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PISODE 21 -

여행지에서는 내가 나일 필요가 없다.




유독 많은 일이 일어났던 프랑스에서 있었던 일이다.

여행을 하며 워낙 위험하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야경을 보러 나가는건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아름다운 야경을 보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일단 내가 살아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프랑스, 아름답기로 소문난 파리에서 난 마음을 고쳐먹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밤의 에펠탑을 봐야겠다고.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루브르 박물관을 열심히 휘젓고 다녔던 이 날.

날씨가 유독 좋았던 이 날 밤 나는 에펠탑의 야경을 보러 가기로 마음 먹었다.

그렇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아서!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무서워서 -의외로 겁이 많음- 누군가와 함께 나가야 할 것 같았다.

파리에서는 운이 좋은건지 나쁜건지 호스텔에서 독방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호스텔에서 찾는 것은 무리였고..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인터넷 뿐이었다.



프랑스 파리 에펠탑 야경



가장 대표적인 유럽여행 카페인 *유랑 '동행구함' 게시판에 에펠탑 야경 보러 갈 사람을 찾는다는 글을 올렸다.

글을 올린지 얼마되지 않아 꽤 많은 사람들에게 연락이 왔고, 그 중 시간이 안 맞거나 의도가 불순한 사람들을 걸러내니 한 명 밖에 남지 않았다.

인터넷으로 만나는 사람이라.. 이상한 사람이 아닐까 불안했지만 다행히도 괜찮은 사람이었다.


에펠탑 야경 구경을 함께할 동행인은 나보다 2살 어린, 건장한 체격의 남자 대학생이었다.

만나자마자 폭풍 친화력을 보이며 반말까지 하길래 무척이나 당황스러웠지만 뭐.. 성격 좋고 쾌활한 친구였다.

-나랑 동갑인 누나가 있다고 했던 이 친구는 나를 '야', '너'라고 불렀다. 당황스러울 수 밖에-



프랑스 파리 에펠탑 야경



기대 이상이었던 밤의 에펠탑 구경을 하며 이런저런 인생 얘기도 나누고, 저녁도 함께 먹었다.

처음 만난 남자와 함께 있는 시간이 설레고 떨리기 보다는 몇 년지기 동성친구 마냥 편했다.

그만큼 쾌활한 친구였고, 또 첫 -초면에 반말하는 썩 좋지 않은- 인상과는 달리 생각도 깊고, 말도 잘 했다.


어쩌면 서로 한 번 보고 말 사이임을 알았기에 더 편했을지도 모르겠다.

여행을 하게 된 계기부터 여행을 하면서 있었던 일들, 또 과거의 여행과 민감할 수도 있는 개인 문제까지.

에펠탑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파리에서의 밤, 낯선 여행자 둘이 짧은 시간동안 만들어낸 수많은 말풍선들.

그 중 유독 잊혀지지 그 친구의 말 한마디가 이 글의 주제가 되었다.


"야, 여행지에서는 내가 나일 필요가 없어!"



이탈리아 베네치아 카니발



그 순간, 둔탁한 무엇인가로 머리를 팡 맞은 느낌이었다.

그러게나 말야.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어 훌쩍 떠나온 이곳에서 나는 왜 굳이 익숙함을 고집했을까?



스페인 시체스 카니발



화려한 옷을 입고 화려한 가면을 쓴 사람들과 어우러지는 *베네치아의 카니발,

게이 마을로 유명한 *시체스에서 게이들이 주가 되는 카니발은 나에게 낯섦 그 자체였다.

'축제'가 익숙치 않은 4년차 서울 사람에게 온 동네, 온 나라 사람들이 나와서 즐기는 축제의 현장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츄러스


스페인 마드리드 츄러스



음식도 낯설었다.

소금이 잔뜩 들어가 내 입맛엔 너무나 짰던 해산물 튀김부터 스페인에서 아침으로 먹은 설탕 없는 츄러스까지.

익숙한 이름의 음식들이었지만 모양새나 맛은 전혀 익숙하지 않았던.



프랑스 에즈 열대정원


thumb프랑스 에즈 버스 안에서



그리고 발 닿는 곳, 눈길 가는 곳마다의 풍경들까지도.


