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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스탠소프 워킹홀리데이]

-EPISODE 045-

호주 스탠소프 버섯 농장, CFFM 




 드디어 쓰는 나의 일자리 이야기. 버섯 농장에서 일한 지도 벌써 3개월이 다 되어가는 지금, 나의 호주 농장 이야기를 써내려가보려 한다. 


 본격적인 농장 이야기에 앞서 농장에 오게 된 계기에 대해 잠시 서술하자면.. 어렵사리 들어간 *잉햄에서 3주만에 청천벽력과 같았던 해고 통보를 받은 후, 부서진 멘탈의 조각조각을 부여잡고 같이 해고된 친구를 따라서 이곳 스탠소프(Stanthorpe)로 오게 되었다. 참.. 별 일을 다 겪은 후에야 비로소 스탠소프에 정착하게 됐다.

 처음 이곳에 올 때는 아무 정보도, 계획도 없었다. 돌이켜보면 참 무모하게도 나는 친구말만 듣고 무작정 따라왔었다. 친구가 농장에 간다길래 '그럼 나도 이참에 세컨 비자나 따볼까?'하며 따라왔고, -호주 워홀을 계획할 때만 해도, 아니 잉햄 해고 사건이 발생하기 직전까지만 해도 난 호주에 1년 이상 머무를 계획이 없었다.- 친구가 그나마 쉽다는 버섯 농장에서 일을 한다기에 '그럼 나도 버섯 농장에 지원해야겠다!'며 버섯 농장에 들어가고 싶어했다. 그리하여 지금 나는 스탠소프에서 버섯을 따고 있다. 벌써 3개월동안!





 친구를 따라 버섯 농장에 지원하기는 했지만 우리-나와 남자친구-가 일자리를 얻은 곳은 친구가 일하는 곳이 아닌 다른 버섯 농장이었다. 스탠소프에 하나 밖에 없는 줄 알았던 버섯 농장이 알고보니 둘이었고, 우린 친구네 농장이 아닌 다른 버섯 농장에 떨궈지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상황이 이렇게 굴러가는게 썩 내키지 않았다. 나를 이곳으로 이끈 그 친구도, 쉐어하우스에서 함께 사는 홍콩 친구들도, 또 어쩌다가 알게된 한국 사람들도 모두 그 버섯 농장-정확히는 코스타(COSTA)라는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버섯 농장-에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 또 일을 시작한 첫 몇 주 간은 우리 빨빨이가 수리중이어서 출퇴근을 하는게 막막했는데 친구들이 일하는 농장보다 두 배는 멀었고, 주변에 이곳에서 일한다는 사람도 찾을 수가 없었다. 드디어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쁘긴 했지만 당장 출퇴근을 할 수 있는 수단이 없어 참 암담했었다. 뭐 어쨌든, 지금은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코스타 농장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만족스럽게 일하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더 자세하게 다루도록 하겠다.-


 우리가 일하는 버섯농장은 스탠소프 타운(Stanthorpe Town)에서 약 20Km, 차로 15분 거리의 Ballandean(발란딘)이라는 작은 마을에 위치해있다. 농장 이름은 CFFM으로 Country Farm Fresh Mushroom의 약자다.



Ballandean의 마스코트, Fruitisforus



 Ballandean 마을의 랜드마크인 녹색 공룡을 지나 약 3분 정도를 더 달리면 우리 농장이 짠! 나타난다. 참고로 저 공룡의 이름은 FruitisforusFruit is for us라는 뜻이다. 1998년 사과/포도 축제에 쓰인 공룡 모형인데 축제 후 지역주민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유인(?)하여 과일을 판매할 목적으로 마을에 세워놨다고 한다. 지금은 과일 판매량 향상의 목적이라기 보단 마을의 마스코트 같은 느낌이 더 강한 것 같다.



