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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스탠소프 워킹홀리데이]

-EPISODE 047-

기다리고 기다리던 호주 크리스마스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 *호주행 비행기 티켓을 구입할 때부터 기대하던 바로 그 날! 12월 25일을 드디어 이곳에서 맞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사람들로 북적대는 거리가 싫어 집구석에 콕 쳐박혀 케빈과 함께하는 크리스마스를 보내곤 했었는데. 호주에서의 크리스마스는 왠지 더 특별할 것 같아 -라기 보다는 특별해야'만' 할 것 같아서- 기다려졌다. 내리쬐는 햇빛, 그 아래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과 부서지는 파도! 상상 속에서나 그리던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는 실제로 과연 어떤 모습일지.





 추운 크리스마스가 익숙한 서울 사람이 상상하던 여름 크리스마스의 모습은, 한 여름 북적거리는 워터파크의 모습과 비슷했다. 집 안에 있던 남녀노소 모두가 빨간 산타모자를 쓰고 뛰어나와 물놀이를 즐기는 그런. 비키니 차림의 산타클로스라던가, 썰매가 아닌 튜브를 타는 루돌프를 상상했었다. 하지만...


 이곳 호주에서의 크리스마스는 "민족 대명절"이었다. 한국으로 따지면 추석이나 설날 같은. 요즘에는 명절증후군 등의 이유로 씁쓸하게도 명절을 기피하는 한국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호주는 아니었다. 모든 가게들은 문을 닫았고, 거리로 쏟아져 나올 줄 알았던 사람들은 반대로 따뜻한 가족들이 지내고 있는 집으로 들어갔다. 상상 속 여름 크리스마스와는 너무나도 상반되는 느낌의 조용한 크리스마스였다. 사람도, 차도, 심지어는 그렇게나 위험하게 뛰댕기던 캥거루도 안 보이던 조용한 크리스마스.



Bruxner Highway



 하지만 이방인인 우리는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낼 따뜻한 가족이 없었기에, 시원한 바다로 향했다. 하늘은 구름 위의 산타가 보일 정도로 맑았으며 모처럼만의 휴일-크리스마스 덕분에 6일 연속 *버섯을 뽑아 매우 지쳐있던 우리-에 기분도 맑았다. 상쾌하게 눈이 떠진 날 좋은 크리스마스의 아침, 차에 기름도 주고 타이어 바람도 빵빵하게 불어넣고, 비상식량도 듬뿍 챙긴 후 우린 바다로 향했다. 시끄럽고 붐빌 것 같은 골드코스트 대신 더 아래쪽의 Lennox Head(레녹스 헤드)라 불리는 곳으로, 차 한 대 없는 뻥 뚫린 길을 따라 쭉~ 시원하게 달렸다.


 언제나 그렇듯 스탠소프에서 바다까지의 길은 멀고 험했다. 정말로 험했다.. 구불구불하고 좁은 산길은 마치 카트라이더의 손가락 맵 같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카트라이더에서는 떨어지고 부딪혀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 정도. 브리즈번으로 향할 때 타는 산길보다 몇 배는 험하고 또 몇 배는 길었다. 좋은 하늘 아래서 조수석의 나까지 손에 땀을 쥐게 만들던 손가락 맵.. 달리는 길 내내 우리는 다시는 이 길로 오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스탠소프에서부터 2시간 쯤 달렸을까, 손가락 맵의 손가락 부분에서 겨우 탈출한 우리는 축축해진 손과 엉덩이도 말리고 장시간 운전으로 뻐근해진 몸도 풀 겸 잠시 정차했다. Casino와 Tenterfield 지역 중간 어디쯤. 구불구불한 산길을 내리 달린 후의 휴식은 꿀맛 같았다.



바다로 가는 길 위 어딘가에서



 타이밍은 또 얼마나 좋았는지 경치도 정말 끝내줬다. 굽이치는 낮은 봉우리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시야도 뻥, 가슴도 뻥, 긴장도 뻥! 텔레토비 동산을 내려다보는 듯 했던 이곳은 장시간 운전 후 휴식을 갖기에 완벽한 장소였다. 





