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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브리즈번 워킹홀리데이]

-EPISODE 017-

골드코스트의 숨겨진 명소, Burleigh Heads




 모처럼 남자친구와 동시에 휴일을 갖게 된 지난 4월 25일 안작데이-Anzac Day, 호주의 국경일. 한국의 현충일과 비슷한 의미를 갖고있는 날로 전쟁에서 전사한 병사들을 기리는 날이다.-, 골드코스트에 다녀왔다. 지난 3월 초 *에어아시아 비행기를 타고 골드코스트를 통해 호주로 입국했지만 브리즈번으로 바로 넘어오느라 아주 잠깐 바다 구경하고 짠내 맡은게 전부였다. 아주 짧은 시간 머물렀음에도 그 아름다움에 홀딱 반해 다시 제대로 즐기러 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는데 약 두 달만에 드디어 그 날이 왔다!





 지도에서 볼 수 있듯이 골드코스트는 엄~청 넓다. 저 넓은 바다를 하루만에 다 돌아볼 수는 없으니 어느 한 곳을 콕 찝어서 가야만 했다. 골드코스트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곳이 *Surfer's Paradise(서퍼스 파라다이스)인데 워낙 유명한 곳인데다 공휴일이니 많은 사람들로 북적북적 거릴 것 같아서 별로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조금 생소한, Burleigh Head(버레이 헤드)로 향하기로 결정했다.

 이곳을 알게된 건 얼마 전 *English Conversation에서 만난 워홀 1년차 친구가 자기가 여행해 본 곳 중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곳이라며 추천해줬기 때문이다. 골드코스트 중에서도 정말정말 아름다운 곳이라며. 그래서 그 친구의 말만 믿고 떠났다. 그리고 친구의 말은 99% 옳았다. -또다른 숨겨진 명소를 위해 1%를 남겨두련다.-



Burleigh Head National Park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약 2시간. 아침 일찍 일어난 탓에 기차와 버스에서 헤드뱅잉을 하다보니 어느새 Burleigh Head National Park(버레이 헤드 국립공원)에 도착했다. English Conversation에서 만난 그 친구가 Burleigh Heads 지역 중에서도 딱 여기가 최고라며 구글 지도에 점 찍어준 곳이 있는데 그곳을 도착지점으로 하고 경로를 따라오니 이곳이었다. 대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인적이 드문 것으로 보아 숨겨진 명소인 것은 확실한 것 같았다. 잘못 온것인가 싶을 정도로 외진 곳이었다.





 하지만 제대로 온 것이 맞았다. 좁게 난 길을 따라 내려오니 그 친구를 반하게 만든 아름다운 풍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thumb



 아이들이 물놀이 하기에도 안전할 것 같은 얕은 수심의 잔잔하고 맑은 물, 그 뒤의 국립공원의 초록초록한 나무 숲, 그리고 골드코스트라는 지명이 딱 들어맞는 황금색 모래사장. 여기가 바로 천국이었다. 무엇보다도 알려지지 않은 곳이어서 관광객들 보다는 여유로운 휴일을 보내는 동네 주민들로만 가득 차 있어서 좋았다. 북적북적, 시끌시끌하지 않고 잔잔하고 살랑살랑했다. 정화되는 느낌.





 물은 또 어쩜 이렇게 맑은건지 바닥의 돌들이 다 보일 정도로 투명했다. -뜬금없지만 이렇게 맑은 물 속에서는 물놀이하다가 실례를 범하면 단번에 노오랗게 티가 날 것만 같다.-



with Stand up Paddle Boader



 물 맑고 공기 좋은 이곳에는 Stand up Paddle Boarding-스탠업 패들 보딩, 서서 타는 보드(?)-을 즐기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멀리에서 보면 사람들이 물 위를 걷고있는 것처럼 보여서 처음에는 깜짝 놀랐다. 골드코스트에 사는 사람들만이 갖고있는 초능력인줄.

 Burleigh Heads의 아름다운 배경을 뒤로 하고 어설픈 포즈로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마침 초보인 것처럼 보이는 보드 타는 언니가 지나가서 우연하게 같이 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다음 번에는 저 보드 위에서, 물 위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물 위에 서서 보드를 타는게 균형잡기가 쉽지 않을 것 같지만 또 그만큼 재미있을 것 같다. 보드에 타서 일어설 수나 있을지 의문이지만.



Burleigh, 수영을 즐기는 사람들



 갈색의 돌들이 깔려있는 곳을 지나 모래사장으로 넘어오니 더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한국과는 반대로 날씨가 점점 쌀쌀해지고 있었지만 이곳 사람들은 훌러덩 옷을 벗어던지고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당장 신발 벗고 들어가서 첨벙첨벙 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신나게 물장구치는 아이들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는 수 밖에 없었다. 부러우면 지는 거랬는데 오늘도 또 의문의 1패를 당했다.





 왼쪽 끝을 바라보니 잔잔하고 얕은 이곳과는 달리 저 멀리에서 쏴아아쏴아아 파도가 치고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물놀이를 즐기는 잔잔한 물도 좋았지만 '바다'에 왔으니 파도를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에서 보고싶어 험상 궂은 모양의 검정 돌덩어리들을 차곡차곡 밟으며 걸어갔다. 바다에 놀러오면서 수영복은 물론 쪼리도 챙겨오지 않은 우리는 운동화를 신고 있었기에 어려운 길을 택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바보 같지만.-





 돌덩이리들을 밟고 지나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에 떠밀려 오면서 표면이 맨들맨들, 미끄러운 돌들도 있었고 튼튼해보였으나 발을 디디니 기우뚱하는 무서운 돌들도 있었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는 조상님들의 말씀이 옳았다. 어떤 돌들이 믿을만한 돌인지 신중하게 고르느라 한참을 후들후들거리며 걸어간 것 같다. 내가 이렇게 혼자 고생하고 있을 때 남자친구는 벌써 저만치 걸어가서는 혼자 속세를 벗어난 표정으로 파도를 감상하고 있었던 것은 함정.