버섯 농장 주차장


CFFM 버섯 농장



 마을을 지키는 초록 공룡으로부터 몇 분을 더 달리면 나오는 농장 입구. 지붕을 떠받들고 있는 커다란 버섯 모형이 인상적이다.

 버섯은 기타 다른 작물들과는 달리 실내에서 자라는 작물이라 일반적으로 알고있는 농장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워홀러들에게 익숙한 딸기, 호박, 양파 농장들은 농장에 들어서면 저~ 멀리 끝을 알 수 없는 곳까지 이어져있는 초록 밭이 인상적인 데에 반해 버섯 농장은 넓다란 건물 몇 개가 끝이다. 아마 버섯 농장이 농장계의 꿀잡으로 불리는 이유 중 하나도 이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더운 날, 특히나 해가 뜨겁다 못해 내 몸을 지져버릴 것만 같은 호주의 여름 날 우리는 에어컨이 빵빵한 건물 안에서 일을 하니 말이다. -에어컨 안 틀면 버섯이 미친듯이 자랄 것이다. 천장 뚫을지도 모름-


 우리 농장의 경우는 총 4개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사진에 보이는 사무실, 화장실, 휴게실-이자 점심 먹는 곳-로 쓰이는 건물 하나, 그리고 Farm A/B/C로 구분되는 건물 세 곳.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Farm A는 현재 쓰이지 않고 있다. 창고로만 쓰이고 있는 Farm A를 제외하고 Room 9부터 Room 20까지 총 12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Farm B와 C에서만 버섯이 자란다. 아주 쑥쑥 자란다. -너무 쑥쑥..- 



양송이버섯 [출처] COSTA


양송이버섯 [출처] Pixabay



 우리가 따는 버섯은 한국에서는 '양송이버섯'이라 불리는 새하얀 버섯이다. -호주에서는 그냥 White mushroom이라 불린다.- 사진은 전형적이면서도 버섯 농장 사장님을 기쁘게 만들 수 있는 형태의 양송이버섯이지만 저렇게 예쁜 모양의 버섯들을 따기란.. 그리고 그 버섯들을 저렇게 이쁘게 박스에 담기란.. 손바닥, 아니 내 얼굴만한 크기의 버섯들도 있고, 돌처럼 딱딱한 버섯도 있는가 하면 너무 부드러워서 쉽게 멍이 드는 버섯들까지. 같은 양송이버섯인게 맞나 싶을 정도로 종류가 정말 다양하다. 또 가끔씩 괴상한 모양의 버섯들도 발견되는데 그중에는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든 손 모양도 있었고, 토실토실한 엉덩이 모양도 있었다. 하트 모양의 버섯은 꽤나 흔한 편.



 나와 남자친구를 비롯한 버섯 농장의 버섯 픽커(Mushroom picker)들은 제각기 다른 크기와 다른 모양의 버섯들을 따고, 동그란 머리통 밑의 버섯 줄기(?)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크기와 종류에 맞게 분류하여 상자에 담는 일을 한다. 버섯의 크기는 머리통의 크기에 따라 Super-small, Small, Medium, Large, Super-large 크게 다섯 개로 분류된다. 하지만 우리 농장의 경우 Medium 크기의 버섯이 또 세 분류로 나뉜다. -그래서 처음 버섯을 따러 가면 멘탈이 붕괴될 정도로 헷갈린다.. 하지만 역시 시간이 해결해주는 문제- 





 버섯의 종류는 버섯 아래가 얼마냐 까졌냐에 따라 세 가지로 분류된다. 전혀 까진 부분이 없으면 Button, 반 정도 까져서 검정 부분이 조금만 보이면 Cup, 완전히 다 까져서 버섯 아래가 완전 검정색 또는 갈색으로 보면 Flat이라 불린다. 처음에는 이 분류가 너무 헷갈려서 버섯을 따놓고 이게 이 박스에 들어가야하나 저 박스에 들어가야하나.. 고민하다보면 시간이 훌쩍 가버리곤 했다. 그랬던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3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나서 이제는 기계적으로 손이 움직인다.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 위 사진은 Cup과 Button, 그리고 Second-좀 비정상인 버섯들. 모양이 너무 흐트러졌거나, 색이 너무 누렇거나, 크기가 비정상적으로 크거나 작은 버섯들을 일컫는다.-과 심지어 썩은 버섯들까지 섞여있다. 농장에서 이런식으로 박스 만들어 내보냈다가는 한순간에 일자리를 잃을지도 모른다.



