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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스탠소프 워킹홀리데이]

-EPISODE 055-

해 쨍쨍한 어느 여름날 해바라기 언덕에서




 지금 *농장 생활을 하며 지내고 있는 스탠소프(Stanthorpe)에서 차로 40분 정도를 달리면 워릭(Warwick)이라는 마을이 나온다. 스탠소프에는 없는 헝그리잭스(Hungry Jack's)와 쇼핑센터가 있는 비교적 큰 마을로, 브리즈번(Brisbane)으로 향할 때 꼭 거쳐야하는 곳이자, 스탠소프 주민들이 이따금씩 쇼핑을 하러 가는 곳이기도 하다. 얼마 전 여느 때와 같이 워릭을 거쳐 브리즈번으로 향하던 길에 쭉 뻗은 도로 옆으로 활짝 핀 해바라기떼를 발견했다. 샛노란 해바라기들이 고개를 들고 뜨거운 태양을 단체로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얼마나 예쁘던지! 덕분에 푹푹 찌던 여름날, 더 푹푹 찌는 차 안에서의 드라이브가 덕분에 덜 지루하게 느껴졌다.

 마음 같아서는 차를 세우고서 사진을 왕창 찍어두고 싶었지만 고속도로에 차를 세울 수 있는 곳이 있을리도 없었고, 빨리 목적지에 가야하는 상황이라어쩔 수 없이 그냥 지나쳐갔다. 그리고 다음 날 브리즈번에서의 짧은 휴일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 다시 해바라기떼가 반겨주는 같은 길을 지나다 우연히 'Sunflower Route'라 쓰여진 표지판을 발견했다. -평소에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잘 살피는 편이라 이런건 귀신같이 발견해내는 특기(?)가 있다.- 오호라, 여기가 해바라기로 유명한 길이군! 이거다 싶어서 바로 검색에 들어갔고,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매년 여름이면 해바라기가 장관을 이룬다른 국도 11번-영어로는 National route 11-, 일명 해바라기 길(Sunflower Route). 워릭(Warwick)과 알로라(Allora)라는 작은 마을을 연결하는 옛날길로 여름철 로드트립 여행자들이 꼭 지나쳐야할 아름다운 길로 꼽히기도 한단다. 그리하여 해바라기가 사랑하는 태양이 쨍쨍한 어느 여름날, 나와 남자친구는 빨빨이를 몰고 해바라기 꽃구경에 나섰다.



해바라기는 어디에.



 꿀같은 휴일 아침, 이른 시간부터 차를 몰고 나왔다. 날씨는 너무 좋았다. 너무너무 좋아서 차 안에서 인간구이가 될 수도 있을 정도로. 숨이 턱턱 막히도록 뜨거운 호주의 햇빛을 자동차 에어컨으로 겨우 버티면서 한참을 달렸다. 사람 죽일 듯이 끓어오르는 태양을 목이 부러져라 바라보고 있을 해바라기떼를 기대하면서.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우리의 여행은 순탄치 않았다. 40여 분을 달려 그 예쁘다고 소문난 11번 국도의 시작점에 도착했다. 시작은 참 좋았다. 'Sunflower Route →'라 쓰여있는 표지판을 보고 곧 활짝 핀 해바라기를 구경할 생각에 잔뜩 신이났다. 창밖으로 얼굴을 내빼고 언제 해바라기가 나올까! 기분 좋게 기다리며 드라이브를 즐겼다.

 워릭부터 알로라까지 펼쳐진 11번 국도의 길이는 약 25km. 차로 20분이 조금 넘게 걸리는 거리다. 분명 인터넷에서 찾은 결과에 의하면 이 길의 시작부터 끝까지 해바라기가 펼쳐져 있어야했으나 현실은 초록빛 벌판의 연속. 이제 곧 나오겠지, 나오겠지.. 하며 20분을 달렸고, 정신 차려보니 알로라에 도착해 어느덧 마을 안까지 들어와있었다. 창 밖으로 카메라 렌즈를 내빼고 달렸으나 사진은 한 장도 찍지 못했다. 장관이라던, 그렇게나 아름답다던 해바라기는 단 한 송이도 없었다.


 그럴리가 없다며, 애써 현실을 부정하며 마을을 한참동안 뱅뱅 돌았다. 오는 길에 저 멀리서 노란 빛이 보였던 것 같아 그리로도 달려가보았다. 가까이에 가면 해바라기일거라 생각했던 노란빛은 사실 이름모를 곡물의 누런빛이었다. 그렇게 해바라기를 애타게 찾으며 알로라 마을 주변을 얼마나 돌았는지 모르겠다. 기름 써가며, 시간 써가며, 살 다 태워가며 떠나온 이곳에서 알로라(Allora)가 각종 곡물을 재배하는 마을이라는 정보 밖에는 얻지 못했다. -알로라 주변은 쌀, 보리, 수수, 밀과 같은 곡물들이 심어진 논밭 천국이었다. 곡물을 가공하는 커다란 공장들도 많아 스탠소프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찾았다 해바라기!



 실망스러웠다. 해바라기를 찾아 나온 나들이에 해바라기가 없다니 이렇게 허무할수가. '해바라기 철이 2월이 아니고 1월인가', '벌써 해바라기는 다 지고 내년을 위한 해바라기를 심어놓은 것인가' 따위의 생각이 줄을 이었다.

