 출입증과 도시락 등등을 부랴부랴 챙겨 집을 나왔다. 여느 때처럼.


 언제나와 같이 제 시간에 도착한 잉햄은 정말 평범했다. 이 날 하루의 로스터엔 내가 싫어하는 Rework이 4개나 있었고 Load도 2개나 있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얼른 배워야 레벨업도 하고 더 편하게 일을 할 수 있을테니까. 그렇게 정말 전 날과 똑같고, 그 전 주와도 똑같이 1, 2, 3라운드가 지나갔고 별 다를 거 없었던 쉬는 시간도 두 번을 보냈다. 언니 오빠들이랑 수다도 떨고, 커피도 한 잔 마시면서.

 3라운드 때 나는 그나마 꿀잡인 Rework Table이었는데 Bryan이 급 호출을 당하면서 그 친구 대신 로딩(Loading)을 하게됐다. 안 그래도 오늘 로딩이 두 번이라 힘든 하루구나 싶었는데 이렇게 되면 하루 총 세 번의 로딩.. 어깨가 벌써부터 더 아파오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난 아직 수습기간이니까 어디선가 나를 지켜보고 있을 트레이너를 생각하며 열심히 했다. 닭들을 갈고리에 얼마나 열심히 꽂아댔는지 모르겠다. 벌써 하루의 두 번째 로딩을 끝내고나니 기다리던 저녁 시간이 되었고, 미리 준비해온 미트볼과 계란말이를 꺼내 함께 앉은 언니 오빠와 나눠먹었다. 내 입맛엔 코코넛이 쏙쏙 박혀있는 미트볼이 별로였는데 다른 사람들한테는 괜찮았나보다. 내가 가져온 반찬이 인기가 좋아서 뿌듯했다.



쉬는시간을 보내는 잉햄의 캔틴(Canteen)



 사람마다 다를테지만 나에게 있어서 잉햄의 가장 큰 장점은 높은 시급보다도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쉬는 시간이 난 정말 좋았다. 낯가림이 심한 내가 처음 출근해서 맹- 하니 있을 때 먼저 다가와서 같이 잘 지내자고 말도 건네주고, 어디에 사는지, 멀리 사는데 늦은 시간에 집에는 어떻게 가는지 걱정해주기도 하고, 밥 시간이면 가져온 반찬을 나눠먹는 것도 정말 좋았다. 호주에서 몇 달 지내면서 같이 온 남자친구 외에는 가까이 지낸, 혹은 가까이 지내고 싶은 한국 사람이 없었는데 이 곳에서 만난 언니 오빠들은 알면 알수록 더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들이었다. 배울 점도 많았고, 재밌는 얘기도 많이 나누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어서 더 좋았던 것 같다.

 

 어쨌거나 좋은 사람들과 밥을 나눠먹는 저녁 시간이 끝나고, 일을 하러 들어가던 그 때. 바로 그 때 그 일이 터져버렸다.

 우리 파트 한국인들 중 막내는 25살, 나를 포함해서 둘이었다. 동갑인 친구를 제외하고는 다 언니 오빠다 보니 막 대할 수 있는 그 친구와 아무래도 좀 더 가깝게 지냈던 것 같다. 평소에도 투닥투닥거리며 장난을 주거니받거니 했었는데 그게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지..



 캔틴에서 나와 공장 안으로 들어가는 복도에서 앞에 그 친구가 있길래 맨날 그랬던 것처럼 장난을 걸었다. 귀에 있던 이어플러그를 뽑고 도망가려는데 예상치 못하게 발에 걸려 넘어져버렸다. 본인 말로는 자기가 계산을 잘하는데 내가 지 계산에 어긋나게 뛰었다나 뭐라나. 하여간 발에 걸려 넘어졌는데 진짜 어이없게도 머리로.. 떨어졌다. 어떻게 넘어졌는지 모르겠지만 왼쪽 무릎과 손이 바닥에 먼저 떨어졌고, 얼굴이 바닥에 닿으려던 걸 간신히 피해 머리로 바닥을 쿵! 박았다. 내가 넘어지는 장면을 지켜본 그 친구 말로는 리액션이 만화 같았단다. 머리가 대체 얼마나 무거운거냐며. 

