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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브리즈번 워킹홀리데이]

-EPISODE 058-

Girraween의 중심에서 서핑(surfing)을!




 스탠소프(Stanthorpe)에 꽤 오래 머무르게 되면서 아~무것도 없는 시골에서의 심심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우리는 스탠소프를 정ㅋ복ㅋ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 이름도 화려한 ★스탠소프 정복하기★ 리스트 중 가장 첫 번째는 바로 스탠소프를 지켜주는 동네 뒷산이자 Granite Belt(화강암 지대)의 자존심, Girraween! 이미 전에 목숨의 위협을 느껴가며 꼭대기를 정복하고 왔지만, 이 거대한 산 Girraween에 등산 코스가 하나 뿐이랴.



Information 앞 Girraween 국립 공원 안내판


[출처] Girrraween National Park 공식 홈페이지



 우리가 지난 번에 다녀온 곳은 Girraween의 가장 대표적인 코스인 *The Pyramid 코스. 공원 입구에 위치한 주차장, 인포센터(Information center), 캠핑장 등의 시설과 가까우며 멋진 풍경도 볼 수 있어 관광객들에게 가장 인기가 좋은 듯 하다. 물론 위의 두 지도에서 볼 수 있듯이 '목숨의 위협이 느껴지는' 빨간 등산로, Class 4의 등산로인게 큰 단점이긴 하지만.

 지난 번 다녀왔던 The Pyramid(피라미드) 등산로, 일대장을 시작으로 지도 우측의 Underground Creek과 아래쪽의 *Turtle Rock을 각각 우리 마음대로 Girraween의 이대장, 삼대장으로 칭하며 정복해나가기로 했다. 열정이 넘치던 나는 저 멀리에 Mt Norman까지도 가보자 큰 소리 내보았지만 더워 죽겠는데 4~5시간을 어떻게 등산하냐는 일행들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혀 그만 입을 다물기로 했다.


 아무튼 이 날은 Girraween의 두 번째 대장인 Underground Creek을 정복하러 나섰다. 지도에서 보이는 것처럼 다른 등산로들과는 시작점이 조금 다른 곳이었기에 차를 타고 동쪽으로 쭉쭉 더 들어가야 했다. 그렇게 또 시작된 스탠소프 비포장도로 드라이브.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했지만 여전히 손에는 땀이 났고 조수석에 가만 앉아있는데도 다리에 쥐가 날 정도였다. 등산로 앞 주차장까지 차를 타고 이동하는게 등산보다 힘들었다. 그저 또 오늘 이렇게 살아있음에 감사할 뿐.



파리는 내 친구



 험한 흙길을 지나 주차장에 무사히 차를 세워놓고 본격적으로 등산을 시작했다. The Pyramid와는 달리 노란길로 칠해져있던 Underground Creek 가는 길. 기어오를 가파른 돌산도 없었고, 숨 차는 오르막길도 없었다. 차로 들어오는 길만 어려웠지 등산로 입구에 내리고 나서부터는 아주 수월했다. 등산이라기보다는 동네 산책에 가까웠던 등산길. -하얀 등짝에 펫처럼 붙어있는 파리가 포인트-



아래에서 바라본 파도 바위



 그렇게 한 15분 쯤 걸었을까, 짠~하고 나타난 파도 모양의 돌! 이 거대한 바위가 금방이라도 철썩하고 떨어질듯한 파도 모양인게 신기했다. 근데 문제는, 그게 다였다. 이것 외에는 아무것도 볼 것도, 그렇다고 더 나아갈 곳도 없었다. 그냥 정말 끝! The Pyramid는 끙차끙차 죽을 힘을 다해 올라서 뻥 뚫린 풍경을 여기서도 보고, 저기서도 보면서 뭔가 뿌듯한 게 있었는데 20분 산책하듯 걸어서 다다른 이곳은 별 감흥이 없었다. 아직 젊은 탓인지 큰 고생없이 목적지에 다다르니 좀.. 허무했다. -여기까지 오는데 고생한건 내 다리가 아니라 좁다란 비포장 산길을 달린 빨빨이였다.-



나는 서퍼다.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신기한 돌을 만났으니 인스타그램에 남길 인증샷은 필수! 선글라스까지 완벽하게 장착하고 본격적으로 파도타기, 일명 바위 서핑(?)에 나섰다. 가장 먼저 호주 바다에서 서핑 좀 타봤다는 대구 사람의 어정쩡한 포즈부터. 



나는 자유인이다.



 시원한 파도를 온 몸으로 느끼시던 분,



나는 못 올라가겠다.



 이거 하나를 못 올라가서 낑낑대던 나까지.

 이 넓은 공간에 우리 밖에 없어서 마치 이 산의 주인이 된 것처럼 파도 타는 사진만 각자 수 십 장 씩을 찍으며 놀았다. 아무래도 여기까지 오는데 체력을 덜 써서 사진 찍는게 더 재밌었던 것 같다. 피라미드에서는 꼭대기에 올라 한 동안 멍하니 바람만 맞고 있었던 거에 비하면 뭐 거의 날아다니는 수준. 





 낑낑거리며 올라간 굽이치는 바위 파도 아래서 오래간만에 남자친구와 둘이 사진도 찍고. -너와 나 사이의 거리가 멀어보이는건 착각이겠지..-





 자연산 삼각대인 돌 위에 카메라를 얹어놓고 단체 서핑샷도 찰칵! 다 좋은데 리모콘으로 조정해서인지 화질이 안 좋은게 아쉽다.



