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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브리즈번 워킹홀리데이]

-EPISODE 031-

내 생애 첫 교통사고. 호주 뺑소니




 나의 호주 워킹홀리데이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걸까. 잘 풀린다 싶으면 갑자기 펑, 이제 좀 괜찮아지는가보다.. 했더니 더 크게 펑펑. 튼튼하기로 유명했던 나의 멘탈은 계속되는 사건/사고에 가루가 되어버린 것만 같다. 나의 워킹홀리데이는, 나의 호주 생활은 이대로 정말 괜찮은걸까?..



 *잉햄(Inghams)에서 강퇴를 당한 그 날 이후. 남자친구와 나는 앞으로의 호주 생활에 대해 진지한 이야기를 나눴다. 남자친구는 나름 호주 유명 레스토랑에서 키친핸드(Kitchen Hand, 주방도우미)로 일하며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나는 아니었다. 몇 개월 간의 *지겨운 백수생활 후 겨우 얻은 일자리였는데.. 다시 그 "백수"로 돌아가야 한다니. 매일 아침 일어나 여기부터 저기까지 돌아다니며 이력서를 돌리고, 컴퓨터 앞에 앉아 이메일을 몇 통 씩 보내는 그 생활을 다시 하고 싶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시간은 무심하게도 흘러 워홀 생활도 벌써 6개월 차였다. 호주에 합법적으로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절반이 가고, 이제 절반 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도 않았고, 6개월 밖에 남지 않은 비자로 일자리를 구하는 것도 어려울 것 같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남자친구와 의견이 통했고, 우린 *농장에 가기로 결정했다. 이대로 호주를 떠나긴 아쉬우니 세컨 비자를 따서 학교 졸업하고 다시오자며. 그렇게 마음 먹고 난 후에는 모든 일이 잘 풀리는 듯 했다.



팡팡한 뒤태가 매력적이었던 우리 빨빨이...



 우선, 남자친구가 일을 그만 뒀다. 아주 후련하게. 이 지긋지긋한 설거지 예전부터 때려치고 싶었다며 신나게 일을 관뒀다. 농장은 잉햄에서 함께 강퇴 당한 친구가 자리 잡고 있는 스탠소프(Stanthorpe)로 가기로 했다. 계획에 없던 농장행이라 정보가 많이 부족했기에 -뭔가 찜찜했지만- 이 친구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우리는 원활한 농장생활을 위해 6개월 간 모은 돈을 탈탈 털어 '자동차'를 구입했다. 이 모든게 사건의 발단이 되었다.


 흘러가는 시간이 아까웠던 나는 그 주 금요일에 스탠소프로 가기로 결정하고 모든 일을 진행했다. 일단 렌트를 한 이 집에서 나가야했기에 검트리(Gumtree), 썬브리즈번(Sunbrisbane), 호주 워킹홀리데이 페이스북 그룹 등에 집을 보러 오라는 글을 남겼다. 월요일엔 아침부터 일어나 버스만 8번, 몇 시간을 타고 다니며 중고차를 보러 다녔다. 그 날 마지막에 본 빨간차에 꽂힌 우리는 그 차로 결정했지만 바로 데려올 수는 없었다. 남자친구의 면허를 호주 면허로 바꿔야만 합법적으로 운전이 가능했기 때문에. 따라서 다음날 화요일에 우린 운전면허 공증을 받으러 또 버스 여행을 다녀왔다. 원래는 우편으로 진행되지만 급하게 필요한지라 직접 방문해 받아왔다. -면허 공증은 NAATI로부터 받았다.- 수요일, 장롱면허 소지자인데다 방향이 완전 다른 호주에서의 운전이 처음이였던 남자친구 덕분에 목숨을 내놓은 채로 차를 데려왔다. 30분이면 도착할 것을 한 시간 반이나 돌고 돌아 왔지만 어쨌든 무사귀환 했음에 기뻐했다. 그리고 그 날 저녁, 집을 보러 온 사람들이 우리집을 마음에 들어했고, 또 주말에 바로 이사를 하고 싶다길래 곧바로 부동산에 서류를 제출했다.

 여기까지는 정말 모든게 완벽했다. 차도 마음에 쏙 들었고, 운전도 -좀 위험하긴 했지만- 무사히 살아 돌아왔으며, 당장 이사할 수 있는 사람들도 찾았으니 이제 농장으로 가기만 하면 끝인 것 같았다.




이 때까지는 신났지



 그렇게 금요일이 되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우린 스탠소프로 갈 준비를 했다. 이사는 주말에 할 예정이었지만 다음주 월요일부터 바로 일을 하기 위해선 금요일에 등록을 해놓아야만 했다. 가는 길만 3시간, 왕복으로는 6시간을 운전해야하는 초보운전 남자친구가 걱정이 되었지만 시티만 벗어나면 뻥 뚫린 고속도로니 걱정 말라했다. 그럼에도 나는 조수석에서 긴장을 놓을 수 없었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뻥 뚫린 고속도로에서는 나름 음악도 들으면서 신나게 달려왔던 것 같다.