 넘어지고 난 직후는 그냥 아팠다. 자려고 눕는데 거리 조절을 잘못해서 벽에 머리를 쿵 박은 것만큼이나 아팠다. 넘어지면서 살짝 밀린 것 같은데 내 앞머리 털이 다 뽑히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그냥 아팠다. 쓸린 무릎도 아프고.. 주위에서 괜찮아? Are you okay? 이러는 소리가 들리는건 같은데 아파서 그냥 왱왱 거리는 소리로만 들렸다. 얼마나 주저 앉아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겨우 정신 차리고 일어나 캔틴에 들어갔을 때, 모르는 사람들이 나한테 괜찮냐고 물어보는 것으로 보아 좀 오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아픔보다 창피함이 앞섰다. 살다살다 진짜 자빠지면서 머리를 다 박고.. 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장면을 봤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쥐구멍에 숨고 싶을 정도로 쪽팔렸다. 그리고 내 머리도 걱정이 됐다. 검정색 헤어넷을 쓰고있어서 안 보였는데 왠지 혹이 생겼을 것 같기도 하고, 바닥에 쓸리면서 머리카락이 다 빠져버렸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가해자님께서 머리 상태 좀 보게 벗어보라 했지만 정말 머리털 다 뽑혀있을까봐 못 벗었다.

 차마 헤어넷은 벗지 못하고 캔틴에 앉아 쪽팔림과 고통을 좀 진정시키고 있으니 외국인 친구가 나와서 가해자님을 들여보냈다. 나도 바로 들어갈까 했지만 정말 머리카락이 다 없어지진 않았나 확인은 해야할 것 같아서 여자 탈의실에 잠시 들렀다. 다행히 머리카락들은 잘 붙어있었지만 충격이 컸는지 머리통이 새빨갰다. 피가 나는 줄 알고 순간 식겁했지만 다행히 그냥 피부가 빨개진 정도였다. 좀 걱정되긴 했지만 피도 안 나고, 어지럽지도 않으니 괜찮겠지 싶었다. 그 때만 해도 가해자님 한 대 쥐어박고 밥이나 한 끼 얻어먹어야지 했는데.

 

 새빨개졌지만 머리털은 뽑히지 않은 내 상태를 확인하고 다시 돌아가는 길에 공장 직원들의 안전을 담당하는 초록 모자를 쓴 아주머니가 다가와 괜찮냐고 물어봤다. 이 때 난 아무것도 아니라며 들어가서 일을 했어야만 했다. 그랬어야만 했는데.. 혹시 모르니 확인해보자는 아줌마를 따라가버렸다. 바보같게도. 그리고 그 때까지 이 일이 심각한 일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생각하지 않았고, 쪽팔림 때문인지 아니면 머리의 충격 때문인지 실실 웃고만 있었다. 정말로 잠시 미쳤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를 양호실 같은 곳으로 데려간 초록 모자의 아줌마는 내 머리 위에 얼음팩을 올려주며 왜 머리를 박았느냐 물어봤다. 아줌마도 웃으면서 물어봤고, 나는 반 미쳐있었던 상태였기에 아무렇지 않게 그냥 다 말했다. 장난치다가 발 걸려 넘어졌다고. '걸려 넘어졌다'고 말할 때 확 굳어버리는 아줌마의 표정을 보며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꼈을 땐, 이미 늦은 때였다.

 갑자기 정신이 든 나는 그 때부터 아는 영어 단어와 표현을 총동원해서 이 상황을 수습하려 했다. '아, 그게 발이 걸리긴 했는데 제가 먼저 시비 걸은거에요. 지금 진짜 괜찮아요. 이제 빨간거도 없어진 거 같은데 저 일하러 들어가도 될까요? 저도 장난 걸었으니까 제 잘못이죠. 다 제 잘못이에요. 머리를 박긴 했는데 그냥 light bang이었어요. -light bang이라니 아줌마도 웃더라- 그 친구는 잘못 없어요. 제가 혼자 넘어진거에요 사실..' 라며 개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졌고, 아줌마가 원하는건 널 넘어뜨린 그 사람의 이름이 무엇이냐 뿐이었다. 이 때부터는 박은 머리가 아니라 뇌가, 정신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어..



트레이시 닮은 개구리 왕눈이의 투투. 둘 다 못됐다.



