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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스탠소프 워킹홀리데이]

-EPISODE 048-

골드코스트 하버타운에서 박싱데이(Boxing Day) 정복하기




 미국에 블랙 프라이데이(Black Friday)가 있다면 호주에는 박싱데이(Boxing Day)가! 1년 중 가장 크게 할인을 한다는 이 날, 나는 그동안 *버섯을 따며 충전해 둔 은행 잔고로 득템을 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숙소를 나섰다.



이른 아침의 레녹스 헤드(Lennox Head)



 늦게 가면 주차장에 자리가 없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주워듣고 지레 겁을 먹은 나는, 이른 아침부터 따가운 햇빛이 내리쬐는 한 여름의 아침 6시에 밖으로 나왔다. 골드코스트 하버타운(Habour Town)의 박싱데이 공식 오픈 시간은 오전 9시였지만 원활한 주차를 위해 2시간 이른 7시에 도착하기 위함이었다. 우리는 하버타운에서 차로 약 1시간 30분 거리에 위치한 *레녹스 헤드(Lennox Head)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낸 후 였기에 6시에 출발하면 딱 맞을 것 같았다.

 하지만 한 가지 잊고 있던 사실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시간대'. 하버타운이 위치한 골드코스트와 우리가 하룻밤을 지낸 레녹스 헤드 사이에는 NSW와 QLD를 가르는 보이지 않은 경계가 있었고 이는 곧 1시간의 시간차를 의미했다. 레녹스 헤드가 위치한 NSW 주는 섬머타임을 시행 중이었고, QLD 주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 따라서 NSW의 6시는 곧 QLD의 5시.. 이 엄청난 사실을 숙소 밖을 나와서야 깨달았다.





 꽁으로 1시간의 여유가 생긴 우리는 전 날(=크리스마스), 일기예보도 몰랐던 빗방울의 방문으로 제대로 즐기지 못했던 레녹스 헤드의 바다에 잠시 들렀다. 전 날의 쌀쌀함, 빗방울, 그리고 회색 구름은 온데간데 없이 맑았다. 물놀이하기 딱 좋은 그런 날씨. 이렇게 좋은 날, 이렇게 좋은 바다에서 물놀이를 하지 못했다니.. 나를 부르는 바다의 목소리에 계속 뒤를 돌아보게 됐지만 이 날은 또 이 날의 일정이 있었기에 떠나야 했다. 잔고가 적당히 쌓인 카드와 현금을 장착한 우리는 꼭 득템하리라 비장하게 다짐하며 하버타운으로 향했다. 레녹스 헤드에서 골드코스트로, 한 시간을 넘어 NSW에서 QLD로!



박싱데이(Boxing Day)



 우리가 하버타운에 도착한 건 8시가 조금 넘은 때였다. 분명 1시간을 꽁으로 얻어 여유롭게 출발했으나.. 중간에 네비와의 커뮤니케이션 오류로 한참을 돌아돌아 오느라 늦어버렸다. -똑똑한 구글 네비를 남자친구가 일방적으로 무시한 건 비밀.- 다행히도 주차 공간은 넉넉했다. 오픈 시간인 9시 전에만 도착한다면 주차는 크게 걱정할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주차를 무사히 마친 뒤 드디어 하버타운(Habour Town)에 입성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큰 규모에 우선 놀랐다. 전에 가봤던 브리즈번 공항 근처의 아울렛, DFO보다 훨~씬 넓었다. 이곳에 첫 입성한 나를 반갑게 맞이해준 50%, 60% -심지어는 70~80%- 세일 광고판들은 나를 설레게했다. 아침 일찍 눈을 뜬 것도, 남자친구가 고속도로에서 빙빙 돌며 헤맨 것도, 북적북적 시끄러운 사람들도.. 득템만 할 수 있게 해준다면 다 용서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골드코스트 하버타운 코치 매장



 잠시 지도 앞에서 숨을 고른 우리는 가장 먼저 COACH(코치) 매장으로 향했다. 아직 문을 열기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있었는데도 줄이 정말 길었다. 딱히 사야할 것이 있었다던가, 평소에 관심이 있는 브랜드도 아니었지만 길게 늘어선 줄을 보니 왠지 꼭 들어가봐야만 할 것 같아서 우리도 긴 행렬에 합류했다.


