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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스탠소프 워킹홀리데이]

-EPISODE 064-

Girraween 경치 끝판왕: Turtle Rock(거북이 바위)




 햇살이 따가운 어느 여름 날, 우리는 500ml 생수 한 통을 들고 집을 나섰다. 스탠소프(Stanthorpe)의 뒷산, Girraween(기라윈/지라윈)의 삼대장에 오르기 위해서!

 가장 인기있는 곳이자, 가장 호주스러운 경치로 우리를 Girraween에 입성하게 만든 *The Pyramid 코스, 신기하기는 했지만 다소 실망스러웠던 *Underground Creek 코스에 이은 마지막 삼대장, Turtle Rock. 이 날은 (비공식) 워홀러 최초로 Girraween의 주요 코스를 모두 정복하게 되는, 아주 영광스러운(?) 날이었다.



끝없는 등산길



 이제는 구글 지도도 필요없을 정도로 익숙해진 도로를 따라 30여 분을 달려 도착한 Girraween National Park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차에서 나와 산내음이 물씬 풍기는 공기를 깊게 한 번 들이쉰 후, 우리의 Girraween 도장 깨기가 시작되었다. 이 때는 몰랐다. 산을 정복한다는게 이렇게 죽을 맛일 줄은.



[출처] Girrraween National Park 공식 홈페이지



 삼대장, 그 이름도 멋있는 Turtle Rock(거북이 바위)는 Girraween 등산의 시작지인 주차장(지도의 네모 박스 위치)에서 가장 먼 코스에 해당하는 곳이다. -Mt Norman이나 Underground Creek이 더 멀어보이지만 시작점이 다르다.- 



[출처] Girraween national park 공식 홈페이지



 등산로 입구에 Turtle Rock 코스의 왕복 소요시간이 3-4시간이라 쓰여있는걸 보고 멈칫했지만 이왕 여기까지 온 거 일단 가보기로 했다. 우선은 Turtle Rock 이전의 Castle Rock까지 가는 것을 목표로 두고, 본격적인 등산을 시작했다.



호주의 흔한 도마뱀



 등산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마지막 도장을 깨러온 우리를 반기는 도마뱀을 만났다. 호주에 처음 왔을 때는 도마뱀이 그렇게 신기했는데 이제는 마냥 귀엽게만 보인다. 



여기는 돌산



 길은 생각보다 험하지 않았다. 오르막, 내리막도 심하지 않은 숲길이어서 무난했으나, 머리 위의 태양이 문제였다. 등산을 시작한 지 10분이 지났을 때부터 이 더운 날 도장 깨러 가자며 산에 온 내 자신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물이 없는게 가장 큰 문제였다. 셋이서 이 더운 날, 무려 4시간짜리 코스를 걸으러 오면서 들고온 건 고작 500ml 생수병과 작은 스포츠 물통 하나. 집 냉동실에 얼려놓은 물통이 수두룩한데 왜 이럴 때는 챙길 생각이 안 드는지 모르겠다.



잠시 쉬는시간



 오후 2시에서 3시로 넘어가는 하루 중 가장 더운 시간, 우리는 태양과 가까운 산 위에서 그야말로 사서 고생 중이었다. 얼마 없는 물을 홀짝홀짝 아껴 마시며 산을 오른 지 한 시간 쯤 지났을 때 돌 그늘 아래 앉아 잠시 휴식을 취했다. 이 때까지는 웃으면서 이야기도 하고 좋았다. 양말을 벗어서 돌에 비비면 시원하다느니, 새소리가 좋다느니, 아까 뛰어가는 캥거루를 봤다느니. 이 기세로라면 금방 도착할 것 같은데? 싶었다. 하지만...




여기도 돌 저기도 돌



 그 이후로 이어진 가파른 돌 오르막. 이것만 오르면 다 왔겠지, 이것만 오르면 끝이겠지 했지만 끝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길이 계속 이어질 뿐...



잠시 기절시간



 오르막, 더위, 목마름의 3콤보는 3대장을 정복하겠다는 의지만큼이나 강력해 결국에는 우리 모두를 드러눕게 만들었다. 너무 힘들어서 한참을 말없이 걷기만 하다가 커다란 바위 위로 드리워진 나무 그늘이 나타나자 약속이라도 한 듯 뻗어버렸다. 걸을 힘은 물론 말할 힘도 없었다. 드러누운 내 머리 위를 맴도는게 파리인지 별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정말 너무 엄청 완전 무지막지하게 힘들었다. 