 무서운 사람으로 돌변해버린 아줌마의 표정에 그 친구의 이름을 말했고, 잠시 기다리라며 나간 아줌마는 한참을 돌아오지 않았다. 양호실 같은 그 곳에 혼자 얼음팩을 머리에 이고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한걸까, 그 친구가 나 때문에 해고 당하지는 않겠지, 내가 왜 넘어졌지, 내 머리가 정말로 무거운가, 나는 바보인가, 더럽게 눈치가 없는건가...


 30분 쯤 지났을까, 초록 머리의 아줌마가 돌아왔고 슈퍼바이저한테 말했으니 기다려보랬다. 멍했다. 원래 같았으면 지금 들어가서 어지러운 X-Ray Feeder를 하고 있었을 시간인데 나는 왜 여기 있는걸까. 얼마 지나지 않아 개구리 왕눈이의 아로미 아빠를 닮은 슈퍼바이저 트레이시와 그보다 더 위에 사람 같아보이는 아저씨가 들어왔다. 둘이서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는데 심장이 터질 뻔 했다. 그 때부터 이미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했었던 것 같다. 너무 놀라서... 트레이시와 아저씨는 다시 한 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해보랬다. 지금이라도 나 혼자 넘어졌다고 말할까 싶었지만 초록 머리 아줌마가 옆에서 째려보고 있었고 둘은 이미 그 아줌마한테서 이야기를 듣고 왔을테니.. 혼란스러웠지만 최대한 아무 일도 아닌척 조곤조곤 말했다. 난 지금 괜찮고, 넘어진건 내 전적으로 잘못이라고. 내가 뛰어서 그런거라고. 셋이서 앉아있는 나를 둘러싸고 서서는 내려다보는데 덩치 큰 고등학생들한테 괴롭힘 당하는 초등학생이 된 느낌이었다. 

 마지막에 난 정말 괜찮아! 일하러 갈 수 있어! 라고 말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오히려 트레이시는 독을 가득 품은 아로미 아빠가 되어서는 '너 모서리에 박았으면 죽었을지도 몰라. 그럼 우리가 감옥에 가야돼. 왜냐면 우리한테 책임이 있으니까. 너 지금 이게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알아?'라며 잔뜩 겁을 줬다. 나 지금 이렇게 멀쩡하게 앉아있는데 죽긴 왜 죽냐라며 반박하고 싶었지만 이미 머리가 하얘져서 아무 생각도 안 나는데 영어로 그런 말이 떠오를리가. '우리가 결정을 내려야하니까 너는 지금 짐싸서 집에 가고 내일 출근하면 알려줄게'라는데 느낌이 쎄했다. 아.. 신이시여.

 그 때부터 든 생각은 '해고 당할지도 모르겠다' 뿐이었다. 당장 우리 팀 사람들을 만나야만 할 것 같았다. 그 친구랑도 만나서 우리 지금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냐며 얘기하고 싶었고, 언니 오빠들한테 제가 지금 무슨 짓을 한건지 모르겠다며 하소연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난 그 좁은 양호실 같은 곳에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집에 가보라던 트레이시는 혹시 모르니 나를 관찰해야할 것 같다며 적어도 한 시간은 여기에 계속 있으랬다. 아저씨도 내 머리통을 한 번 보더니 그러는게 좋겠다며. 한 시간동안 상의한 후에 날 어떻게 할지 결정해서 돌아올테니 여기에 있으라며 그들은 사라졌다. 그렇게 나는 똑딱거리는 시계소리와 내 심장소리, 혈액 흐르는 소리만 들리는 미칠 것 같은 그곳에서 한참을 혼자 있었다. 화장실도 갈 수 없었고, 캔틴에 가는건 절대 금지였다. 심지어 문도 잠겨있었더란다.


 그 시간동안 내 상상은 저 멀리 우주까지 다녀왔다. 해고가 되면 어쩌지, 하면서도 안 그래도 바쁜 파트인데 둘이나 짜르겠나 싶기도 하고, 벌로 화장실 청소나 새벽 5시까지 공장 전체 청소를 시킬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 그러면 '해고 안 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며 웃으면서 청소해야지 하는 생각도 들고.. 언니 오빠들 만나면 내가 이 망할 공간에 갇혀서 혼자 이렇게 상상한 것도 재밌게 얘기해야지 했다가도 만나서 얘기할 기회도 주지 않을지 몰라.. 하는 생각도 들고. 미쳐가는 것 같았다. 핸드폰도 없었고, 이야기를 나눌 사람도 없던 그 공간은 정말이지...