 미운 마음에 돌아올 때에는 다른 길을 타고 가기로 했다. 거짓말쟁이 같은 11번 국도를 다시 타고 싶지는 않았기에 구글이 추천해주는 다른 길로. 다시는 11번 길을 타지 않을거라 입을 대빨 내밀고 툴툴대면서 차 방향을 돌렸다. 그리고 그 때, 거짓말 같이 해바라기가 나타났다.




 우리가 그토록 찾아헤매던 해바라기는 11번 국도가 아닌 15번 국도에 펼쳐져 있었다. 정확히는 11번 국도와 15번 국도가 만나는 곳에. 저 멀리에서 보이는 샛노란빛에, 아까보았던 누런빛과는 확실히 다른 "샛노란빛"에 흥분한 나는 차 안에서 방방 뛰었다. -해바라기다! 해바라기!!!- 곧게 뻗은 해바라기 밭으로 향하는 길을 타고 들어가 철로 만들어진 코끼리 조형물이 눈에 띄는 어느 공장 앞에 잠시 차를 세웠다. 찻길을 기준으로 한 쪽에는 얼굴이 커다랗고 노란 갈기가 적은 해바라기가, 또 다른 한쪽에는 얼굴이 작고 노란 갈기가 더 선명한 해바라기가 심어져 있었다. 



힘없는 커다란 해바라기들



 왼편의 얼굴 크고 갈기가 별로 없는 해바라기들은 상태가 좀 좋지 않아보였다. 사진에서 보이듯 단체로 묵념하고 있는 해바라기들. 커다란 얼굴이 무거운 탓인지 이름값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꽃잎 색도 조금은 바래진 노란빛이라고 해야할까, 다른편의 해바라기들에 비해서 덜 선명한 색이었다. 



생생한 작은 해바라기들



 반면 다른 편 해바라기들은 아주 샛~노랗고 예뻤다. 땡볕에 몇 시간을 달리며 찾아다닌 바로 그 해바라기! 끝없이 펼쳐진 노란 물결에 몇 시간 동안의 고생은 잊고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아마도 해바라기 농장일 이곳은 정말 감사하게도 열린 공간이었다. 해바라기 사이사이에 들어갈 수 있도록 길이 나있어서 마음속으로 농장주 분께 무한감사를 표하며 조심스레 들어가보았다. 달리는 차 안에서 봤던 해바라기를 가까이에서 보니 느낌이 또 새로웠다. -우리 커플 외에도 해바라기를 보러 온 사람들이 여럿있었다.-





 단체로 해를 바라보고 있던 해바라기들. 태양을 등지고 서니 끝이 보이지 않게 심어진 수 천송이의 해바라기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착각도 들었다. 왠지 이곳의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





 꽃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찍은 인증샷. 사진 속 마냥 신나보이는 남자친구는 사실 이 날 꽃밭의 파리와 벌들에게 시달리며 괴로워했다. 벌은 꽃에만 관심이 있어서 괜찮았지만 파리는 정말 성가셨다. 사람 괴롭히는데 도가 튼 호주 파리들은 눈, 귀, 입 주변만 공략한다. 이 날 파리들이랑 뽀뽀를 몇 번이나 한건지..



해바라기



 깨끗한 하늘색과 노란색, 초록색의 조합은 완벽했다. 수채화로 표현하고 싶은 그런 풍경.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 더운 날 왜 밖에 나왔을까 자괴감이 들고 괴로웠었는데 해바라기 밭에 오니 이런 날씨가 오히려 감사하게 느껴졌다. 물론 겨드랑이에는 홍수가 나고 등도 다 젖었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 난생 처음 와본 해바라기 꽃밭은 땀을 흘려도 좋을만큼 너~무 예뻤다.






 난 해바라기가 이렇게 키가 큰 꽃인줄 이 날 처음 알았다. 165cm인 나와 키차이가 별로 나지 않던 해바라기들. 그 중 몇몇은 내 남자친구보다 훨씬 크기도 했다. 이 또한 해를 더 가까이서 보고 싶은 마음 때문인걸까? 어떤 해바라기들은 4m까지도 자란다는데 이 정도면 뭐 거의 잭과 콩나무의 콩나무 수준. 해바라기 줄기타고 구름 위 오두막에도 갈 수 있을 것 같다.





 중간에 유독 튀어나온 저 해바라기는 2m 쯤 될 것 같다. 그 뒤로도 쭈~욱~ 펼쳐진 키 큰 해바라기들. 보고 또 봐도 예쁘다..♥






 11번 국도를 타고 해바라기를 찾으러 갔으나 쌩뚱맞은 15번 국도에서 만난 해바라기 친구들. 이렇게라도 만나게 되어서, 이 날의 고생이 헛된 고생으로 남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 고생해서 찾아다닌만큼 예뻤고 계속 기억에 남을만큼 인상깊었다. 언제 또 이렇게 끝없이 펼쳐진 해바라기 꽃밭에서 뛰놀아 볼 수 있을런지.

 영어로는 Sunflower, 직역하면 '해꽃'으로 조금 밋밋한 이름을 가졌지만 한국 이름은 그 어떤 꽃보다 예쁜 이름을 가진 키 큰 꽃 해바라기. 이렇게나 햇살 좋은 날 해바라기를 마음껏 바라볼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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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Darney

그만 좀 싸돌아다녀 이것아
@darney.trav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