 2시간동안 험한 산길을 달리며 달궈진 빨빨이에게도 아마 이 휴식이 꿀맛 같았으리라. 우리를 만난 후 온갖 고생 다 한 빨빨이와도 텔레토비 동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한 컷 남겼다. 한국 돌아가면 티머니의 노예로 돌아갈텐데 그 땐 너가 정말 그리울거야 빨빨아..





 고생한 빨빨이의 열을 식혀주기 위해 보닛을 열었는데.. 요상하게 생긴 벌레가 낑겨있었다. 운전하는데 방해가 되거나 차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히는건 아니었지만 왠지 제거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무심코 보닛을 열어제낀 덕분에 남자친구는 텔레토비 동산 한 가운데서 난리를 치게 되었다. 곤충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나는 그저 멀찍이서 바라볼 뿐. 이후로 벌레가 어떻게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잠깐의 꿀맛 같은 휴식을 뒤로 하고 우리는 다시 차에 짱박혀 2시간 여를 더 달렸다. 핸드폰에 미리 다운 받아온 '걸음이 느린 아이'와 같은 옛날노래를 흥얼거리며 꿈꿔왔던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 빨간 수영복을 입은 사람들이 가득한 해변을 향해 달렸다.



Lennox Head(레녹스 헤드)



 그렇게 설렘 가득 안고 도착한 해변은..... 황량했다. 우리가 향해온 곳은 빨간 수영복 가득한 해변이 아닌 우중충한 구름이 몰려있는, 회색빛깔 해변이었다. 정수리 위로 한 방울 씩 떨어지는 빗방울은 와장창 깨져버린 멘탈에 한 번 더 충격을 가하는 듯 했다.

 이것이 정녕 내가 상상하던 호주의 크리스마스,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란 말인가. 반바지에 쪼리를 교복처럼 입고 돌아다니던 해변의 호주인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인가. 텔레토비 동산에서 보았던 파란 하늘은 어디로 가버린 것인가. 지금 내리는 빗방울은 내 심정에 공감한 도깨비의 눈물인가..





 내가 이러려고 4시간을 달려 여기까지 왔나 자괴감이 들고 괴로운 와중에 빗방울은 더 굵어졌다. 하늘도 무심하여라.



당신들은 청춘



 이런 궂은 날씨에도 물놀이를 하는 멋진 청춘들이 있긴 했다. 딱 한 무리가. 대단하면서도 부러웠다. 당장이라도 달려들어가고 싶었지만 물 밖에서 비 맞으며 오들오들 떨고있는 나의 몸이 바다 속에 들어가면 어떻게 될지가 눈에 훤해서.. 이번에는 꼭 제대로 물놀이를 즐길 심산으로 수영복에, *버섯 농장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선물로 받은 비치 타월과 공까지 들고, 심지어 전 날 밤 깨끗하게 제모까지 했는데! 쪼리를 신은 발을 담그는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정말 아쉽게도...





 별 수 있나. 그래서 그냥 사진만 열심히 찍어댔다. 그마저도 카메라가 비에 젖어 고장나지 않을까 조마조마해 하면서 말이다. 남자친구는 이 날의 물놀이를 위해 준비한 몸매(?)가 아쉬웠는지 웃통을 훌렁훌렁 벗어던지고는 누드집을 찍어대기 시작했다. 찍어주면서도 참 어이가 없었지만 본인이 만족해했으니 뭐..



환경아 미안해..



 내리던 빗방울이 조금 잦아들어 하얗게 이는 파도를 바라보며 천천히 해변가를 거닐어보았다. 모래사장 위에는 파도와 함께 밀려온 이름모를 해초들이 줄 선 모양으로 나란히 드러누워 있었다. 그중에서 유독 눈에 띄는 물체가 있어 가까이 가서 보았는데.. 읭? 해초들 사이에 있기에는 지나치게 예술적인 모양(?)의 것이었다. 대체 이것은 무엇에 쓰던 물건인고, 어떻게 탄생한 물건인고 신기한 마음에 사진으로 찍어왔다.

