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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브리즈번 워킹홀리데이]

-EPISODE 007-

애들 노는 곳에서 애들처럼 놀기






 휘핑크림 같은 구름이 몽실몽실하게 하늘을 뒤덮은 월요일 오전. 지난 주말부터 시작된 새로운 노동에 지쳐 쓰러진 남자친구를 질질 끌고 밖으로 나왔다.

 지난 금요일부터 이 날, 월요일까지는 Easter Holiday -호주의 큰 명절, 우리 나라의 추석/설날만큼 호주인들에게 중요한 날.- 많은 사람들이 4일짜리 황금연휴를 즐기고 있었다. 우르르 집밖으로 나오는 사람들 덕분에 레스토랑들은 평소보다 바쁠 수 밖에 없었는데 타이밍 좋게도 그 바쁜 때에 맞춰 남자친구는 일을 시작했다. 거지 같았던 한인잡을 때려치고 운 좋게 빨리 얻은 호주 레스토랑 키친핸드.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할 이야기가 많으니 다음 포스트로 미뤄둬야겠다.





 어쨌거나, 바쁜 연휴를 보내 지친 남자친구를 이끌고 밖으로 나온 건 나 또한 일을 구했기 때문이다. 연휴가 끝난 화요일부터 시티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휴대폰 악세서리 세일즈 직원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 이 부분도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포스트로 미뤄두고.. 아무튼 이 날은 다음날 출근 하기 전 사전답사를 하기 위해 나온 것이었다. 겸사겸사 놀이기구도 타고!



[출처] Strathpine Shopping Centre 홈페이지



 원래는 피곤에 쩔은 남자친구는 집에다 버려두고 혼자 사전답사를 다녀올 생각이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구글에 검색을 해보니 마침 내가 일하게 될 쇼핑센터에서 Easter 맞이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호주의 쇼핑센터, 특히 시티 외곽의 쇼핑센터는 우리 나라의 홈플러스나 롯데마트와 같은 대형 마트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데 그 크기만큼 어마어마한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쇼핑센터 주차장에서 놀이기구를 운영할만큼.

 처음엔 쇼핑센터에 놀이기구가 있다길래 우리 나라에서도 동네 축제나 초등학교 축제 때 간간히 등장하는 미니 바이킹 정도일거라고 생각했다. 쇼핑센터 홈페이지에 올라온 아래의 동영상을 보기 전까진... 





 동영상을 보고나서 피곤함에 쩔어 기절한 남자친구를 흔들어 깨웠다. 사전답사가 중요한 게 아니라 놀이기구를 타러 가야했다. 게다가 입장료는 무료고 자유이용권도 10달러 밖에 안 한다니! 무조건 가야했다. 평소 같았으면 왜 깨우냐며 짜증냈을 남자친구인데 동영상을 보여주니 자기도 타고 싶다며 신나게 일어났다. 우리 오늘 호주에서 처음 놀이기구를 타는거야 XD!





 언제나처럼 페리를 타고 시티까지 나왔다. 그리고 호주에 도착한 *첫째날 이후 처음으로 기차도 탔다. 우리를 들뜨게 한 놀이기구가 있는 곳까지는 Central역에서 35분 정도 기차를 타고 가야했다. 오래 간만에 기차를 타니 첫째날 우리를 멘붕에 빠뜨린 지갑 분실 사건도 새록새록 생각나고... 하하하.



Strathpine역



 악명 높은 농장들로 유명한 Caboolture(카불쳐)행 기차를 타고 35분을 칙칙폭폭 달려 Strathpine역에 도착했다. 집에서 생각보다 더 멀어서 당장 다음날부터 아침 일찍 출근할 생각에 까마득해졌다. -벌써 2주째 출근 중인 지금까지는 지각 한 번 없이 잘 다니고 있다. 그래도 1시간 넘는 출근길은 힘들다..-





 시티와는 다르게 조용한 기차역을 빠져나오니 저 멀리서 끼야아악- 하는 소리와 함께 동영상 속 그 놀이기구가 보였다. 기차에서도 피곤에 쩔은 모습이었던 남자친구는 놀이기구를 보더니 활기를 찾았다. 나도 물론 놀 생각에 신이 나서 애 마냥 펄쩍펄쩍 뛰었다.



