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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브리즈번 워킹홀리데이]

-EPISODE 036-

골드코스트 1박2일 5

걸어서 골드코스트 정복!




 나의 여행은 언제나 불편하고 힘들다. 이번에는 예외인가 싶었는데 역시나.

 호텔 같은 *골드코스트 에어비앤비(Airbnb)에서 하루를 보내며 '이번 여행의 컨셉은 휴식이다!'를 외쳤지만 휴식과는 정반대인 개고생을 경험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어른이 되면 파도를 씹어먹어 버릴 기세



 골드코스트에서의 둘째날, 우리는 아침부터 *서퍼스 파라다이스(Surfer's Paradise)를 배회하고 있었다. 볼거리, 즐길거리, 먹을거리가 넘쳐난다는 골드코스트의 최대 관광지지만 지난번 포스트에 언급했듯 나에게는 그냥 호주의 '명동' 같았다. 사람-특히 중국인. 서퍼스 파라다이스의 절반은 중국인 소유라는 소문도 있다.- 많고, 정신 없고, 먹거리가 많다고는 하는데 어딜 들어가야 할지 모르겠고... 그래서 그냥 바다만 보고 있었다. 시원하게 부는 바람과, 파도 소리에 감탄하면서. -중간에 오락실에서 몇 시간 보낸건 비밀-




골드코스트



 바다 구경은 항상 신난다. 강약중강약 밀려오는 파도를 보는 것도 재미있고, 저~ 멀리 어디까지가 하늘인가 바다인가 재어보는 것도, 같이 바다를 즐기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도 재밌다. 그렇다고해서 하루종일 한 곳에 죽치고 앉아 멍 때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모처럼만의 골드코스트 여행은, 의미있는 것이어야만 했다.





 그래서 우리는 걷기 시작했다. 파도가 만들어놓은 불규칙한 선을 따라 서퍼스 파라다이스를 등지고 걸었다. 한 걸음, 두 걸음 나아가는데도 멀어지지 않는 서퍼스 파라다이스의 고층빌딩들에게 막무가내로 굿바이 인사를 뿅뿅 날리며 그냥 걸었다. 지구는 둥그니까 이렇게만 따라 걸으면 서울시 성북구 동선동에 있는 우리집까지도 갈 수 있을 것만 같다고 마냥 좋아했다. 처음엔 그랬다.





 그 전날 밤이었을까. 바보같이 수영복도 챙겨오지 않았는데 골드코스트에서 무얼할까 싶어 구글을 계속 괴롭히고 있었다. Gold coast hidden place, Things to do in gold coast, Tripadvisor gold coast 등등 수 십 번을 구글에 질문한 결과 맘에 드는 곳을 찾아냈다. 그 정보를 대체 어디서 봤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골드코스트 마이애미(Miami)-미국에 있는거 아님 주의. CSI 아님 주의- 지역에 있는 어떤 둔덕(?)에 올라가면 골드코스트가 쫘~악 펼쳐져 보이는데 그 경치가 아주 죽인다는 내용이었다. 난 바로 '이거다!' 싶었고 구글 지도에 별 표시를 쳐놓은 채 곤히 잠이 들었다.


 다음날 서퍼스 파라다이스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구글 지도를 켜보니 어젯밤 표시해놓은 곳과 현재 내 위치가 한 화면에 보여졌고, 사진에서 본 둔덕도 멀리에 보이는 듯 했다. 그래서 걷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3학년 사회 시간에 배우는 지도의 '축척' 개념을 스물다섯 젊은 나이에 까먹은 모양이다. 