모든 것이 낯설었던 그 곳에서, 아니 낯선 것들을 경험하기 위해 떠난 여행에서 나는 익숙함을 찾으려 애썼다.

낯선 땅에서 낯선 풍경을 보며 낯선 음식을 먹는, 모든 것이 낯선 그 곳에서 굳이.

예정된 여행의 절반이 지나간 그 때까지도 여행 전 서울에서의 모습과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 친구의 한 마디는 내 정곡을 찔렀다.

'여행을 하며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싶다.'는 목표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산 마르코 광장



아쉽게도 나는 30여일 간의 유럽여행을 하면서 '익숙한 나'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 친구 덕분에 '여행지에서는 내가 나일 필요가 없다.'는 큰 깨달음을 얻긴 했지만 낯설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낯선 환경 속, 낯선 내가 되기 위해 노력했기에 충분히 가치있는 첫 해외 여행이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여행을 거듭하다보면 언젠가는 나도 낯선 곳에서 새로운 내 모습을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그 때가 되면 조금 더 색다른 여행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





그 겨울 나홀로 유럽 | 2015.01-02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댓글, 16

  • profile
     댓글  수정/삭제 sword
    2016.02.18 15:29 신고

    저는 한번도 일행을 인터넷으로 찾아본적이 없어서 오히려 많이 신기하네요... 그냥 혼자만 다녀서;;; -_ㅜ..
    어쩌다 호스텔에서 일정이 맞는사람과 하루이틀 낮동안 다녀보긴 했는데 그것도 잠시 일뿐..

    사실 한국이던 외국이던 사람의 본성이란 쉽게 변하지 않기때문에
    해외에서 뭔가 도전하는건 일탈이 될 뿐 크게 뭔가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냥 그대로 보고 받아들이고 그대로 무사히 오기만 하면 되죠

    그리고 한국에서 새는 바가지 해외에서도 새고
    한국에서 더러운 애들은 외국에서도 더럽더라구요 -ㅅ-
    본인의 본성을 그대로 알고 바라보는것만으로도 생각보다 큰일입니다

    낮선 나를 바라볼 필요도 없어요
    낮선 자신을 볼 기회는 한국에서도 충분히 생길 수 있고
    해외여행이란 이름아래 그런건 오히려 억지스러울듯 합니다

    •  수정/삭제 Darney
      2016.02.18 18:12 신고

      sword님 말씀대로 본인의 본성을 그대로 알고 바라보는것도 물론 대단하고 중요한 일이죠!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자기 자신을 아는게 최고죠

      그치만 제가 표현한 '낯선' 나는 뭐랄까.. 저만의 목표였어요.
      저는 제가 알기로 그다지 대담하지 않고, 쭈뼛쭈뼛 하고, 그렇게 활달하지 않거든요.
      근데 이왕 여행 가는거 그곳에서만큼은 달라보자 마음 먹고 나갔었어요.
      비슷한 예를 들자면 새해가 되었으니 올해부터는 일찍 일어나고 운동을 하자! 라고 마음 먹는 것과 같은거죠 ㅋㅋ
      누구 말처럼 해가 바뀌는거지 내가 바뀌는게 아닌데 말이에요.
      저의 경우는 공간이 바뀌는거지 내가 바뀌는건 아니었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새해가 올 때면 다짐을 하는 것처럼 여행을 할 때면 다짐을 하게되는 것 뿐이랍니다.
      그리고 그렇게 매년, 매번 다짐을 하다보면 언젠가는 실천을 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뭐 그런거죠!
      해외여행이라는 이름 아래 거창한 변화라던가.. 그런걸 바란건 아니랍니다 ㅎ_ㅎ

    •  수정/삭제 sword
      2016.02.18 18:25 신고

      대담하지 않고 활달하지 않은게 단점은 아닌거 같은뎅...
      뭔가 바꾸고 싶은 계기가 있으셨던거 같네용

      말씀하신것처럼 공간만 다를뿐 그곳에서 서있는 나는 똑같은 사람이란게 맞아영
      한국에서 변하지 않으면 여행을 떠난다고 뭔가 달라지지 않죵 ㅎㅎ
      거창 하진 않지만 한국에서 변화를 노려보심이!