환공포증을 유발하는 버섯들 [출처] COSTA



 이 양송이버섯들은 위 사진과 같이 -아마도 똥이 섞였을- 검정 흙 위에서 무럭무럭 자란다. 사진은 그나마 양호한 상태로 자라고 있는 버섯들. 가끔은 출근해서 버섯을 따러 가면 검정 흙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빼곡하게 버섯이 자라있는 경우가 있는데 그 날은 정말.. 그냥 한 시라도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버섯을 뽑으려면 엄지와 검지 두 손가락으로 버섯을 집어야하는데 이런 날에는 그 손가락 넣을 공간 조차도 없기 일쑤다. 없던 환공포증 같은게 생길 것만 같다. -정말 진지하게 환공포증 같은게 있는 사람이라면 버섯 농장은 추천하고 싶지 않다.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반대로 버섯들이 크기도 적당히 크고-탁구공 정도의 크기?-, 서로 간의 간격도 일정하며 키도 적당히 큰데다 모두 Button인 날은 일을 하기가 훨씬 수월하다. 크기가 크니 박스도 금방금방 차고 버섯 사이사이로 손가락 쑤셔넣느라 고생하지 않아도 되니까. 또 Button이 Cup이나 Flat보다 무게가 더 나가서 한 박스를 채우는데 시간이 덜 걸린다. -참고로 모든 버섯은 Button으로 시작해서 시간이 지날수록 입을 벌리며(?) Cup이나 Flat으로 변한다.-





 이름에서부터 얼핏 느껴지듯, 내가 다니는 버섯 농장 CFFM은 코스타와는 달리 소규모 농장, 즉 가족팜이다. 가족팜이 일하기 좋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첫 출근한 날부터 '일하기 좋은 곳이구나' 하는게 느껴졌다. 가족팜이어서 그런지 진짜 가족같은 분위기. 한국에서 말하는 일자리의 '가족같은' 분위기는 주로 가, 족같은 분위기인 경우가 상당수인데 여긴 정말 이상적인 가족같은 분위기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건, 나와 남자친구를 제외하고는 이곳에 한국인이 없다는 것이다. 대만 친구들이 몇 있긴 하지만 '아시아인'으로 통틀어서 합쳐봤자 총 6명. 그 외에는 다 이 동네 주민분들이다. 나이대도 10대부터 70대 할머니/할아버지까지 다양하다. -70대 할아버지라고 나보다 쉬운 일을 하는게 아니라 똑같은 방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버섯을 딴다. 그러니 버섯 따는게 얼마나 쉬운 일인지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기로.- 무튼 그러한 이유로 이곳에서 남자친구와 대화할 때를 제외하고는 무조건 영어를 듣고, 써야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영어 연습이 된다는 특장점이 있다. 코스타 보다 이곳이 좋은 또 다른 이유가 되겠다. -코스타에는 한국인도, 대만인도 많다.-


 또한 우리 농장은 위 칠판에서 보이는 것처럼 운영이 된다. 하루하루 버섯을 따야할 방 번호가 옆에 쓰여져 있고, -13/14/15/16/20- 그 옆에는 각 팀별로 이름과, 배정된 방 번호가 적혀져있다.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나와 남자친구-Darney and Jay-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Trainee였는데..