쏴아아쏴아아아



 30분 쯤 돌덩어리 위를 걸었을까. 다행히 넘어지지 않고, 돌에 찍히지도 않고 무사히 목표로 했던 파도 앞에 도착했다. 하늘과 바다가 하나인 양 붙어있는 저 멀리의 수평선은 푸르렀고, 부서지는 하얀 파도 소리는 몇 중주의 오케스트라 연주 마냥 웅장했다. 돌다리를 후들거리며 걸어오느라 긴장해서 난 땀도 시원한 바닷 바람과 함께 날아가버렸다. 쉽게 볼 수 있는 바다 풍경이지만 여기까지 오는 길이 쉽지 않아서였는지 더 좋았다.

 사실은 이 돌길을 따라 쭉 걸어서 이 국립공원을 벗어날 생각이었는데 가도가도 끝이 보이지 않아 파도를 가까이에서 보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이제 와서 구글 지도를 찾아보니... 이렇게 계속 갔으면 아마 지금 여기 없을수도 있겠다 싶다. 이만큼 가서 돌아오길 참 잘했다.



구글지도에서 본 우리가 있었던 곳(얼굴)과 가려고 했던 곳(별)




 돌들과 씨름하며 여기까지 걸어가서 파도를 눈 앞에서 본 것까진 좋았다. 하지만 다시 이 험난한 돌길을 돌아가야했다. 이 짧은 거리를 몇 십분동안 후들거리며 겨우 걸어왔었는데 그걸 또 해야한다니. 돌 색깔만큼이나 눈 앞이 캄캄해졌다. 아까보다 다리가 더 후들거려서 돌아가는 길에는 정말 넘어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신발을 벗어던졌다. 올때부터 진즉에 신발을 벗고 한 손에 들고 왔으면 되는건데 왜 그 생각을 더 빨리하지 못했는지.. 어리석다. 발냄새 날테니까 운동화가 젖으면 안된다는 것만 생각하느라 그랬던 것 같다. 벗어던지니 운동화에서 발냄새가 날 이유도 없고, 걷기도 편하고 또 시원했다. 그리고 나는 그 유명한 골드코스트 바다에 내 발을 적셨다.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답답한 운동화를 벗어던지고 홀가분해진 나는 30분 걸려서 걸어온 길을 5분만에 돌아갈 수 있었다. 사람은 역시 머리가 좋아야 몸이 덜 고생을 하는 것 같다. 나의 어리석음에 쓸데없이 고생한 내 다리에게 사과의 말을 전하고 싶다.


 하지만 나의, 아니 우리의 어리석음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젖은 발로 어떻게 다시 신발을 신을 것인가'라는 문제에 다시 직면하고 말았다. 배고파서 시내로 나가야하는데 그러려면 아스팔트 바닥을 맨발로 걸을수는 없으니 운동화를 신어야했고, 수돗가가 없어서 발을 물로 씻을 수 있는 곳은 없었다. 모래가 잔뜩 묻은채로 신발을 신을 것이냐, 아니면 아스팔트를 맨발로 걸을 것이냐 그것이 문제였다.

 우리는 나름대로 어리석은 머리를 굴려보았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파도가 들어올 때 한 쪽 발을 후다닥 씻고 신발을 신자. 깽깽이를 서야하니 서로 도와주자' 였다. 이보다 더 바보같은 짓은 없었지만 정말로 그렇게 했다. 물이 밀려올 때 후다닥 씻고 대충 양말로 닦고 한 쪽 신발을 신고, 또 나머지 신발도 신고.. 하지만 한 쪽 발로 균형을 잡는 것도 어려웠고, 한 쪽 발을 하고 난 후에 신발을 신으면 반대쪽 발을 파도에 적시는게 더 어려워졌다. 이 바보같은 짓을 하면서 우리는 넘어지기도 하고, 갑자기 들어오는 파도에 소리치기도 했는데 나중에 돌아보니 다들 우리를 바라보며 깔깔 웃고 있었다. 심지어 동영상을 찍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페이스북에 'Stupid Asians in Gold Coast!'하고 돌아다닐 것만 같다. 아, 창피하다..

 그치만 나는 긍정적인 한국인이니 많은 외국인들에게 큰 웃음을 주었다고만 생각해야겠다. 하하. 




푸우웅덩



 페북 스타가 될 것만 같은 바보 같은 짓을 하며 어쨌든 깔끔하게(?) 운동화를 다시 장착하고 아름다운 이곳과 작별인사를 했다. 나오면서 어린 아이들이 다리에서 다이빙을 하며 정말 신나게 물놀이를 하는 것을 보았다. 푸웅~덩! 하는 우렁찬 물소리와 사방팔방 튀어오르는 물방울에 맥주 광고만큼이나 마음까지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다음번엔 내가 이곳에서 풍~덩! 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타고 왔던 버스에 몸을 실었다. 안녕 Bulei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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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Darney

그만 좀 싸돌아다녀 이것아
@darney.trav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