 그렇게 미칠 것만 같은 시간도 결국엔 흘러 다시 그 둘이 내려왔다. 둘이 웃으면서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려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들어오자마자 내 머리 상태를 묻고는 나를 또다른 차원의 방으로 데려갔다. 양호실에서 나와 'Interview room'이라 쓰여진 더 좁은 공간으로. 긴장이 됐다. 자리에 앉으라며 친절하게 내뱉는 말이 이상하게도 귀에 따갑게 꽂혔다. 혹시라도 해고라고 말하면 울면서 무릎이라도 꿇고 이렇게 이렇게 말해야지라며 머릿 속으로 대사도 읊고 있었다. 그래도 아닐거야, 아니겠지 스스로 다독이면서.

 그치만 참 야속하게도 최악의 경우라 생각했던 그 말이 아저씨의 입을 뚫고 나와 내 귀에 박혔다. Unfortunately, today is the last day of your work here. The boy who trapped you has already gone. 예상했었던 시나리오 중 하나였지만, 또 나름대로 대사도 준비했었지만.. 정말로 그 상황이 되니 그냥 멍했다. 눈이 풀리고 사람이 둘로 보이는 것 같았다. 안전과 관련된 건 참아줄 수 없다며 나는 너 때문에 감옥가기 싫다고 말하는 독두꺼비 같은 트레이시는 이미 비수가 꽂힌 내 마음을 막 후벼파댔다. 생각했던 대사도, 행동도 다 잊고 울먹거리며 Could you give me one more chance please?라고 물었지만 안전과 관련된 이상 기회 따윈 없다며 매몰차게 말했다. 그리곤 잘 가라며 둘은 나갔다. 정말, 차가웠다. 냉동된 생닭만큼이나.



 난 이렇게 떠나더라도 정 들었던 사람들한테 인사는 하고 싶었다. 언니 오빠들 정말 좋은 사람들이라고, 정말 친해지고 싶었는데 더 함께하지 못해 아쉽다고 말하고 싶었고, 이 황당한 사건에 대해서 하소연도 하고싶었다. 짤리긴 했지만 어쨌든 재미있는 이야기거리이긴 하니까. 그리고 같이 짤린 그 친구한테도 미안하다고, 우리 이제 어떡하냐며 얘기하고 싶었는데... 매몰찬 대사만큼이나 매몰차게 쫓겨났다. 빨리 나가라며 탈의실까지 쫓아와서 재촉하고, 출입증도 뺏기고.. 공장을 완전히 나오고 나서야 자유가 됐다. 정말로 해고 됐고, 쫓겨났다 나는. 그렇게나 힘들게 들어간 잉햄에서, 3주만에 말이다.

 


 쓸데없이 눈화장을 하고 간 그 날, 나는 잉햄에서 기차역까지 10분 쯤 되는 거리를 정말 펑펑 울면서 걸었다. 닭똥같은 검정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슬픈 영화를 보거나 크게 다쳐도 잘 우는 법이 없는 난데 이상하게도 계속 눈물이 났다. 매일 일이 끝나면 함께 일하는 커플 언니오빠의 차를 타고 집에 갔었는데. 오래간만에 기차역까지 걸어가는, 가로등도 몇 없는 캄캄한 그 길은 무섭다기보다 서러웠다. 인사라도 하게 해주지, 누구라도 만나서 얘기 좀 하게 해주지, 무슨 힘든 일을 시켜도 좋으니까 차라리 벌을 주지, 내일 당장 뭘해야하지.. 무엇보다 일하면서 나눴던, 또는 캔틴에서 나눴던 수많은 말풍선들이 이뤄지지 못하고 펑펑 터져버린게 가장 서러웠다. '저 돈 모아서 여행할 거에요!'라던가 '남자친구도 잉햄 붙으면 우리랑 오일쉐어 하자~'라던가. 아, 캄캄한 그 길이 마치 내 미래 같았다. 