 며칠 전 Trainee에서 벗어났다! 드디어! -물론 그렇다고 급여가 인상이 되거나 하는 혜택은 없음.- 한국에서도 경험해보지 못한 승진을 호주에서 해보다니. 기분이 좋았다. 무엇보다 3개월동안 일하면서 짤리지 않았음에, 크게 욕을 먹지 않았음에 감사했다. Trainee에서 벗어났으니 더 빠르게 버섯을 따야한다는 압박감이 살짝 있긴하지만.. 어쨌든 좋은건 좋은거니까!


 그리고 모든 농장이 그렇듯이 버섯 농장도 버섯의 성장에 따라 그 날 하루의 노동 시간이 결정된다. 온도 조절에 실패한 날에는 여러 개의 방에서 버섯이 우두두두 자라서 아침 7시부터 저녁 6시까지 11시간을 일하기도 하고, 무슨 일인지 버섯이 자라지 않은 날에는 11시가 되기도 전에 끝나기도 한다. 여태껏 가장 짧게 일한 날은 7시에 출근해 10시 30분에 끝났을 때. 이런 날은 쉴 수 있어서 좋긴한데 또 한편으로는 허무하기도 하다.

 같은 이유에서 다음날의 출근 여부를 그 전날, 전화로 확인해야 한다. 코스타도 마찬가지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 농장은 고정된 휴일이 보장된다는 것이다. 나와 남자친구의 경우 Trainee에서 벗어난 후 매주 수/목요일을 쉬는 날로 보내고 있다. 고정 휴일이긴 하지만 버섯이 갑자기 와앜 하고 자라는 날에는 출근을 해야할 수도 있고, 일을 하는 날인데도 버섯이 너~무 없으면 데이오프가 주어지기도 한다. 아직까지는 쉬는 날 일을 한 적은 없고, 버섯이 없어서 금요일 하루를 더 쉰 적은 있다.




 사람 일은 모르는거라지만 내가 호주에 와서 버섯을 따고 있을 줄이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각도 못했던 일인데.. 어느새 나는 버섯 농장일을 즐기고 있다. 한국에서 회사를 다닐 때와는 달리 일을 하면서나 퇴근 후에나 일과 사람들로 인한 스트레스도 없고, 오후를 알차게 보낼 수 있는 시간과 주말까지 보장되서 솔직히 이 생활이 훨씬 만족스러운게 사실이다. 심지어는 문득문득 호주 버섯 농장에서 할머니가 될 때까지 일을 해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고는 한다. 그럴 때마다 '그건 좀 아니지'라는 생각이 드는건 이 일이 별로여서가 아니라 여태 들인 학비가 아까워서, 가족들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한심한 눈초리가 예상이 되어서다. 모든 요소들을 배제하고 내 생활의 만족감과 행복만을 생각한다면 정말 할머니가 될때까지 버섯 농장에서 일을 하는게 결코 나쁘지만은 않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는 내 스스로가 참 신기하고, 놀랍고.. 뭐, 그렇다.


 아무튼 버섯 농장은 좋다. 버섯 농장의 좋은 점을 짧게 요약하자면 한 여름 내리쬐는 햇볕 밑에서 일할 필요도 없고, -오히려 에어컨 빵빵해서 춥기도 함.- 허리나 등, 팔 부상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앞서 언급했듯이 70대 할아버지도 버섯 농장에서 아무 문제없이 일하시는데 20-30대 청춘들에게 이 정도 쯤이야. 정말 농장계의 꿀잡이라 불릴만하다. 다만, 많은 돈을 벌기는 힘들다. -평균 주급은 약 $600 정도. 적을 때는 세금 포함 $450, 많을 때는 $800까지. 그 주의 버섯양에 따라 다르다.- 따라서 돈보다는 세컨비자를 취득할 목적이거나, 농장일을 하고 싶되 힘들지 않으면서 안정적인 일을 찾는 사람들에게 적합한 것 같다.

 아무튼.. 버섯 농장은 좋아요,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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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Darney

그만 좀 싸돌아다녀 이것아
@darney.trav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