콜라 사과 바나나



 산책 같은 등산과, 바위 서핑을 즐긴 후 달콤한 간식타임을 가졌다. 파도가 되고싶었던 바위 아래 그늘에 앉아 톡톡 쏘는 콜라를 꿀떡꿀떡.





 떨어진 당을 충전하고선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조금 다른 각도에서 파도 바위를 바라봤다. 여기서 봐도 신기한 모양이긴 하지만 역시 반대편에서 보는 모습이 뭔가 더 파도같고 멋있는 것 같다.



웅덩이 조심



 커다란 바위 위에는 달 표면처럼 웅덩이가 곳곳에 파져있었고 몇몇 웅덩이에는 꽤 많은 양의 물이 고여있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이 안에 꿈틀거리며 헤엄치는 생명체도 있었다. 이런 곳에 물고기가 살지는 않을테니 아마도 벌레 유충이었으리라..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어쩌면 유독 유난스러운 스탠소프의 모기들의 산부인과(?)일지도 모르지만 생각할수록 께름칙하니 여기까지만 해야겠다. 아무튼 생각없이 걷다가 웅덩이에 발이 빠질 수 있으니 조심! 





 파도 바위 옆으로는 과연 Girraween답게 또 돌들이 산을 이루고 있었다. 체력이 남아도는지 굳이 또 여기를 기어오르던 일행 아저씨들. 사실 나도 올라가서 경치 한 번 보고 싶었지만 불규칙하게 놓여진, 딱 봐도 미끄러워보이는, 심지어 아래에는 모기 유충이 살고있을지 모르는 물이 흐르는 돌 위를 오를 용기가 안 났다.





 올라가서 경치만 슥 보고 내려올 줄 알았던 아저씨들은 꼭대기에서 별 이상한 짓을 다했다. 위험해보이는 저 바위 위에서 점프도 하고, 요가도 하고, 짱구가 출 법한 엉덩이 댄스까지 씰룩씰룩 거린 후에야 여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정말 볼 게 없어서 5분이면 충분할 것 같았던 이곳에서 우리는 무려 한 시간을 보냈다. 대체 뭘 하다가 시간이 간거지..?



파도 바위의 생성 원리



 파도 바위가 생성되는 과정을 알려주고 있던 표지판. 이쪽 분야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지라 그냥 한 번 슥 훑어보고 넘어갔다.





 20분의 산책 같았던 등산과 1시간의 포토타임 후 우리는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 머무르긴 했지만 이대로 돌아가기에는 뭔가 아쉬웠다. 집에 돌아가기엔 시간이 이르기도 했고, 아직 체력도 넉넉해서 우리는 파도 바위를 향해 가던 길에 보았던 다른 표지판을 따라가보기로 했다. 두 갈래길에서 파도 바위가 있는 방향이 아닌, 다른 쪽을 따라가면 호수가 있다고 일러주던 표지판. 그렇게 우리는 각자 등짝에 파리 한 마리, 주위를 공전하는 파리 한 마리 씩을 데리고 터벅터벅, 오르막도 내리막도 아닌 길을 계속 걸었다.

 




 호수로 가는 길에 익숙한 모양의 돌탑들도 볼 수 있었다. 이런건 한국 산에만 있는건줄 알았는데 뭔가를 쌓고 싶어하는건 인간의 보편적인 욕구(?)인가 보다.





 뚫린 데가 보이면 이상하게 얼굴 집어넣고 싶어하던 대구인(25세, 외노자)





 터벅터벅 걷고 또 걷고. 오르막도 내리막도 없어 좋다고 생각했는데 주변 풍경이 심심해서인지 금방 지쳐갔다. 이 지루함의 끝에 있을 호수가 부디 그만한 가치가 있기를 바랐다.




호...수?..



 하지만.. 지루한 길의 끝에는 더 지루한 모양의 호수가 있었을 뿐. 갈색의 탁한 물, 낮인데도 어딘가 음산한 분위기, 귓가를 떠날 줄을 모르는 파리 소리.. 꿋꿋이 걸어온 지난 길들이 후회스러웠다. 이런 곳인 줄 알았으면 집에 일찍 들어가서 10분 더 누워있을걸 그랬다. 

 탁한 호숫가 앞에 어울리지 않게 놓인 벤치에 앉아 아주 잠깐 숨을 고르고는 냉큼 빠져나왔다. 더 버티고 있다가는 '누가 여기 오자고 했냐'는 식의 비난을 받으며 파리 먹이가 될 것 같았기에.



반바지의 마법사


민소매의 마법사



 허무함에 젖어 돌아오는 길에는 아까 봤던 그 쓰러진 나무 앞에서 해리포터라도 된 양 나무 막대기를 집어들고 사진을 찍었다. 사진만 보면 되게 신난 애들 같지만 카메라 밖에서는 축축 처져있었다. 아마도 허무함과 지루함에 찌든 탓이겠지..



나무 뒤에 캥거루!



 그치만 또 수풀 속을 뛰어다니는 캥거루를 보고는 다시 신이 났다. 봐도봐도 신기한 호주 캥거루들 :)





 그렇게 이 날의 등산은 끝이 났다. 역시 대장 중에서도 일대장이 짱이라며.. 생각보다 허무하게 끝난 우리의 이대장 정복을 아쉬워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올 때와 마찬가지로 비포장인 도로를 미끄러지듯 달리며 두 번째 Girraween 정복을 마무리했다. *삼대장은 좀 덜 허무하고 더 멋있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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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Darney

그만 좀 싸돌아다녀 이것아
@darney.trav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