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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짧고 굵은 4월의 마지막 주말 -

갑작스레 찾아온 여름 갑작스레 찾은 바다, 격포




 하얗게 불태운 몇 주 간의 중간고사가 끝난 4월의 마지막 주말. 1년이 넘도록 보지 못한 집안 어른들께 잘 다녀왔다는 인사를 드리러 전주로 향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내내 이어진 시험에 정신도, 체력도 너덜너덜해져 먹방의 성지인 전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도 정신은 그저 멍하기만 했다. 머릿 속에는 그저 어른들께 인사 드리고, 비싸고 맛난거 배부르게 얻어 먹고서 얼른 집에 다시 올라와 침대에 누워있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토이푸들새 식구 봄이 (토이푸들, 1세)



 KTX를 타고 저녁 느즈막히 도착해 오랜만에 만난 숙모, 삼촌님 그리고 사촌동생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눴다. 못 보던 사이 생긴 새 식구 봄이-강아지, 아기 토이푸들-와도 아주 격렬한 인사를 나누었다. 이 날의 저녁 메뉴는 혀에 올리는 순간 사르르 녹아내리는 고급 한우였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은 음식에 시험 스트레스가 싹 가시는 듯 했다.

 모든게 계획한대로 완벽했다. 반가운 사람들과의 인사, 비싸고 맛있는 음식과 함께 밀린 수다. 이제 다음 날 일찍 일어나 서울로 올라가서 내 방 침대에 뻗기만하면 됐다. 시험도, 할 일도, 약속도 없이 온전하게 내 것일 일요일 저녁이 기다려졌다.


 하지만 다음 날, 나는 서울로 올라가는 버스가 아닌 격포로 향하는 가족차에 탑승했다. 맛있는거 사줄테니 조금 더 놀다가라는 어른들의 달콤한 유혹에 그만 넘어가버린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4월의 마지막 일요일, 갑작스레 바다로 향하게 되었다.



격포항격포항



 전주에서 차로 1시간을 조금 넘게 달려 격포에 도착했다. 전라북도 부안에 위치한 격포는 아름다운 해변과 채석강으로 유명한 곳이라고. 이 날 처음 들어본 이름이라 낯설었지만 차에서 내리자마자 느껴지던 바다내음이 일단 마음에 들었다. 바닷가를 따라 늘어선 횟집들, 물 위에 떠있는 고기잡이 배, 특이한 모양의 섬과 길게 이어진 산책로. 전형적인 한국 해안마을의 모습이었다.



격포항격포항의 고기잡이배들



 격포로 향하는 차 안에서 카메라 렌즈를 닦으며 맑게 개인 하늘과 투명한 봄바다를 살짝 기대했었다. 하지만 이 날도 어김없이 날아온 미세먼지 때문에 안타깝게도 파란 하늘은 볼 수가 없었다. 게다가 갑자기 찾아온 여름 날씨에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그래도 아직 4월인데 27도라니, 봄은 어디로?



격포항 산책로



 미세먼지와 날씨 탓에 봄바다를 찾은 기분이 좀 덜 살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과 나와 바닷바람을 쐬니 좋았다. 멀리까지 산책을 나온 강아지 봄이도 신이 나서 풀쩍풀쩍 뛰어다녔고, 가족들의 표정도 밝았다.

 우리는 저 멀리까지 이어진 산책로를 걷기로 했다. 왼편에는 산, 오른편에는 바다를 두고 이어진 멋진 산책로였다.



격포항


격포항 격포의 신기한 절벽



 산책로 왼편으로는 신기한 모양의 돌벽이 산책로를 따라 쭉 이어져있었다. 과학 교과서에 나올 것 같은 층층이 쌓여진 지층이 인상 깊었다. 수많은 층 어딘가에 공룡 화석이 숨겨져 있을 것만 같다. 

 시간이 없어서 이 날은 가보지 못했지만, 이 근처 '채석강'은 이와 비슷한 절벽과 맑은 물, 백사장이 어우러진 풍경이 아주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하다. 





 층층이 쌓여진 돌벽 위에는 초록숲이 울창했다. 초록 나무들 사이 중간중간 핑크빛을 내뿜는 산벚꽃나무가 유독 눈에 띄었다.





 산책로 중간중간에는 이렇게 바다로 이어진 계단도 놓여져 있었다. 이런 걸 보면 꼭 쓸데없이 내려가보고 싶은건 왜일까..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물색이 탁한데도 물고기가 정말정말 많았다. 산책로 위에서도 보이고, 계단에 내려갔을 때는 더 잘 보였다. 기다란 낚싯대를 들고 오신 분들이 많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호주에서 *낚시하던 기억이 새록새록.. 처음으로 팔뚝만한 물고기를 낚아올리던 그 때의 손맛(?)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격포항



 산책로를 걸을수록 바다와 조금 더 가까워지는 느낌! 아무 정보도 없이 찾은 곳이라 이 길의 끝에 뭐가 있을지 몰라서 괜히 더 설레었다. 마음 같아서는 저~ 멀리에 보이는 빨간 등대까지 가고 싶었는데 시간이 없으니 이 또한 다음을 기약하기로.