 그렇게 한 40여 분을 기다렸다. 남자친구와 번갈아가며 화장실도 한 번 다녀오고, 미리 챙겨온 젤리도 까먹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짧지 않은 그 시간 사이에 줄은 훨~씬 더 길어져 내 자리에서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코치가 뭐길래.





 그렇게 한참을 기다린 후 드디어 매장 입장! 한 번에 약 50명 씩 들어가는데 우리는 운 좋게도 첫 50명 안에 들었다. 그리고 시작된 폭!풍!쇼!핑! 나와 남자친구를 비롯한 매장 안의 모든 사람들이 박싱데이 득템을 위해 분주했다. 이 날의 하버타운 코치는 모든 품목이 정상가에서 50% 할인된 가격. 그럼에도 저렴하게 느껴지지는 않는 가격이었지만 호주에서 몇 개월간 고군분투하며 살아온 내 스스로에게 선물을 하나 주기로 마음먹었다. 40분이나 기다린게 아까워서라도...



안녕? 넌 이제 내꺼야!



 먹이를 쫓는 사냥꾼 마냥 예쁘고 싼 내 선물을 찾기 위해 두리번두리번 거리길 여러번. 매장을 다섯 바퀴 쯤 돌았을 때 구석 모퉁이의 핸드백 코너에서 마음에 드는 아이템을 하나 발견했다. 같은 모양의 핸드백들 사이에서 가장 눈에 띄었고, 그래서인지 두 개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그 남은 두 개 중에 하나를 내가, 남은 하나는 남자친구가! 사이좋게 나눠가졌다. 남자친구는 이 가방을 누님에게 선물할 것이라 했다.

 가격은 원가 575달러에서 50% 할인된 287.5달러(한화 약 25만 원). 25만 원이라고 쓰니까 왠지 비싸게 주고 산 느낌이지만.. 어쨌든 만족스러웠다. 분명 한국의 모 인터넷 사이트에서 훨씬 더 저렴하게 팔리고 있을 것을 알기에 정신 건강을 위해서 검색은 해보지 않는걸로.





 이 날의 코치 매장은 들어오는 것만큼 나가는 것도 힘들었다. 입구에 줄을 서있던 사람들이 어느새 모두 계산대 앞에. 또다시 기나긴 기다림이었다. 한 손에는 소중한 25만 원짜리 가방을 들고.





 코치에서 겨우 벗어난 후 스포츠 매장들을 둘러보았다. 나이키(NIKE)부터 아디다스(ADIDAS), 뉴발란스(NEW BALANCE), 컨버스(CONVERSE) 등등. 이 날 쇼핑에서 꼭 건져야 할 물품 중 하나였던 새 운동화를 건지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나이키는 거의 할인을 하고있지 않았고, 아디다스는 "신발을 제외한" 품목들만 할인 중이었으며 나머지 브랜드는 할인을 하기는 했으나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꼭 건져야 할 물품 중 또다른 하나는 아이폰(iPhone)이었는데.. 사실상 아이폰을 구입하기 위해 박싱데이를 기다린 것인데... 안타깝게도 도도한 애플은 박싱데이에도 할인을 하지 않았다. 공식 홈페이지에 아이폰은 할인하지 않는다며 선전포고를 해두기까지. -아이폰을 제외한 다른 상품들은 할인을 하기는 했으나 할인인 듯 할인이지 않았다. 하나마나인 할인율- 아이폰은 다음 기회에..





 코치에서 가방을 건지고 난 후로 몇몇 개의 매장을 더 들어가봤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그리고 다시금 깨달았다. 쇼핑하기에 앞서 준비해야 할 것은 통장 잔고 다음이 무한 체력이라는 것을... 발은 계속 걸어야했고, 고개와 눈은 아이템 스캔을 위해 빨리빨리 움직여야했으며 손도 빠르게 물건을 낚아채는 스킬이 필요했다. 안타깝게도 우리에게는 잔고만 있었을 뿐, 체력이.. 체력이.....



존맛 핵맛 Grill'd



 훅 떨어진 체력을 보충하고자 우리는 이른 점심을 먹으러 갔다. 메뉴는 브리즈번 거주 당시 즐겨먹던 수제버거 Grill'd(그릴드). 서늘한 그늘 아래 자리를 잡고 여유롭게 햄버거를 씹어 삼키며 에너지를 충전했다. 