 미안함, 서러움, 아쉬움, 허전함, 내 스스로에 대한 자책감 등등 온갖 나쁜 감정들이 한꺼번에 휘몰아치면서 강철 같았던 내 멘탈 껍데기를 와장창 부숴버렸다. 집에 돌아오는길에도 울고, 와서도 울고, 같이 일하던 오빠랑 전화하면서 또 울고, 자기 전에도 울고, 눈을 뜨자마자도 울었다. 하늘에 지나가는 구름만 봐도 눈물이 났다. 주변의 모든 게 다 서러웠다. 같이 짤린 그 친구는 연락도 안 되서 죽은건 아니겠지 하는 말도 안되는 생각도 들고, 호주에 오지 말았어야 했나 하는 온갖 극단적인 생각이 다 들었다. 또 이대로는 너무 힘들어서 한국에 가야겠다는 생각에 기차에서 항공권 가격을 알아보기도 했다. 아마 잔고가 있었으면 그 즉시 결제했을지도 모르겠다.

 집에 도착해서도 한참을 울다가 겨우 씻고 침대에 누웠다. 자고 일어나면 괜찮을거란 생각에 빨리 잠이 들고 싶었는데 아까처럼 심장이 계속 두근두근거려서 잠도 안 왔다. 술이라도 마실까 했는데 사러 나가기는 또 귀찮고.. 아까 거기서 이렇게 할걸, 저렇게 할걸 하는 후회에 또 눈물도 나고 그랬다. 계속 우는 내가 싫어서 포켓몬도 봤다가, 미드도 봤다가.. 새벽 4시가 되어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평소 11시, 12시가 되어서나 눈을 뜨던 나는 다음날 아침 8시에 잠에서 깼다. 꿈에서는 또다른 일자리를 찾아다녔고 눈을 뜨니 오늘은 할 일 없는 금요일이었다. 그래서 또 울었다. '오늘 뭐하지'하는 생각이 이렇게 슬픈 건지 몰랐었다. 한참을 소리없이 질질 짜다가 다행히도 다시 잠이 들었다. 이번에는 꿈에서 일자리를 찾았었는데 그럼에도 기쁘지가 않은 꿈이었다. 꿈나라를 헤매다 눈이 번쩍 뜨인건 11시가 되어서였다. 남자친구는 그 시간에 여느 때와 같이 출근을 했고, 난 그 모습을 보며 괜히 더 화가 났다. 남자친구한테 화가 나는게 아니라 내 자신한테 화가 났다. 왜! 너는! 출근을! 못하니! 악!

 원래 같았으면 눈 뜨자마자 식빵을 구워 아보카도를 발라먹고 샤워를 했을테지만 이 날은 배도 고프지 않았다. 전 날 오후 8시에 캔틴에서 밥을 나눠먹고 새벽 4시가 되어 잠들 때까지 아무 것도 먹지 않았음에도 뭔가를 먹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워낙 먹는걸 좋아하는 나라 우울한 일이 생길 때면 먹는 거로 풀고는 했었는데 밥 생각도 안 나는걸로 보아 정말로 충격이 컸나보다. 3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밥맛이 없어서 겸사겸사 다이어트 중이다. 호주 와서 수시로 쳐먹느라 5kg이나 쪘었는데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갈 때가 되었나보다.

 배도 안 고프고, 나갈 일도 없으니 더 할 일이 없었다. 침대에 누워서 멍하니 또 생각만 했다. 거기서 왜 그 아줌마를 따라갔나, 왜 실실 쪼개며 사실대로 말한 걸까 그냥 혼자 넘어졌다고 할걸.. 어제부터 수 백번은 더 한 후회를 또 하고 또 했다. 그거 말고는 드는 생각도 없었다. 전 날 너무 운 탓에 띵띵 부은 눈으로 또 눈물이 질질.. 한 번 터진 울음은 잘 안 그치는가보다. 


 해고 이후 연락이 되지 않아 죽은 줄 알았던 그 친구는 다행히 잘 살아있었다. 통화를 하며 어제 일어난 말도 안 되는 그 일에 대해 얘기를 나누니 그나마 좀 괜찮아지는 것 같았다. 그 날 집에 와서 남자친구한테 털어놓긴 했지만 아무래도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해야했고, 또 그 환경에 대해서도 모르기 때문에 답답한 게 있었는데 해고 당한 당사자들끼리 얘기하니 체증이 좀 가시는 듯 했다. 그치만 막막해진 현실이 바뀌는건 아니었다. 그래서 나 오늘부터 뭐하지?... 엉엉..