 금방 갈 수 있는 곳이라 착각하고 있던 '골드코스트 걷기 여행' 초반엔 파도와 밀당도 하며 신나게 걸었다. -나 잡아봐라 파도얏!-



골드코스트에 남긴 내 발자국



 폭신폭신한 모래 사장에 발자국도 남기고, 온 발바닥의 세포를 통해 골드코스트의 기운을 한껏 느끼면서 걷는게 마냥 좋았다. 서퍼스 파라다이스에서 멀어짐에 따라 사람들도 점점 줄어들어 마치 드넓은 모래 사장과 바다와 하늘이 다 내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끼룩끼룩



 중간중간 만나는 갈매기들도 반가웠다. 서퍼스 파라다이스의 한 노천카페에서 아주머니가 "먹고있는"-입에 들어가기 직전의- 햄버거를 잽싸게 낚아채는 갈매기를 본 이후로는 좀 정이 떨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뒤뚱뒤뚱 걷고있는걸 보고있으니 새삼 귀엽게 느껴졌다. -갈매기에게 10달러가 넘는 햄버거를 뺏긴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친 순간 나는 아주머니의 눈알이 튀어나오지 않을까 더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ㅇ_ㅇ!- 먹을 것만 가지고 있지 않으면 갈매기는 귀엽다. 특히 걸을 때의 궁둥이가 매력포인트!



호주 피자 Worst 5



 한 시간 쯤 걷다가 에어비앤비 호스트였던 Brett이 추천해준 피자집에 들러 점심을 해결했다. 분명 Brett이 본인의 Soul Pizza라 하였는데 도미노 피자만도 못한..... 피자였다. 정말 친절한 호스트였는데 본인의 혀에는 굉장히 불친절한 사람인 것 같다. 이 피자는 호주에서 먹은 피자 중 Worst 5 안에 드는 피자였다. 





 맛없는 피자로 허기를 채우고 다시 바다로 돌아왔다. 입을 아주 꾹 다물고있던 조개와 사진도 찍으며 다시 걷기 시!작!


 이렇게 조개 잡고 할때만 해도 이 날이 힘든 날이 될줄은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서퍼스 파라다이스에서 지도를 대충 확인한 이후로 구글 지도를 켜지 않았기에 우린 계속 가까운 줄 알고 있었다. 아무리 걸어도 저 멀리에 있는 둔덕이 가까워지지 않는걸 보고 알아챘어야만 했는데..



골드코스트



 그래도 덕분에 걸으면서 예쁜 바다를 실컷 볼 수 있어 좋았다. 이 때까지는...





 얼마나 걸었을까, 우리는 정신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애꿎은 바닷물을 발로 뻥뻥 차대며 대체 저놈의 둔덕은 언제 내 앞에 나타나는거냐!! 화를 내기도 했다. 쓸데없는 짓이었다. 둔덕은 정말 저~~~ 멀리에서 우리를 한심하게 쳐다보고 있었으니 말이다. 





 아무리 걸어도 가까워질 생각을 않는 둔덕을 보며 쎄한 느낌으로 다시 지도를 꺼내들은게 2시간 후 쯤. 분명히 걸은지 2시간이 지났는데 지도 상의 우리 위치는 거의 제자리였다. GPS가 잘못된줄 알았는데 너무 정확해서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분명 여태 2시간을 걸었는데 구글은 3시간을 더 걸으라했다. 이게 무슨...?





 무슨 일인지 갑자기 날도 흐려지기 시작했다. 세차게 부는 바람에 수영을 하라고 세워놓은 깃발은 퍼덕퍼덕거렸고 나의 마음도 퍼덕댔다. '여기서 조금만 가면 죽이는 경치를 볼 수 있대!'라며 남자친구를 설득했는데.. 그 조금이 5시간일 줄이야. 퍼덕퍼덕!펃펃퍼더더덕!