호주의 흔한 풍경 (feat. 소, 양, 말, 염소 등..)



 장장 3시간을 지겹게 달려 스탠소프에 도착해 바로 농장 일을 소개해주는 곳에 등록을 하러갔다. 블로그를 뒤적거리며 찾아본 이야기에 의하면 그곳의 매니저인 Sue가 영어 잘하는 사람을 좋아한대서 괜히 농담도 던져가며 관심을 유도(?)했다. 나의 노력이 통했는지 Sue로부터 '너 영어 잘한다. 어디서 공부했어?'라는 폭풍 칭찬을 받았다. 그리고 Sue는 일단 일주일정도 일을 할 수 있는 딸기농장이 있는데 일도 쉽고 좋은 곳이라며 다음주에 출근하라고 했다. 남들은 와서 몇 주 씩 기다리기도 한다는데 웬 떡인가 싶어 덥썩 물었지만 조건이 하나 있었다. '너네가 정말 월요일에 올 지 확신할 수 없으니 오늘 당장 집을 구해서 주소를 알려달라'.

 쉽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주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어차피 일요일에 이사를 하려면 집을 구해야하긴 했으니. Sue에게 알겠다, 곧 주소와 함께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사무실을 나온게 오후 1시 쯤, 대충 점심을 먹고 우리는 쉐어하우스를 찾아 곳곳을 돌아다녔다. 사무실이 문을 닫는 5시까지는 알려줘야 했기에 서둘러야했다.


 서너 곳 정도의 쉐어하우스를 둘러본 후, 우리는 주인 분 인상도 좋고 사람도 많이 살지 않는 곳으로 결정하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갔다. 4시 30분이 조금 지났을 때였을까. 문 닫기 전이라 괜찮을 줄 알았는데... Sue는 4시 30분 전에는 왔어야했다며 늦었다고 했다. 그래봤자 고작 5분 늦었을 뿐인데.. 이럴 땐 참 칼같은 호주. 그래도 또 주말동안 연락이 갈 수도 있으니 핸드폰을 수시로 확인하라고 했다. 고작 5분 때문에 기회를 놓친게 아깝기 했지만 어쨌든 우리를 좋게 봐주는 것 같았으니 괜찮았다. 다음주에 이사하고 나면 금방 일자리를 찾아주겠지, 라고 믿었다.

 사무실 방문을 마치고 스탠소프에 있던 친구를 만나 새로 산 차 검사를 받았다. 준전문가처럼 보이는 친구가 이것저것 퉁탕퉁탕 해보더니 괜찮은 차라고 해줘서 좀 안심이 됐다. 차에 대해 하나도 모른 채로 급하게 산거라 문제가 있으면 어쩌나 걱정을 얼마나 했었는지. 그리고나서 다시 시티로,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차에 탄 게 오후 6시 쯤. 남자친구가 밤에 운전하기는 아직 무섭다고 했었는데 이것저것 하다보니 늦어져버렸다. 그냥 호스텔에서 자고갈까 고민했지만 일단은 그냥 가기로 했다. 그게 화근이었다.



[출처] Unsplash



 그 날은, 그 날의 금요일은 날이 흐렸다. 올 때부터 하늘은 꾸리꾸리 했었고 이따금씩 차 유리에 빗방울도 떨어졌었다. 우린 날씨를 잊고 있었고, 3시간을 달려야 한다는 사실도, 돌아가는 길은 칠흑같이 어두울 거라는 사실도 잊었었나보다. 출발은 나쁘지 않았다. 아직 해가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었으며 길도 쭉쭉 뻗어있고, 주변에 차도 한 대 없었다. 아무 생각없이 달렸던 것 같다. 그러던 중 부동산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는데, 일요일에 이사를 오기로 한 그 커플은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수입도 없고, 잔고도 충분치 않다며 자기네들은 이 커플을 세입자로 받아들일 수가 없단다. 이 때부터 쎄했다.