삐에로 입구



 입장료가 무료인 쇼핑센터의 미니 놀이동산 입구는 삐에로 아저씨가 지키고 있었다. 주황 머리에 빨간코, 초점 잃은 눈동자를 가진 삐에로 아저씨의 입을 통해 우리는 신나는 놀이기구의 세상으로 입장했다.





 입장은 무료였지만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선 돈을 내야했다. 자유이용권은 10달러, Main Ride 4달러, Family Ride 2달러였는데 우리는 망설임 없이 자유이용권을 끊었다. 10달러면 우리 나라 돈으로 약 8-9천원 정도인데 이미 놀이기구 탈 생각에 신이 난 우리에겐 10달러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4시간짜리 자유이용권



노오란 자유이용권 팔찌를 손목에 두르고! 본격적으로 놀이기구 정복에 나섰다.





 들뜬 마음을 살짝 가라앉히고 둘러보니 아, 이곳은 애들을 위한 곳이었다. 한바퀴 빙- 둘러보니 손목에 노란 팔찌를 찬 어른은 우리 밖에 없는 것 같았다. 동양인도 없었다. 놀 생각에 신이 나 무작정 달려와서 자유이용권까지 구입하고 보니 우리는 이곳에서 너무 튀는 존재였다. 기대했던 대부분의 놀이기구들이 아이들을 위한 것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고... 너무 성급하게 돈을 썼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우리를 이곳까지 뛰어오게 한 이 놀이기구를 타고 나서부터 여기에 우리만 어른이다, 동양인이다 하는 생각따위는 잊고 신나게 놀았다. 글 제목처럼 정말 애들 노는 곳에서 애들처럼 놀았다. 아니, 애들보다 더 신나게 놀았다.

 사실 어떻게 여기가 애들만을 위한 곳인가 싶었다. 어른이 타도 이렇게 재밌고 심장이 두근두근하는 놀이기구인데! 오히려 내 옆에 탄 초등학생 정도 되어보이는 친구가 더 어른같았다. 내가 꺅꺅거리는 순간에도 무표정으로 빙글빙글 돌고 있었으니.. 너 정말 괜찮은거니 아가야?라고 묻고 싶었는데 물을 틈도 주지 않고 내려서는 또 타러 왔다. 역시 무표정으로... 






 360도로 빙글빙글 돌아가는 업그레이드 버전 자이로스윙 다음으로 재미있었던 것은 범퍼카! 역시 애들밖에 없었는데 그래서 더 재미있었다. 몇몇 꼬마들이랑 계속 팡팡 부딪히면서 범퍼카를 연속으로 몇 번이나 탔는지 모르겠다. 끝나면 내려서 또 입구로 들어오고, 또 들어오고, 또 들어오고... 놀이기구 하나 타려면 1시간, 2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한국의 놀이공원과는 달리 호주 시티 외곽 쇼핑센터의 임시 놀이공원에 대기줄 따윈 없었다. 기다림은 그저 지금 운행 중인 놀이기구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5분 미만의 시간 뿐. 덕분에 범퍼카를 연속으로 10번은 탄 것 같다. 라이벌이 된 꼬마친구들과 함께! 나중에 그 꼬마들이 엄마한테 가면서 베스트 드라이버라며 엄지척도 날려줘서 기분이 좋았다. 애들한테 인정받은 범퍼카 베스트 드라이버라니. -낄낄-






 쇼핑센터 안 임시로 열린 놀이공원이었지만 있을건 다 있었다. 노느라 배고플 사람들을 위한 먹거리들도 많았고, 분홍분홍한 군것질거리들도 있고. 느낌이 약간 옛날에 즐겨하던 CD게임인 롤러코스터 타이쿤 속에 들어와있는 것 같았다. 롤러코스터가 없다는게 좀 아쉽지만