골드코스트 하버타운 Watch Station



 이른 점심 식사를 마치고 향한 곳은 손목시계 매장. 이 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도 줄을 서야했다. 시계 좋아하는 사람들은 절대 그냥은 못 지나칠 '전 품목 60% 할인' 광고판에 시계에 관심 없던 우리도 넘어가버렸다. 코치만큼 줄이 길지는 않아서 10분 쯤 기다린 후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남자친구는 시계 안에 또 시계가 들어있는 어려운 모양(?)의 시계를 본인 선물로 사고 싶어했다. 여태 듣도보도 못한 명품 매장을 돌아다니며 한국에 계신 가족들 선물만 구입한 남자친구는 드디어 자기 것을 산다는 생각에 들떴는지 북적북적한 시계 매장 안에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했다. 평소 악세사리를 귀찮아하는 편이라 손목시계를 살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었던 나지만.. 그렇지만... 들어와서 할인된 가격을 보니... 안 살 수가 없었다. 쇼핑이 이래서 무서운 것인가보다.



골드코스트 하버타운 마이클 코어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보니 어느덧 늦은 오후. 일년에 한 번 밖에 없는 박싱데이가 끝나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MICHAEL KORS(마이클 코어스) 매장. 남자친구가 어머니 지갑을 꼭 사야한다며 들른 곳이다. 늦은 시간이었는데도 줄이 길어서 또 한참을 기다려야했다. 





 약 20분을 기다려 들어온 마이클 코어스 매장은... 휑~ 했다. 이렇게 물건이 없어도 되는건가 싶을 정도로... 아침에는 가득 차있었을 벽장은 한 줄에 가방이 하나 씩만 놓여있었고, 지갑들이 놓여있었을 진열장은 정말 텅 비어있었다. 그나마 남아있는 물건들은 뒤죽박죽 정리도 되어있지 않아서 정말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느낌? 게다가 일반 가격 할인이 아니라 1+1 형태로 진행하고 있어서 남자친구 어머니 드릴 지갑 하나만 사러 들어온 우리는 그냥 허무했다. 왜 20분이나 기다린건지.


 하지만 이런 곳에서 우리는 쇼핑에 성공(?)했다. 물건이 얼마 남아있지 않았던 혼돈의 진열장 속에서 남자친구는 어머니에게 드릴 아주 예쁜 지갑을 기적같이 발견해냈다. 그리고 또 괜찮은 지갑을 찾았는데 그건 내 마음에 들었다. -하하..- 그래서 동생한테 선물 해주기로. 그리하여 우리는 217달러를 내고 지갑 두 개를 데려왔다. 혼란 속에서 딱 하나 남은 보물을 찾아내는 놀라운 능력이 남자친구에게 있다는 사실을 이 날 처음 알았다.


 위 사진은 계산 기다리면서 찍은 사진으로 맨 오른쪽에 똑같은 가방을 세 개나, 똑같은 지갑을 또 세 개나 구입하던 여성 분이 신기해서 찍었다. 200달러를 손 떨면서 긁는 우리랑은 다른 세상 사람이겠지..





 어쩌면 *크리스마스 보다 더 기다려왔던 박싱데이. 우리는 오래간만에 빨빨이의 트렁크를 가득 채워 집으로 돌아왔다. 골드코스트에서 스탠소프까지 세 시간 여를 달리는 동안 차에서 일몰도 보고 좋았다. 물론 장시간 이동으로 엉덩이는 아팠지만.. 마음만큼은 어느 때보다도 풍요로웠다. -가벼워진 통장은 덤-





 집에 돌아와서 처음으로 '쇼핑 떼샷'도 한 번 찍어봤다. 내꺼 스케쳐스(SKECHERS) 운동화 1-사고나니 맘에 안 들어서 반품 예정-, 내꺼 휠라(FILA) 운동화 2, 득템한 코치 핸드백 내꺼 그리고 남자친구 누님꺼, 남자친구 어머니 선물 코치 가방, 남자친구 어머니 선물 2 마이클 코어스 노란색 지갑과 그와 함께 구입한 내 여동생 선물 남색 지갑, 아버지 선물을 까먹은 남자친구가 마지막에 달려가서 사온 코치 지갑, 충동 구매한 60달러짜리 FOSSIL 손목시계와 남자친구꺼 마이클 코어스 손목시계까지. 추가로 여름나기용 선크림과 원래 쓰던 레브론(REVLON) 파운데이션.