산책로다정한 부부의 모습 + 멍멍이



 동생들이랑 사진을 찍다가 앞서 걸어가시는 숙모, 삼촌 두 분의 뒷모습도 한 장 찍어드렸다. :D



격포


바다바다!



 얼마나 걸었을까, 사진 팡팡 찍어대며 걷다보니 어느새 산책로의 끝에 다다랐다. 촤아아- 하는 파도 소리와 방파제가 있는, 진짜 바다였다. 산책로를 걸을 때만 해도 살랑살랑하던 바람이 파도 앞에서는 매서웠다. 머리카락이 양 뺨을 자꾸 때리는 바람에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



바다를 배경으로 한 가족사진


바다를 배경으로 한 남매사진



 정신없이 불어오는 바람의 중앙에서 다같이 사진을 찍었다. 바람 때문에 산발이 된 머리와 제대로 뜨지 못한 눈 덕분에 예쁘지는 않지만, 오랜만에 가족들-(+)멍멍이-과 함께 찍은 사진이라 특별했다. 멋진 배경은 덤! 



격포



 산책로에만 있는 줄 알았던 바다로 향하는(?) 계단은 여기에도 있었다. 매서운 바람에 휘청휘청 하다가 떨어지면 어쩌나 무서웠지만 사진을 위해 한 번 용기를 내봤다. 뭐 때문에 계단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위험한 것 같다. 무서움에 사진 한 장 대충 찍고 계단을 기어올라왔다. 허세 폭발하는 청소년들이나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아이들은 특히 조심해야 할 구간!



남매 그림자샷



 파도치는 저 구간이 산책로의 완전한 끝은 아니었다. 가고 싶어했던 빨간 등대까지 쭈욱 또다른 길이 이어져 있었지만 다음날 등교를 위해 저녁에는 버스를 타야했기에 시간 관계상 파도치는 곳을 끝으로 길을 되돌아왔다. 해를 등지고 길게 늘어진 그림자를 또 카메라에 찰칵. 이제 막 고등학생이 된 막내 동생이 제일 시크하다. -그 외 철없는 26살 대학생 누나1, 철없는 23살 돈 버는 누나2-



토이푸들꽃 달고 꽃 먹는 멍멍이



 새 가족 강아지 봄이는 산책로를 걷는 내내 특유의 매력으로 다른 사람들의 귀여움을 샀다. 사진은 산책 후 꽃 달고 꽃 먹는 모습.





 짤막하게 격포를 구경한 후,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한 횟집을 찾았다. 움직인 다음에는 역시 뭘 먹어줘야 제 맛! 어제는 육지의 소고기를 먹었으니 오늘은 바닷가에서 해산물로 위장을 채워야지.



진돗개횟집의 멍멍이 맹구(여, 임신 중)


멍멍이 교감 시간



 주문한 음식이 나올동안 횟집 강아지 맹구와 잠시 놀아줬다. 처음에는 봄이랑 맹구가 뽀뽀(?)도 하고 그래서 잘 놀겠지 싶었는데 자기보다 큰 강아지를 처음 본 봄이가 놀란건지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덕분에 식사하는 동안 밖에 묶여있을 예정이었던 봄이는 향긋한 개껌과 함께 차 안에 머무르게 되었다. -물론 창문은 열어둔채로- 맹구가 참 잘 생기긴 했는데 덩치가 커서 무섭긴 했다. 사람을 좋아하는지 반갑다고 앞발 들고 달려드는데 순간 움찔. 봄이가 왜 부들부들 떠는지 알 것도 같았다..



조개찜조개찜을 챱챱



 강아지들은 잊고 다시 횟집에 들어서 본격적인 해산물 흡입을 시작했다. 조개찜, 해물 칼국수, 광어회 그리고 매운탕까지. 이 날 밤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 배가 빵빵할 정도로 정말 잘~ 먹었다!




 호주에서 돌아오자마자 학교에 다니느라 쉴 틈이 없었다. 여독도 다 풀리지 않았고, 바뀐 생활에 적응도 못한 상황에서 전공 수업을 따라가느라 지난 두 달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그런 나에게 중간고사 기간은 정말.. 지옥 같았는데.. 그 때 쌓인 스트레스를 주말동안 가족들과 함께하면서 많이 해소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좋은 배경을 뒤로 반가운 사람들이 있었고 맛있는 음식이 있었던, 덥지만 마음은 시원했던 4월의 마지막 주말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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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rney

그만 좀 싸돌아다녀 이것아
@darney.trav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