thumbThe Fun Starts Here



 360도 돌아가는 이 놀이기구도 한 세 번은 탔다. 한 번 타는데 4달러니까 자유이용권 10달러 내고 뽕은 제대로 뽑았다. 게다가 같은 4달러짜리 범퍼카도 10번은 탔으니 자유이용권에 쓴 10달러가 아깝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이 놀이기구의 매력은 짜릿함 뿐만이 아니었다. 저 위에 대롱대롱 매달려서 보는 하늘이 정~말 끝내주게 예뻤다. 숨통이 확 트이는 풍경! 주변에 높은 건물도 없고, 날씨도 좋으니 저~ 멀리까지 보이는데 여태까지 호주에서 본 풍경 중에 최고였다. 카메라를 가지고 탈 수 없어 아쉬웠을 뿐... 정말 남겨두고 싶은 장면이었는데. 재미는 물론 아름다움까지 감상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놀이기구였다. 깃발에 써있는 것처럼 "The fun starts here", 즐거움이 시작되는 곳이었다.





 놀이공원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놀이기구인 회전목마. 타고 싶었는데 내가 타면 무너질 것 같이 생겨서 그냥 지나쳤다. 저 말들이 무럭무럭 자라나서 어른 말이 되면 그 때 타야지.





 범퍼카와 360도 자이로스윙만 무한반복 하다가 아이들한테 꽤 인기 많던 이 놀이기구도 한 번 타봤다. 시계방향, 반시계방향으로 그냥 빙글빙글 도는 놀이기구라서 재미 없을 줄 알았는데 이것도 완전 꿀잼이었다. 토 나오게 재미있었다.





 진짜 토 나오게 만드는 놀이기구였다. 앞서 말한 것처럼 사람이 없다보니 놀이기구 동작 시간도 긴 편인데 이건 중간에 내리고 싶을 정도로 길었다. 돌고, 돌고, 반대로 돌고, 또 돌고, 또 반대로 돌고.. 계속 도는데 돌면 돌수록 재미보다는 내 위장이 뒤집어지는게 느껴졌다. 사진 속 모자 쓴 아저씨가 시크하게 난간에 기대 서서 버튼을 누를때마다 그만! 그만 눌러! STOP!을 외쳤지만 우리의 말은 들리지 않았나보다. 진심으로 토할 뻔 했다.

 그나마 나는 금방 진정이 되었지만 남자친구는 한참을 멍하게 앉아있었다. 속이 너무 울렁거려서 움직일 수가 없다고 했다. 밥 먹고 탔으면 큰일날 뻔.. 별 재미 없을 줄 알았는데 재미와 울렁거림을 동시에 얻은 놀라운 놀이기구였다.





 울렁울렁 니글니글거리는 속을 진정시키고 쇼핑센터 푸드코트에서 밥을 먹었다. 축제용 쿠폰으로 BOOST에서 스무디도 저렴하게 먹을 수 있었다. 신나게 놀고, 배가 부르니 이제 힘이 빠져 다시 피곤한 상태로 돌아갈 차례였다.

 밥을 먹고나서 원래 이곳에 온 목적이었던 내가 일하게 될 곳의 사전답사까지 빠르게 마치고 우리는 다시 기차를 타러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도 뒤에서 들리는 꺄아아악~ 하는 소리에 몇 번이고 돌아봤다. 저 놀이기구는 우리 나라에서 수입해와야 한다. 이렇게 호주 외곽 동네에서 임시용으로만, 애들용으로만 쓰이기에는 너무 재미있는 놀이기구다.





 30분에 한 번 씩 오는 브리즈번 시티행 기차를 타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갔다. 쌓인 피로에 오늘의 피곤함까지 더해진 남자친구는 기차에서 35분동안 기절을 했다. 항상 느끼는거지만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남자친구가 나보다 생활 체력이 훨씬 떨어지는게 정말 의문이다. 내가 비정상적으로 튼튼한걸까?..

 

 호주에서 처음 탄 놀이기구는 놀이동산이 아니라 쇼핑센터에서였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어쩌면 활기 넘치는 애들 사이에 있었어서 더 재밌었는지도 모르겠다. 집에 돌아와서 남자친구와 다음 번엔 진짜 놀이동산에 가자고 약속했다. 둘 다 돈 버느라 바빠서 언제 갈 수 있을런지는 모르겠지만. 다음엔 *드림월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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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Darney

그만 좀 싸돌아다녀 이것아
@darney.trav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