 가난한 대학생의 삶을 살던 내가 이렇게 많은 사치품을 한꺼번에 구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그래봤자 내꺼는 작은 가방과 시계 밖에 없긴 하지만.. -운동화는 사치품이 아니라 실용품- 호주에서 열심히 일하며 돈도 꽤나 모았으니 이 정도는 해외에서 오랜 시간 잘 지내온 나를 위한 선물로 생각하기로 했다. 나에게 과분한 코치 가방은 얼마 뒤 다시 한국의 대학생으로 돌아갔을 때, 이따금씩 기분 내고 싶은 날에나 들고다녀야지.




 덧붙여 이번 박싱데이에 경험한 것을 토대로 몇 가지를 정리해보았다. 이름하여 '골드코스트 하버타운 박싱데이 공략!' 나처럼 박싱데이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



 - 박싱데이의 하버타운 오픈시간은 공식 홈페이지(*harbourtowngoldcoast.com.au)에 미리 공지가 된다. 몇몇 매장들이 일찍 문을 열긴 하지만 일찍 여는 곳은 대체로 우리가 관심을 가지지 않는 브랜드다.


 - 주차 공간은 넉넉하다. 하지만 오픈 시간 이후로 사람들이 몰리므로 30분 전에 도착해 출입구 가까이에 주차하는 것을 추천. 너무 일찍 올 필요는 없다. (+ 뚜벅이인 경우 무료 셔틀버스를 이용해 하버타운에 올 수 있다. 허나 사람이 무지막지하게 많을 것이므로 가장 일찍 도착하는 버스를 탈 것을 추천한다.)


 - 인기 많은 매장 리스트! 오픈 시간부터 문 닫기 전까지 줄이 긴 곳이니 득템하고 싶다면 오픈 전부터 가서 기다리는 것이 좋다. 참고로 '인기가 많다'는 말은 1) 할인율이 크다. 2) 사람이 많다. 3) 예쁜 것들이 빨리 사라진다. 를 의미한다.

 : 코치(COACH) / 마이클코어스(MICHAEL KORS) / 폴로 랄프 로렌(POLO RALPH LAUREN) / 타미 힐피거(TOMMY HILFIGER) / 와치 스테이션(Watch Station)


 - 추가로, 휴고 보스(HUGO BOSS)-워낙 비싸서 사람은 없지만- 할인율이 좋았다. 남성 정장 한 벌 마련하기에 좋은 기회일 듯 싶다.


 - 앞서 언급했듯이 쇼핑은 체력이다. 좋은 것들을 얻으려면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가도록 하자. 또한 12시-1시 사이 점심시간에는 음식점에 사람들이 몰리고, 쇼핑 매장에는 사람들이 다소 빠지니 점심은 아주 이르게 먹거나, 아주 늦게 먹는 것이 좋겠다.


 - 차를 주차해뒀다면 물건 구입 후에는 바로바로 차에 두고 오는 것이 좋다. 두 손 가득 무거운 쇼핑백은 체력을 갉아먹는다. 또 사람 많은 정신없는 곳이라 분실과 도난의 위험이 크기 때문에 주차를 아주 멀리 해둔 것이 아니라면 조금 힘들더라도 매번 차에 다녀오는 편이 낫다.


 - 교환/환불 조건을 확인하자. 할인율이 큰 박싱데이는 득템의 기회임과 동시에 충동구매의 장이기도 하다. 살 때는 기분 좋으나 집에 돌아와 뜯어보면 후회되는 것들도 있기 마련. 대부분은 7일 또는 30일 이내 교환/환불이 가능하다. 단, 박싱데이 당일에는 구매만 가능하고 교환/환불은 불가능하다. (물론 비교적 한가한 매장들은 가능하겠으나 대부분의 매장이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교환/환불을 처리해 줄 시간이 없다.)


 박싱데이를 기다리는 모두가 득템에 성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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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Darney

그만 좀 싸돌아다녀 이것아
@darney.trav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