 결단력이 좋은건지 그 친구는 오늘 농장에 등록하러 간다고 했고, 할 일 없으면 집구석에 쳐박혀있지 말고 같이 가자 했다. 혼자 쳐박혀있으면 또 하루종일 질질 울고만 있을 것 같아서 따라가기로 했다. 엄청 멀다해서 멀어 봤자 얼마나 멀겠나 하고 따라가긴 했는데 정말 더럽게 멀었다. 차 안에 있었던 시간만 6시간이 넘을 듯..



카메라를 왜 안 가지고 나갔을까. 가는 길, 오는 길 내내 예뻤던 바깥 풍경



 버섯 농장에 등록하러 우리가 향한 곳은 스탠소프(Stanthorpe). 구글에 대충 찍어도 브리즈번 시티에서 차로 3시간이 걸리는 엄청나게 먼 곳이었다. 200km를 가야한다기에 운전을 해본 적도 없고, 호주에 와서는 차에 타 본 적도 별로 없는 나는 '아 그냥 멀겠구나..' 싶었는데.. 완~전 먼 곳이었다. 차 타는걸 원래 무서워하는데다 뭔가 믿음직스러워 보이지 않는 친구였기에 -가해자님- 행여 사고가 나지는 않을까 한동안은 다리에 힘주고 앉아있었는데 하도 오래 가다보니 익숙해진건지 긴장이 풀렸다. 또 시티에서 벗어나니 도로에 다니는 차도 드물었고, 길도 저~ 멀리까지 쭉쭉 뻗어있어서 사고가 날 것 같지는 않았다. 또 차를 타고 달리며 금방이라도 화산 폭발할 것 같이 생긴 산과 드넓은 들판에서 풀을 뜯는 소, 말, 염소도 봤는데 로드 트립하는 느낌도 들었다. 나도 면허를 따고 호주에 올 걸 그랬다.


 몇 시간을 달리면서 우리는 계속 얘기만 했다. 간간히 밖에 지나가는 동물 구경도 하고, 산 구경도 하면서. 이야기의 대부분은 당연히 우리를 한 순간 실직자로 만들어버린 어제의 그 사건이었다. 내가 잘못했다, 거기서 그런 말을 하면 안 됐었다 하는 자책도 하고 너의 머리는 왜 그렇게 무겁냐는 얘기도 하고, 이렇게 심각한 일인 줄은 몰랐다, 뭐 그래도 우리는 잉햄의 전설이 되었으니 뿌듯하게 생각하자 등등.. 사과도 하고 자책도 했지만 결론은 슈퍼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로 끝났다. 또 그밖에 과거/현재/미래의 연애 이야기와 나이 스물 다섯에 연애 초보이신 이**님의 연애 상담-잉햄에서 미래의 여자친구를 만들 수도 있었는데 해고 당하게 해서 미안-, 어디다 별로 말한 적 없는 집안 이야기, 학교 이야기, 군대 이야기, 여행 이야기 등등 별 얘기를 다 했다. 호주에 와서 하루동안 이렇게 많은 얘기를 쏟아낸 건 처음인 것 같다. 몇 시간 동안 쉴새없이 달리는 차 안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건 대화 밖에 없었기 때문에 왕복 8시간 동안 24년 산 인생스토리를 다 늘어놓은 것 같다. 나름의 교훈도 있고, 재미도 있었던 만담 드라이브였다.



실제로 보면 사진보다 몇 배는 더 예쁘다. 쏟아질 것 같은 별들.



 8시간의 드라이브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건 돌아오는 길, 산 중턱에 내려서 바라본 하늘의 별들. 태어나서 이렇게나 많은, 이렇게나 밝은 별들을 보는건 처음이었다. 위를 쳐다보느라 목도 아프고 어지럽기도 했지만 눈을 뗄 수 없을만큼 예뻤다. 추워서 오들오들 떨면서도 우와~ 하면서 또 보고, 또 보고 사진도 찍었다. 와.. 하는 감탄 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희미하게 보였던 별똥별에 '잘 되게 해주세요!'라고 빌긴 했는데 주어도 목적어도 없이 빌어서 별똥별이 알아 들었을랑가 모르겠다. 소원 많이 들어줘봤을테니 개떡 같이 빌었어도 찰떡 같이 알아들었으리라 믿으련다. -잘 되게 해주세요 좀!!!!! 그만 우울하고 싶어요.. T_T-


