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EPISODE 05 -

안구가 정화되는 신비로운 대나무숲, 치쿠린




외국말인데도 입에 착착 감기는 이름을 가진 치쿠린.

우리의 교토여행은 지난번 포스팅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단풍놀이가 가장 큰 목적이었기 때문에 치쿠린은 그저 거쳐가는 곳 정도였다.

치쿠린이 예쁘다는 이야기는 구글-신-을 통해 많이 듣고, 보았지만 이 때는 푸르른 여름이 아니었기에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었다.



교토 치쿠린(竹林)



그치만 언제나 그렇듯, 기대하지 않은 여행지는 기대 이상의 기쁨을 선사한다.

너무나도 아름다웠던 *덴류지가 그러했고, 그 덴류지 옆의 치쿠린 또한 기대 이상으로 멋있었다.

-정작 기대한 곳은 가지 못하거나 별로였던 것이 함정-


푸르른 이미지 때문일까, 대나무는 여름에만 예쁠 것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의 무식함을 저격하는 듯 가을의 대나무숲은 찬 바람에 잎이 부딪히는 경쾌한 소리를 내며 여전히 푸르렀다.

방금 전 덴류지에서 가을 단풍을 보고 감탄한 우리는 치쿠린에서 가을 속의 여름을 보고 다시 감탄했다.





그 아름다운 대나무 숲길 중간에는 예술을 하시는 분도 있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사진과는 다르게 묘사된 도화지 속 치쿠린의 모습에 감탄하고 한참을 머물렀다.

마치 사진 위에 붓칠을 하고 있는 것처럼 생생한 그림이었다.





화가분께서는 오랜 세월동안 이 자리에서 치쿠린을 도화지에 담고 계신 것 같았다.

물감통에 붙어있는 젊은 시절 화가분의 모습이 담긴 신문기사가 인상깊었다.

한 자리에 머무르지 못하고 항상 이리저리 싸돌아다니는 나는 오랜 시간 한결같이 한 자리에서 치쿠린을 담고 계신 화가분이 참 존경스러웠다.

-게다가 엄청난 금손!-


어느 여행지를 가나 이런 분들이 계시기에 그 곳이 더 빛나지 않나 싶다.

아무리 아름다운 곳인들 누군가 찾아주지 않고, 감동 받지 않고, 담아주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끝이 어딘지 보이지 않는 대나무숲은 바라보고 있으면 신비로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긴 검을 들고 대나무숲을 날아다니는 무협 액션 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나기도 하고 쿵푸팬더가 생각나기도 했다.

그리고 묘하게 귀신이 나올 것 같은 무서운 느낌도 들었다.

-긴 검을 들고 대나무숲을 날아다니는 쿵푸 유단자 팬더 귀신?...-



thumb



문득 올려다본 하늘은 키가 큰 대나무 끝에 매달린 잎들로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피톤치드로 폭풍 샤워를 하는 느낌!

그저 하늘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것 같았다.

튼튼한 대나무 사이에 해먹을 묶고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려 하늘을 보며 누워있고 싶었다.



교토 노노미야 신사 (野宮神社, Nonomiya)



꽤나 길었던 대나무숲길을 걸어나오니 바로 앞에 소원을 잘 들어주기로 유명한 노노미야 신사가 있었다.

소중한 소원을 빌기 위한 사람들로 노노미야 신사는 아주 북적북적했다.





우리도 역시 소원을 빌기 위해 긴 줄 뒤에 섰다.

특이하게도 이 곳에서는 소원을 말하기 전에 독특한 준비 동작(?)을 해야만 했다.


1. 2인 1조로 줄을 선다.

2. 차례가 오면 앞에 있는 회색 통에 동전을 던져서 넣고

3. 앞에 있는 밧줄을 두 번 세차게 흔들어 딸랑딸랑 소리를 내고 -신에게 내가 왔음을 알리는 것 같다.-

4. 공손하게 손을 모아 꾸벅꾸벅 인사를 두 번 하고

5. 박수를 두 번 친 후

6. 눈을 감고 조용히 소원을 빈다.


옆에서 볼 때는 이런 준비 동작을 하는 사람들이 웃기게보였는데 막상 우리 차례가 오니 그 누구보다 진지해졌다.

혹시나 신께서 노하셔 소원을 안 들어줄까봐 진짜진짜 열심히 했다. -내! 소원! 들어!줘!-


특이하게 모든 행동을 두 번씩, 둘이서 해야했는데 홀수를 좋아하는 우리 나라 문화와는 다르다는게 느껴졌다.

나중에 알아보니 노노미야 신사는 특히 사랑을 이뤄주는 곳으로 알려져있던데 그래서 2를 좋아하는게 아닐까 추측해본다.

-사랑을 이뤄주는 신에게 내 건강과 행복을 바랐다 나는..... 부디 소원 무시하지 말아주세요..-





약숫물인줄 알았던 이 물은 신을 만나기 전 깨끗하게 손을 씻는 곳이었다.

-물론 나도 소원을 빌기 전에 깨끗하게 씻었다.-







소원을 잘 들어주기로 유명한 곳답게 곳곳에 많은 이들의 소원이 적혀있었다.

읽을 줄은 모르지만 다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행복한 삶을 바랐을 것 같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신기하게 물 위에 띄워진 소원종이도 있었는데 물에 글씨가 다 지워지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한다.

이것도 뒤늦게 알아서 직접 해보지는 못했다.






이 곳에 있는 제 각각 사연을 가진 모든 소원들이 정말 다~ 이뤄졌으면 좋겠다.

내 소원은 유독 더 잘 들어주셨으면 좋겠고, 그 다음 남자친구의 소원도!





노노미야 신사 뒤로 난 길로도 각기 다른 신을 모시는 신사들이 많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우스꽝스럽게 생긴 가면(?)이 놓아진 곳이 독특해서 기억에 남는다.

웃긴 표정이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신성해보여서 공손하게 사진 찍고 꾸벅꾸벅 인사도 드렸다.

다시 생각해보니 신을 모시는 구조물이 아닐 수도 있겠다 싶지만... 분위기가 표정과 다르게 너무 엄숙했다.

부디 우리가 무례한 여행객이 아니었기를!





아라시야마에는 이 인력거가 없는 곳이 없었다.

노노미야 신사의 끝에도 역시나 손님을 기다리는 인력거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이 인력거 뒤로 센과 치히로에서 본 것 같은 동굴과 기찻길이 있었는데 다음 목적지로 옮겨가느라 제대로 보지 못했다.

일본에서 기찻길은 흔하지만 다른 곳들과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곳이었는데.. 사진 한 장도 찍어오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여행에서는 계획보다도 발길 닿는대로, 마음 가는대로 해야한다는걸 알면서도 가끔 이렇게 후회할 선택을 하는 내가 참 바보같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구나..

다시 아라시야마에 방문하는 그 날까지 이 날의 그 분위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를.




반응형

오사카에서 주말을 | 2015.11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댓글,

Darney

그만 좀 싸돌아다녀 이것아
@darney.trav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