스핑크스?



 하지만 우리는 의지의 한국인! 다시 정신을 바짝 차리고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디어 나타난 표지판! Turtle Rock 바로 전에 있는 The Sphinx(스핑크스)에 도착했다. 등산을 시작한지 약 1시간 반만이었다. 첫 목표로 했던 Castle Rock은 대체 언제 지나친건지, 정신 차려보니 벌써 이곳이었다. 바위 모양이 스핑크스와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눈을 씻고 찾아봐도 스핑크스처럼 생긴 바위는 보이지 않았다. 착한 사람 눈에만 보이는 바위인걸까.



사진 찍는게 좋은 남자친구



 스핑크스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유명한 바위라니 사진은 남겨야 할 것 같아서 남자친구에게 위에 올라가보라 시켰다. 스핑크스 엉덩이 쯤 되어보이는 바위 위에서 찰칵!


 이후로 몇 십 분을 더 걸어서 최종 목적지인 거북이 바위에 도착했다.



거북이 바위 위에서 바라본 스핑크스 바위



 거북이 바위에 기어오르니 말도 안되는 풍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The Pyramid 꼭대기에서 보는 풍경이 감탄스러웠다면, Turtle Rock 위에서의 풍경은 감동이었다. 이 감동을 정말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런지!



세상 꼭대기에서




 알고보니 우리가 오른 이 바위가 거북이 바위이고, 여기서 보이는 사진 속의 특이한 모양의 바위가 스핑크스였다. 조금 전 스핑크스 표지판이 있던 곳은 저 바위의 가장 아래 부분이었던 것! 그제서야 왜 저 바위가 스핑크스라 불리는지 이해가 갔다.






 돈 내고도 못 볼 이 감동적인 풍경을 최대한 오래도록 간직하기 위해 사진을 얼마나 많이 찍었는지 모르겠다. 블로그에 쓸 사진 고르다가 하루가 다 갈 뻔.



이곳이 청산이요



 이곳에서 멍하니 스핑크스 바위와 마주하던 이 때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렇게 멋진 장면을 그냥 보여주기 아까워 그렇게 더웠고, 힘들었고, 목이 탔는가 보다. 중도 포기하지 않은 몇 시간 전의 나에게 참 감사한 순간이었다.



알수없는 컨셉



 거북이 등 위에서 스핑크스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하산했다. 언제나 그렇듯, 내려오는 길은 수월했다. 강렬하던 태양도 구름 뒤에 숨어버렸고, 땀을 식히는 선선한 바람도 불어왔다. 물만 있었으면 완벽한 하산길이었을텐데.. 등산길에 물을 다 마셔버리는 바람에 하산길 마저도 고통스러웠다. 

 수분 부족 때문에 정신줄을 놓은건지, 하산길에 찍은 사진은 정상적인게 없다. 사람에게 물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된 아주 뜻깊은 순간이었다..




근육 캥거루



 목마름과 씨름하며 터덜터덜 산을 내려와 약 4시간 만에 다시 주차장에 도착했다. 대낮에 등산하는 사람, 산책하는 사람들로 시끄럽던 공원은 캥거루 공원으로 변해있었다. 산에 숨어있던 캥거루들이 가족들과 함께 저녁 먹으러 내려오는 시간인 것 같았다. 동물원 밖에서 캥거루를 이렇게 가까이서 만난건 처음이라 더 다가가고 싶었지만 야생의 근육 캥거루에게 맞고 싶지 않아 멀찍이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당근이라도 가져오는건데. -차에 있던 바나나를 던져줘 봤으나 관심이 없었다. 당근이 최고!-



 너무너무너무 힘들었지만 너무너무너무 멋있는 풍경을 볼 수 있었던 Girraween Turtle Rock 등산! 이 날 Turtle Rock 정상에 오름으로써 우리는 스탠소프의 뒷산 Girraween을 완전 정!복!하게 되었다. XD

 (비공식) 워홀러 최초 Girraween 정복을 자축하며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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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Darney

그만 좀 싸돌아다녀 이것아
@darney.trav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