 하지만.. 씁쓸하게도 이 아름다운 작품의 정체는 음료캔의 일부였다. 사람들이 무심코 바다로 투척한 쓰레기가 바닷속에서 꽤나 아름다운 모습으로 탈바꿈하여 다시 사람들 앞에 나타난 것이다. 날카로운 절단면에 다쳤을지 모르는 바다 생물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면서 한편으로는 쓰레기마저도 예술작품처럼 보이게 만드는 자연이 대인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날아라 펠리컨



 보슬보슬 내리는 레녹스 헤드의 이슬비를 맞으며 해변가를 따라 걷고 또 걸었다. 물에 들어가지 못한 아쉬움 때문인지 축축하게 옷이 젖어가는데도 발걸음을 돌리기가 힘들었다. 그 때! 내 머리 위로 큼지막한 무언가가 쉭! 하고 지나갔다. 놀란 마음에 뭐야! 하고 뒤를 돌아보니 *드림월드의 동물원에서 처음 만났던, 호주 펠리컨이었다.



호주 펠리컨(Australia Pelican)



 드림월드에서 처음 본 날부터 인상깊었던 이 괴상하게 생긴 조류는 의외로 호주에서 흔하게 보이는 새 중 하나다. 전에 *Wellington Point(웰링턴 포인트)에 놀러갔을 때에서 한 번 가까이서 본 적이 있는데 이 날 또 만났다. 이번에는 더 가까이에서!





 펠리컨은 넓적한 오리발로 뒤뚱뒤뚱 걸어다니며 먹잇감을 찾고 있었다. 운 좋게 펠리컨이 떠밀려온 물고기를 잡아먹는 동영상도 찍을 수 있었다. 부리가 저렇게나 길고 얇은데도 바닥에 떨어져있는 물고기를 잘도 집어먹더라.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 보는 줄!





 또 한편에는 펠리컨한테 물고기를 빼앗긴 쪼꼬미 갈매기가. 우울해보이는 표정이 참 귀엽다.





 볼거리가 많았던 해변가 산책은 또다시 빗방울이 굵어짐에 따라 자연스레 마무리가 되었다. 마지막에 너무 추워서 모래밭을 뛰어나온건 비밀.



Byron Bay(바이런 베이)



 다시 쾌적한 빨빨이 내부로 돌아온 우리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집으로 갈 것인가 또 다른 어딘가로 향할 것인가. 웃기게도 이는 '어찌하면 더 유익하게 하루를 보낼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아닌, '저녁 어디서 먹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앞서 언급했듯, 밖에서 살던 이도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함께 커다란 칠면조를 뜯어먹는 이 나라 호주의 크리스마스에 문을 연 음식점을 찾는 것이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 오후 시간이면 북적북적 하다던 유명 레스토랑도 이 날은 어둡기만 했다. 한적한 레녹스 헤드가 아닌, 북적북적한 골드코스트로 향하는게 어쩌면 더 현명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한참동안의 고민 끝에 우리는 레녹스 헤드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바이런 베이(Byron Bay)로 향하기로 했다. 골드코스트에 버금가는 유명 관광지이니 문 연 음식점이 하나는 있지 않겠냐며. 빨빨이와 함께 비바람을 뚫고 우리는 바이런 베이를 향해 달렸다.





 내 예상대로 바이런 베이는 확실히 달랐다. 해변도, 거리도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이얏호!

 우리는 일단 지난 번 바이런 베이에 왔을 때 들렀던 *Fish Mongers로 가봤다. 새우 맛이 아주 꿀맛이었던 바로 그 맛집으로, 제발 문이 열었길 바라며!