 조수석에 앉아 네비게이션 역할을 하며 달리던 중 해는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우리는 평원을 지나 산 속 길로 진입했다. 오는 길에는 안개 낀 산의 모습이 진경산수화의 실제 모습 같다며 감탄하면서 왔었는데 가는 길은 그저 황천길처럼 보였다.. 가로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칠흑같이 어두운 산. 하필 장대비까지 내려 앞도 잘 보이지 않았다. 정말 최악의 상황. 운전하는 남자친구는 물론 조수석의 나까지 초긴장, 초집중한 상태로 달렸다. 도로의 하얀선도 잘 보이지 않아 조금만 잘못하면 역주행을 할 수도 있었고, 저 멀리 반대편에서 달려오는 차가 멈춰서 있는 것처럼 헛것이 보이기도 했다. 공포체험이 따로 없었지만 그럼에도 고속도로였기에, 우리 뒤에서는 화물차가 달려오고 있었기에.. 계속 달려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한 시간 쯤을 그렇게 긴장한채로 달렸을까. 우리 앞에 우리보다 느리게 달리는 차가 나타났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고속도로에서 후미등을 켜고 천천히 달려주는 앞 차가 반가웠다. 이 산 속 길이 끝나기 전까지 우리는 저 차를 계속 따라가기로 했다. 제한속도가 100km/h인 그 산 속 고속도로에서 그 차는 60~70km/h 정도로 달리고 있었고, 우리도 비슷한 속도로 그를 뒤따랐다. 의지할 불빛이 아무것도 없었던 전보다는 확실히 나아서 조금 안심하고 달렸던 것 같다. 

 그런데.. 잘 가던 앞 차가 갑자기 왼쪽 길로 빠졌다. 따라가던 우리도 왼쪽길로 빠지려 했는데, 알고보니 잠시 정차를 하려는 것이었다. 이게 아니다 싶어 남자친구는 핸들을 다시 꺾었고, 그 틈을 타 우리를 앞지르려던 뒷차와 제대로 박아버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 글을 쓰면서도 팔뚝에 소름이 끼치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천만 다행히도 사람이 다치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쨌든 사고가 났으니 우리 차를 박고 앞서간 그 차의 주인과 이야기를 나눠야할 것 같았다. 펄떡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우리 차를 박고 앞서간 그 차를 따라 달렸다. 근데 웬걸, 조금 가다가 갓길에 멈출 줄 알았던 그 차는 계속 최대 속도로 달리다가 사라져버렸다. 말로만 듣고 뉴스에서나 보던 뺑소니.. 마음 같아선 지구 끝까지라도 쫓아가고 싶었지만 우리는 멈춰야만 했다. 차에서 이상한 소리도 나고, 냄새도 나고.. 겁도 나고.. 어쩔 수 없이 우리는 갓길에 차를 세웠다. 비는 더 거세게 내리고 있었다.



박살난 빨빨이의 엉덩이와 갈아끼운 타이어


많이 아팠니..


내 마음도 긁힌 듯해..



 차의 상태는 심각했다. 상대방 차와 들이받은 오른쪽 뒷부분에 후미등 플라스틱이 깨져버린 건 물론, 차체가 완전히 찌그러져 버렸다. 이틀 전에 새로 산 차인데.. 무엇보다, 오른쪽 뒷바퀴 타이어가 나가서 이대로는 차를 끌고 돌아갈 수 없는 상태였다. 집까지 남은 거리는 130km. 정신이 아득해졌다.


 가장 먼저 000-호주의 119-으로 전화를 걸었다. 산 속이라 다른 전화는 터지지 않았지만 다행히 비상전화는 잘 걸렸다. 부족한 영어가 급박한 상황이 되니 더 나오질 않았다. 게다가 무서움과 추위에 몸은 바들바들 떨리고.. 최대한 내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겨우 통화를 이어나갔다. 고속도로 어디쯤에서 사고가 났다, 우리 차가 터져서 굴러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 쪽에서 묻는건 '다친 사람이 있느냐'였다. 다행히 사람은 다치지 않았지만 차가 고장나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했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다친 사람이 없으면 우리의 영역이 아니다. 보험사에 전화해라. 보험사 번호는 xxxx-xxxx다. Bye'. 끝이였다. 긴급한 상황에 날린 비상전화는 그렇게 허무하게 끊겨버렸다. 호주가 원래 이렇게 매정한 나라였던가.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보험사에 전화를 했지만 산 속 깊은 곳이라 전화가 잘 터지지 않았다. 상대방의 목소리는 드문드문 들렸고, 그쪽에서는 아예 내 소리를 듣지 못하는 듯 했다. 그마저도 겨우 들리면 신원 확인을 하는데 쓰였다. 이름이 뭔지, 보험에 가입한 게 맞는지, 차 번호가 뭔지... 오늘 여기서 내 삶이 끝날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열두 번도 넘게 들었다.