    •  수정/삭제 Darney
      2016.02.19 08:28 신고

      맞아요 계기.. 계기가 있었죠 ㅠㅅ ㅠ
      개떡 같이 말했는데 요점을 짚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sword님 말처럼 굳이 멀리 떠나고 해가 바뀌지 않더라도 일상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변하도록 노력하는게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당!

  • profile
     댓글  수정/삭제 HJinny
    2016.02.19 11:16 신고

    내가 나일 필요가 없다는 말이 참 공감되네요^_^ 그리구 윗 분 말씀처럼 요즘은 한국에서도, 여행지에서의 제 모습을 찾으려 많이 애쓰고 있답니다ㅜㅜ그곳이나 이곳이나 나는 나니까요>_< 아.. 여행가고 싶어지는 글이었네요

    •  수정/삭제 Darney
      2016.02.22 18:50 신고

      여행 가세요 여러번 가세요 계속 가세요 ㅋㅋ
      어딜 가나 나는 나지만 여행은 다녀올 때마다 새로워지는 느낌이죠 *_*

  • profile
     댓글  수정/삭제 William
    2016.02.20 05:04

    I believe in order to find out what we are take life journey as
    we encounter and interact different people and places.
    Best way to find our self by engage in extreme circumstances
    reveal true individual character.

    •  수정/삭제 Darney
      2016.02.22 19:01 신고

      That's what I wanted to write.
      I believe what reveals my true character is unexpected situations.
      Travelling is the easiest way to be in the unexpected situations, I think.

  • profile
     댓글  수정/삭제 영국사는 크리스
    2016.02.20 06:13 신고

    저도 처음에는 여행에서 뭔가를 찾아야지 하는 생각을 많이 하고, 나를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이제는 그저 편하게 이것저것 보고..그 상황에 녹아들려고 노력을 해요.
    그냥 그 순간을 즐기는 것도 좋은 여행의 방법인것 같아요.

    •  수정/삭제 Darney
      2016.02.22 19:03 신고

      그 순간을 즐기라는 말이 와닿네요.
      좋은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해요 :)

  • profile
     댓글  수정/삭제 lifephobia
    2016.02.20 09:26 신고

    아마도 혼자하는 여행에서 그럴 확률이 더 높아지는 것 같아요.
    사람마다 스타일이 다르겠지만, 저는 생각을 많이하게 되고, 스스로를 많이 돌아보게 되더라구요.
    관광지를 돌아다닌 뿐인데도, 뭔가 묵언 수행을 하는 느낌?

    이제는 (아내로 업그레이드 될) 여자 친구와 여행을 많이 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동행이 있으니, 스스로들 돌아보거나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이런 여행도, 저런 여행도 모두 좋더라구요.
    저는 시공간의 흐름에 우리를 맡긴다는 느낌으로 다니고 있어요.
    두서없는 글이지만, 살짝 도움 비스무리하게나마 되길 바래요.
    (30일 여행기 정리하려면 엄청 힘들 것 같아요. ㅋ)

    •  수정/삭제 Darney
      2016.02.22 19:10 신고

      아내로 업그레이드 될 여자친구에만 눈길이 가네요 *_*
      lifephobia님 블로그에 매번 등장하시는 예쁜 여자분! ㅋㅋ
      업그레이드 되는 좋은 소식도 블로그에서 만나볼 수 있는거겠죠? ㅎㅎ

      말씀해주신대로 혼자 여행해서 더 그런 것 같아요.
      오랜 시간 외롭게 혼자 다니다보니 감성이 깊어진걸까요? 마치 혼자 있는 새벽 마냥...
      저도 남자친구랑 여행할 때는 재잘재잘 거리느라 혼자 생각할 시간이 없더라구요.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보다는 함께 공유하는 시간에 가깝죠.
      혼자는 혼자대로, 함께는 함께대로.. 저도 다 좋습니다!ㅋㅋ

  • profile
     댓글  수정/삭제 개구리❤
    2016.02.22 01:26 신고

    크..사진 좋닭...❤️
    너의 유럽여행기는 보면 볼수록 신기하기도 하고
    고생을 많이해서 안쓰러운데 그런 값진 경험을 했다는게 또 부럽기도 하당 캬캬캬캬
    이제 백수니까 글좀 자주 올려

Darney

그만 좀 싸돌아다녀 이것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