 쏟아질 것 같은 별들도 보고, 한식당이 모여있는 런컨에서 호주에 와서 처음 먹어보는 감자탕도 얻어먹었다. 차도 얻어 타고 덕분에 별도 보고 감자탕도 얻어먹고.. 좀 미안하긴 했지만 아무렴 나는 지금 가진 게 없는 백수인걸........ 어쨌든 너 때문에 내가 머리를 박은건 사실이니까. 그래도 기억해뒀다가 언젠가는 갚도록 노력해볼게.. 보고있니? ^^*

 입에서 녹는 감자탕을 마지막으로 길었던 드라이브도 끝이 났다. 딴건 모르겠지만 별은 진짜 최고였다. 그리고 집에 쳐박혀있는 것보다 훨씬훨씬 나았다. -장시간 운전하느라 수고하신 더러운 차 주인 이**님께 다시 한 번 공개적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꼭 보시길 바라요.-



 그렇게 속 이야기를 꺼내다못해 토해내듯 뱉어냈던 긴 드라이브로 하루를 보내고. 좀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토요일 아침이 되니 또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 날은 원래 할 일이 없는 주말인데도 그냥 허했다. 어제 그렇게 한참동안 말을 했는데도 뭔가 꽁했다. 정작 중요한 게 없어진 느낌? 허한 느낌? 모르겠다, 이게 무슨 느낌이었는지도. 한국에 있는 친구들을 만나서 미친듯이 수다를 떨고 싶은 그런 하루였지만 친구들은 너무 멀리 있었고, 바빴다. 호주에는 그럴 친구가 없다는 사실에 또 더 허해지고.. 밑 빠진 독 마냥 멘탈 어딘가에 구멍이 뻥 뚫린 것 같았다. 바람이 숭숭 새어나오는 그런 커다란 구멍이.

 남자친구를 따라 나와 집 근처 도넛 공장에 이력서도 내고, 달콤한 아이스크림도 먹고, 오래간만에 장도 봤다. 그치만 계속 침울했다. 남자친구가 안쓰러워보인다며 힘내라는데 그 말마저도 짜증 섞인 말로 들릴만큼 나는 세상에 불만 많은 사람이 되어버린 듯 했다. 집에 돌아와서 소리를 꽥꽥 지르며 발라드를 따라부르기도 하고 죽은듯이 잠도 잤지만 나아지질 않았다. 어쩌면 머리를 박은 후유증일지도 모르겠다.



#나홀로 #맥주 #성공적



 정신이 나간 것 같은 내 자신을 스스로 감당할 수가 없어서 술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원래 전날 마시고 잘 예정이었지만 드라이브가 피곤했었는지 금방 곯아떨어져서 마실 필요가 없었는데 이 날은 내 스스로를 진정시키기 위해 알콜이 필요할 것 같았다. 7시까지인 술가게에 가기 위해 6시 50분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뛰어갔다왔다. 그렇게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혼자서 술을 마셔보았으며, 처음으로 맥주 한 병을 다 비워봤다. 술을 마시고 위에 구멍이 뚫리더라도 당장 뚫린 내 멘탈부터 복구해야할 것 같았기에 벌컥벌컥 들이켰다. 미쳤었던게 확실하다.


 나와는 상극인 알콜을 그렇게 벌컥벌컥 들이키고 나니 잠이 절로 왔다. 해고를 통보받은 목요일 밤처럼 두근대는 심장소리를 자장가 삼아서 곤히 잠이 들었지만... 또 깼다. 술을 먹으면 잠이 잘 오는것만 기억했지 마시고 나서 새벽 3시, 4시면 눈이 떠지는 내 술버릇(?)은 잊었었다. 대학교 1학년 때 MT 가서도 가장 먼저 죽었다가 제일 핫한 시간에 부활해서 다시 놀던 나를 잊고있었던 것이다.. 결국 이 날도 잠은 제대로 자지 못했다. 

