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PISODE 07 -
무지개 뜬 교토의 가을 하늘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던 장어 섭취를 마치고 나왔을 땐 늦은 오후였다.
교토의 거리엔 여전히 많은 여행객들이 있었고, 우린 시간을 날렸다는 생각에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속상한 내 마음을 알아챘는지 하늘은 보기 드문 아름다운 장식을 하고 날 반겨주었다.
교토 하늘의 무지개
일제히 한 곳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하늘에서 비행기 사고라도 난 줄 알았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하늘을 봤을 땐, 나도 그 이상한 무리에 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장어 덮밥을 기다리던 3시간동안 비가 내리다, 멈추다를 12번 넘게 반복했는데 그 변덕스러움은 이 아름다움을 위한 것이었나 보다.
우산을 접었다 폈다하며 날씨가 왜 이러냐며 투덜댔던 내 모습을 자연스레 반성하게 됐다.
한국에서도, 아니 그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엄~청나게 큰 무지개를 만났으니!
여태껏 눈에 힘주고 인상쓰지 않으면 잘 보이지도 않던 희미한 무지개만 근근히 만났었는데
이 날 만난 교토 하늘의 무지개는 빨주노초파남보가 확연하게 구분되는 선명한 무지개였다.
여행객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너도나도 무지개를 담기에 바빴고, 때문에 교통 정체(?)가 생기기도 했다.
도시에서 이렇게 선명한 무지개를 만나다니 소원이라도 빌어야 할 것 같았다.
-교토는 완전한 도시라고 볼 수는 없는 곳이지만 그렇다고 완전 시골은 또 아닌 것 같다.-
삶이 고된 멍멍이
모두가 무지개에 정신이 팔려있을 때 멍멍이는 이 틈을 타 잠시 눈을 붙였다.
아마 이 멍멍이에게는 주인님 뒤를 졸졸 쫓아다니는 이 날 하루가 참 고되었나보다. -우쭈쭈-
무지개 구경을 마치고 아라시야마역으로 돌아가는 길에 신기한 구경도 했다.
인력거 위의 일본 전통 의상을 입은 한 커플!
두 분의 차림새와 풍기는 분위기를 보아 단순히 옛 일본인 체험을 하는 관광객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특히 여자분은 지나가다 얼핏 들은 말투도 그렇고 진짜 게이샤인 것 같았다.
교토에는 많은 게이샤들이 거주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기온거리도 아닌 곳에서 이렇게 우연히 만날 줄이야..
신기해서 나도 모르게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유난히 하얀 얼굴과 화려한 장식, 게다가 인력거에 타고 있으니.. 시선강탈 당했다고 보는게 더 맞는 것 같다.-
늦은 오후의 교토는 무지개가 없는 쪽의 하늘도 잔잔하니 참 좋았다.
파아란 하늘과 뭉게뭉게 구름은 사실 언제봐도 지겹지 않다.
1급 하천 가쓰라가와(かつらがわ)
*아침에 건넜던 도게츠교로, 호즈가와강으로 다시 돌아왔다.
모든게 아름다웠던 -장어 빼고- 아라시야마를 떠나려니 너무너무 아쉬웠다.
교토에서 1박을 하지 않은게 지금까지도 정말 후회스럽다..
다시 도게츠교로 건너와 우리가 점점 이곳을 떠나고 있을때도 하늘엔 무지개가 두둥실 떠있었다.
건물이 없는 곳으로 나오니 무지개의 시작점도 보였다.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지개 위에 또 다른 희미한 무지개가 있는 것도 보인다. 쌍무지개!-
도게츠교 앞에 자리를 잡고 멍하니 무지개를 바라보며 시간을 때우고 싶었지만 어두워지는데다 강바람까지 불어 점점 추워지기 시작했다.
낮에는 아이스크림이 땡길 정도로 덥더니 밤이 되니 공기가 -급속도로- 차가워졌다.
시간이 여유로웠다면, 조금만 덜 추웠더라면 우리도 저 사람들처럼 강가에서 도란도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텐데.
도게츠교(渡月橋)
아라시야마역으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도게츠교 위에 올랐다.
아침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모습이었다.
이것도 나중에 알았는데 도게츠교에서는 건너면서 뒤를 돌아보면 안된다고 한다.
뒤를 돌아보면 빌었던 소원이 무효가 된다는데... 이 날 내가 이 다리 위에서 뒤를 돌아봤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사진 찍으려고 옆으로는 돌아봤던 것 같은데..? -안 돌아봤겠지.. 안 돌아봤어요..-
다리를 건너며 다리 옆으로-뒤 아님- 멀리 바라보면 하늘과, 산과 물이 어우러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저 멀리 보이는 산 위에 구름 방석 깔고 앉아있는 배추도사와 무도사가 보이는 듯 하다.
사람들이 하나둘 씩 돌아가는 시간엔 가게들도 문 닫을 준비를 한다.
슬슬 배가 고파왔는데 다들 정리를 하고 있어서 아쉽게도 고픈 배를 달래줄 수가 없었다. -꼬르르르..륵..-
아라시야마역 맞은편에는 자전거로 아라시야마를 여행할 수 있는 자전거 대여소도 있었다.
처음에는 자전거 주차장인줄 알았는데 가까이서 보니 'Hankyu Rent-a-cycle Arashiyama'라고 쓰여있었다.
아라시야마 지역을 자전거로 돌아다녀도 재밌을 것 같다.
-이것도 역시 다음 기회에...-
한큐 아라시야마역(Hankyu Arashiyama Station)
아침에 빠져나오는 사람들로 북적북적댔던 아라시야마역은 다시 돌아가려는 사람들로 다시 북적북적했다.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곳은 꼭 다시 오게 될 것만 같다.
한큐 전철
디자인이 참 마음에 드는 한큐열차를 타고 우리는 교토의 시내로 향했다.
시간이 이미 늦어서 바로 오사카로 돌아갈까 고민했지만 아무래도 교토를 떠나기가 너무 아쉬워 반대편에도 가보기로 했다.
물론 그것은 썩 좋지 못한 선택이었지만...
장어 때문에 많은 시간을 소비해 시무룩했던 나를 달래준 교토의 선명한 무지개.
요즘 꽃보다 청춘에 나오는 아이슬란드 같은 대자연 속으로 가지 않는 이상 이 날의 무지개보다 더 크고 아름다운 것은 한동안 보지 못할 것 같다.
*단풍에 *대나무숲에.. 예쁜 무지개까지 보여준 교토 아라시야마.
고마움, 아름다움과 동시에 아쉬움을 준 이곳은 멀지 않은 미래에 꼭 다시 찾을것만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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