 내가 계속 전화와 씨름을 하고 있을 때 남자친구는 핸드폰 플래시를 켜고 지나다니는 운전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100km/h로 달리는 사람들이 우리를 봐줄까 싶었는데.. 아, 신이시여. 천사가 나타났다. 천사의 날개옷 보다 하얀 흰색 차가 저 앞에 멈춰섰다. 나는 통화를 하고 있었던지라 남자친구가 가서 울먹거리는 소리로 'Help me!'를 외쳤댄다. 가속 때문에 한참 앞에 섰던 차는 남자친구에게 다시 돌아오겠다며 떠났다. 말을 못 알아듣고 그냥 간 줄 알았던 그 차는 정말로 다시 돌아왔다. 고속도로가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임이 분명했다.

 커다란 하얀 차에서 내린 아저씨는 우리의 차를 요리조리 살펴보더니 타이어만 갈면 되겠다고 했다. 본인 차에서 이것저것 주섬주섬 챙겨오시더니 우리 차에 숨겨져 있던 여분의 타이어와 장비를 꺼내 세차게 비가 내리는 산 속 고속도로의 갓길에서 우리 차의 타이어를 갈아주셨다. 타이어를 갈고 시범 운전도 해보고.. 비에 젖고 공포에 쩔어서 정신이 나가있는 우리를 안심시켜 주시고는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이름이라도, 번호라도, 아니 적어도 차 번호라도 보고 왔어야만 하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었던 우리는 그 천사같은 분께 'Thank you so much'라는 말밖에 남기지 못했다. 감사함을 더 표현하지 못해 죄송스럽다. 그 분이 아니었다면 비 내리는 산길이 정말 우리의 황천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너무나도 고마운 생명의 은인인 그 분께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이 고마움이 전해졌으면 좋겠다..


 천사 같은 그 분의 손길을 거쳐 다시 달릴 수 있게 된 차를 타고 우리는 그 후로도 2시간을 더 달려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 조수석에 앉은 나는 얼마나 긴장을 했었는지 손과 발은 땀에 흠뻑 젖고, 힘을 주고 있던 온 다리에 알이 생겼다. 내가 이런데 그런 상황에서 계속 운전을 하고 온 남자친구는 어땠을지.. 별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우리는 일단 살아있음에 감사하기로 했다. 만약 우리를 박은 그 차가 커다란 화물차였더라면, 그 차 바로 뒤에 또다른 차가 있었더라면, 남자친구가 놀라서 핸들을 확 꺾었더라면... 그리고 천사 같은 그 분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그런 최악의 상황에서 집으로 돌아왔다는 사실 자체로 행복했다. 살아있음에, 호주에서 스물넷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하지 않았음에.



경찰에 신고하고 받은 Report.



 집으로 살아돌아온 우리는 여기저기에 전화를 해가며 현재 상황에서 어떻게 처신을 해야하는지 조언을 구했다. 우리가 실수를 하긴 했지만 어쨌든 우리를 박은 그 차가 사라져 버렸으니 엄연한 '뺑소니'였다. 호주 말로는 'Hit and run'. 호주에 오래 머물고 계신 지인분의 도움을 받아 경찰에 신고도 하고, 보험회사에도 접수했다. 그렇게, 살 떨렸던 9월의 어느 금요일이 마무리 되어갔다. 그 다음 토요일을 살아갈 수 있음에 행복해하며.




 사고가 난 지도 벌써 5일이 흘렀다. 우리의 차-빨빨이-는 현재 보험회사의 평가를 기다리고 있으며, 우리는 그 차를 기다리고 있다. 일단은 시티에 머물며 우리 대신 아파트에 들어올 다른 커플을 찾는 것이 우선인 것 같다. 그래야 차 문제가 해결이 되면 농장에 갈 수 있을테니. 우리를 좋게 봐주었던 스탠소프의 Sue에게도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그 날, 돌아오는 길에 사고가 나서 언제 다시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들어가기로 했던 쉐어하우스 주인 분께도 같은 내용의 메세지를 남겼다.


 차를 고치는데 얼마의 비용이 들지, 또 애초에 계획했던 생활로 돌아가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는 모른다. 다만, 우리는 조급해하지 않기로했다. 워킹홀리데이가 이제는 5개월밖에 남지 않았음에, 예상했던 것보다 더 긴 시간을 백수로 보냈음에.. 내가 너무 조급해했던 것 같다. 5개월 '밖에'가 아니라 아직도 5개월'이나' 남았다고 생각하며 조금 여유를 부려도 괜찮을 것 같다. 항상 몸조심하면서.

 


 연달아 일어나는 사건 사고에 '한국으로 돌아가라'는 신의 계시인건가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어쩌면 정말 그런 것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계속 버텨보기로 마음 먹었다. 이대로 한국으로 돌아가기엔 너무 아쉽지 않은가. 지금 당장은 정신적으로 힘든 게 사실이지만 이 또한 지나갈 것이기에, 이 또한 추억이 될 것임을 알기에 나는 계속 버텨보련다. 내일은 더 나아지리라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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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rney

그만 좀 싸돌아다녀 이것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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