 


의외로 따뜻한 남자인 리딩핸드 헤이든


귀여움을 담당하던 테라퐈이


이상한 앤 줄만 알았던 브라이언


따뜻한 카톡 한 줄



 3일이 지난 오늘, 일요일이 되어서야 좀 회복이 된 것 같다. 같이 일했던 언니 오빠들과 외국인 친구들에게 위로 메시지들도 받고, 또 같이 사는 콜롬비아 친구들이 힘내라며 점심으로 West End에 위치한 콜롬비아 전통 음식도 사줬다. -잉햄의 시급을 듣고는 더 울어도 될 것 같아..라고 하기도 했지만.- 또 브리즈번에서 가장 오래된 친구인 나나를 만나서 함께 저녁을 먹으며 다섯 번 째 쯤 반복한 나의 해고 이야기를 들려주며 위로를 받았다. 말은 잘 통하지 않지만 그래도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좋은 말을 듣다보니 괜찮아지는 것 같다. 물론 내일 당장 할 일이 없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지만 뭐, 다 잘 될거다. 난 아직 젊지 아니한가. 하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어버린 잉햄 보닝 + 모르는 사람들 모임. 다들 벌써 그리워요 엉엉



 내 바보같고 철없는 행동으로 인해 호주 워홀의 마지막인줄만 알았던 잉햄에서 허무하게 해고되긴 했지만 누구 말처럼 잉햄의 전설이 되었으니 뿌..듯하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댔는데 적어도 나는 잉햄을 -강제로- 떠나며 전설적인 에피소드를 남겼으니 그걸로 됐다. 구전으로든, 블로그를 통해서든 두고두고 회자될 이야기임은 확실하지 않은가. 나도 은근히 관심 받길 좋아하는 사람이라 이런걸 좋아한다. 너 그거 알아? 잉햄에서 머리 박고 짤린 사람도 있대! -안녕하세요. 머리 박고 강퇴 당한 사람이에요.. ㅜ_ㅜ-

 어떻게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최대한 노력하고 있지만.. 아쉬움이 큰 건 사실이다. 여기 사람들이랑 더 친해져서 나도 막 같이 놀러다니고 싶었는데.. 3주는 그만큼 가까워지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함께 찍은 사진도 없어서 더더더더더더 아쉬움이 남는다. 맨날 셀카나 찍으면서 놀껄.. 검정 헤어넷 쓰고 못생긴 얼굴만 내밀고 있는 모습도 남겨두지 못해 아쉽다. 



 주말동안 와르르 무너져내린 멘탈을 어느 정도 복구했으니 이제 월요일부터 또 지긋지긋한 구직활동을 시작해야겠다. 더 잃을 게 없으니 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이왕 머리 다친거 정말 미친 사람처럼 이력서를 뿌리고 다닐 생각이다. 정 안될 것 같으면 '호주가 나를 너무 사랑하는가 보다.' 하며 농장에 가서 세컨 비자를 딸 생각도 하고 있다. 6개월동안 호주에 있으면서 백수로 너무 오랜 시간을 보냈기에, 마냥 기다리며 낭비할 시간이 이제는 없다. 앞으로 일주일동안 이것저것 찾아보며 진지하게 고려해봐야지. 계획에 없었던 일이라 걱정이 되긴 하지만 계획에 없었던 일이라 더 재밌을 수도 있지 않을까. -파워 긍정!-


 아무튼 새로운 일자리가 됐건, 아니면 새로운 계획이 됐건 다 괜찮았으면 좋겠다. 별똥별한테 주어 목적어 없이 빈 소원이 이루어졌으면, 모든게 잘 됐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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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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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수정/삭제
    2016.08.31 02:09

    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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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수정/삭제
    2016.09.20 08:12

    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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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수정/삭제 Zzz
    2016.10.03 02:47

    저 작년에 보닝에서 일햇었는데 티랑 브라이언 헤이든 대*오빠 탐*오빠 트레이시 등등 반가운 이름이네요 ! 글을 너무 잘쓰셔서 놀랫어요 쑥쑥 읽히네요 계속 연재(?)하셔서 책 까지 내시면 좋겟다고 생각드네요 !!! 어안이 벙벙한 일에 당황하셧겟지만 시간이 지나면 아마 추억처럼 생각할수도 있을거 같아요 ! ~ 무튼 읽다가 추억여행햇어요 앞으로도 자주 볼게요 ~

    •  수정/삭제 Darney
      2016.10.03 09:25 신고

      제 글을 읽고 추억여행을 하셨다니 뿌듯하네요 :D 좋은 말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열심히 연재(?) 해볼게요!ㅋㅋ 자주 들러주세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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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수정/삭제
    2017.08.29 09:26

    ㅋㅋㅋㅋㅋ미안하다 내가 노마 아줌마한테 말해서 니를 찾지 못해서........🤦🏻‍♂️

Darney

그만 좀 싸돌아다녀 이것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