ZAZA



 그치만... 우리의 바람이 무색하게도 맛집의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주변의 몇몇 가게들이 영업중이긴 했지만 대부분은 밥집이 아니라 술집이었다. -명절에 술 찾는건 여기나 한국이나- 그래서 또 한참을 배회하다가 거리의 케밥집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꽤 괜찮아 보이는 레스토랑도 몇몇 있었는데 너무 비싸거나, 이미 예약으로 자리가 다 차있어 슬프게도 우리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먹고 사는게 이렇게 힘들다.-



케밥버거 (세트 $13)



 ZAZA라 이름 지어진 케밥 가게에서 나는 케밥버거를, 남자친구는 치킨 플레이트를 주문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양도 많았고, 소스도 듬뿍듬뿍 넣어줘서 한 끼 거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뭐.. 만족!





 기분 좋은 배부름과 함께 우리는 다시 해변으로 향했다. 여전히 비는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듯 했다. 우리도 이들 틈에 자연스레 끼어보고자 챙겨온 비치 타월과 공을 들고 모래사장으로 나왔다.



안녕 난 모래사람!



 모래사장 위에서 단번에 우리의 눈을 사로잡은 눈사ㄹ.. 아니 모래사람! 바이런 베이의 모래사장에는 각기 다른 개성을 뽐내는 모래사람들이 여기저기 분포해(?) 있었으나 개인적으로는 이 친구가 가장 맘에 들었다. 저 금방이라도 굴러가버릴 듯 땡글땡글한 눈! 저승사자의 모자! 지은탁표 빨간 목도리!





 모래사람 근처 어딘가, 다른 사람들과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그 중간에 우리도 선물 받은 비치 타월을 깔고 자리를 잡았다. 푹신한 모래 위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부서지는 파도를 보고있으니.. 크~ 주머니에 미리 챙겨온 콜라맛 하리보 젤리를 쫄깃쫄깃 씹으면서 호주식 여유라는 것을 잠시 즐겨보기로 했다. 아주, 잠시.


 잠시. 딱 10분이었던 것 같다. 비치 타월을 깔 때만 해도 잠잠했던 빗방울은 우리가 젤리를 꺼내 씹을 때부터 묘하게 굵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하자고 한 일이라 먼저 얘기하지 못했지만 참 민망하게도 어느 순간부터 나는 추위에 벌벌 떨고있었다. 오늘의 날씨는 맑을 것이라던, 4시 이후로는 비가 그칠 것이라던 어제의 일기예보는 정확하게 빗나갔다. 맑았어야할 한 여름 크리스마스의 오후에 나는, 모래사장 위에서 추위에 떨었다. 

 추위를 넘어 감기가 오기 전에 우리는 10분 전에 펼친 비치 타월을 다시 접었다. 아쉬움 가득한 눈빛으로 바이런 베이를 쏘아보며 그렇게 그곳을 떠났다. 바로 예약해둔 에어비앤비 숙소로 들어가 깨끗하게 샤워를 하고, 그대로 기절했다. 기대했던 것과는 너무 달랐던, 피곤함과 아쉬움으로 가득한 크리스마스였다.




새벽 5시의 레녹스 헤드(Lennox Head)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 새벽 5시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맑고 따뜻한 날씨였다. 어제가 아니라 오늘 물놀이를 했어야했다며 얼마나 아쉬워했는지. 하지만 크리스마스 다음날, 12월 26일은 박!싱!데이!였기에 저렴한 쇼핑감을 사냥하러 우리는 떠나야만 했다. 물놀이는 다음 기회에...





 기대에 미치지 못한, 조금은 아쉬웠던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 그럼에도 크리스마스란 사실 자체로 즐거웠고 설레었으며, 레녹스 헤드의 바다는 아름다웠다. 어쩌면 내 인생의 마지막이었을지도 모르는 한 여름, 남반구 호주에서의 크리스마스는 이렇게 지나갔다. 부디 꼭 다음이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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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Darney

그만 좀 싸돌아다녀 이것아
@darney.trav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