 앞으로 걸어야할 3시간이 막막하긴 했지만 이미 걸어온 2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그냥 계속 걷기로 했다. 생활체력이 약한 남자친구의 얼굴에는 짜증과 맛없는 피자로 인한 허기짐이 가득했지만 애써 무시하며 걸었다. 우리 둘 사이에는 웃음 소리와 대화 대신에 파도 소리가 채워져갔다. 쏴아아- 하는 파도 소리만큼이나 싸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푹신푹신한 '좋은' 느낌이었던 모래는 갈수록 날 힘들게했다. 안 그래도 걷느라 힘든데 자꾸만 발이 푹푹 빠져서 무리하게 힘을 주고 걷느라 양 발의 복숭아뼈가 아려왔다. 그럼에도 나는 죄인-지도를 잘못 본 죄, 무모한 것을 시작한 죄 등.. 모든게 내탓이오-이라 그냥 꾹 참고 계속 걸을 수 밖에. 그렇게 발 아파가며 한참을 걷다가 돌아본 뒷풍경에는 아직도 가까이에 서퍼스 파라다이스의 고층빌딩들이 있었다. 아... 





 얼마동안 묵묵히 걸었을까.. 날씨는 점점 더 흐려지고 어두워져갔다. 이 끝없는 도보 여행을 시작한 내 스스로에게 화도 났다가, 정신줄을 놓쳐서 미친 사람처럼 실실 웃음이 새어나오기도 했다.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사장을 몇 시간동안 걷는건 생각보다 훨씬, 훠~어어얼~~~씬 어려운 일이었다.



골드코스트 모래게



 단조로운 걷기 여행에 볼거리가 되어준 모래게 친구.. 안녕?





 그렇게 한없이 걷다보니 드디어 마이애미! -우왓!- 해냈다!!!!! 누가 시키지 않은, 말그대로 '사서 한' 개고생이지만 어쨌든 중간에 포기하지 않은 내 자신이 대견해서 눈물이 날 뻔 했다... 





 하지만 우리의 개고생이 그만큼 가치있는 것이 아니었다는걸 깨닫기까지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몇 시간을 걸어 찾아온 둔덕은 기대했던 것만큼 대단하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 운동하는 곳, 그냥 가까우면 한 번 올라가볼 법한 그런 곳...? 몇 년 전 올레길을 걸으며 올랐던 제주도의 산방산이 떠오르는 그런 곳이었다. 어쩌면 산방산이 나을지도..





 구글에서 찾은 이름모를 사이트가 알려준 것처럼, 이곳 위에서 바라보는 골드코스트의 풍경은 멋있었다. 다만, 5시간을 걸어서 찾아올만큼은 아니었을 뿐.  걷느라 시간을 다 쓰는 바람에 어두워진데다 춥기까지 했다. 결국 몇 시간을 꼬박 걸어서 찾아온 이곳에서는 정작 5분도 채 머무르지 못했다. 춥고, 배고프고, 힘들었다.. 당장이라도 바닥에 쓰러져 눕고 싶을 정도로. 이후에 어떻게 집까지 찾아왔는지 진심으로 기억이 나질 않는다.





 블로그 글을 쓰기 위해 찾아보니 이 날 우리가 걸은 거리는 약 8km. 지도 위에 직선으로 선을 그려서 그렇지 구불구불한 바다를 따라 걸었으니 아마 8km 이상이지 않을까 싶다. 이 긴 거리를 우리는 하루종일 걸었다. 무려 5시간동안이나.. T_T


 그렇다고해서 이 날의 여행을 후회하는건 아니다. 정~말 힘들긴 했지만 처음 목표한 것처럼 '의미'는 있었던 것 같다. 골드코스트의 거의 양 끝을 도보로 여행하는 사람이 흔하지는 않을테니까.. 덕분에 서퍼스 파라다이스부터 마이애미까지 펼쳐져있는 8km의 기다란 골드코스트를 한껏 느낄 수 있었고, 또 누가 '골드코스트 가봤어?'라고 물어보면 '나 골드코스트 다섯시간 걸어봤어!'하며 재미있는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게 됐다. 이렇게 내 인생의 무용담이 하나 늘어났으니 충분히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뿌듯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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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Darney

그만 좀 싸돌아다녀 이것아
@darney.trav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