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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브리즈번 워킹홀리데이]

-EPISODE 010-

Kangaroo Point House (부제: 워홀 쉐어하우스 생활기)




 이제는 정말 '우리집'이 되어버린 캥거루 포인트의 쉐어하우스. 이제는 이곳의 침대가 서울의 침대보다 익숙하고, 함께 사는 외국인 친구들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에어비앤비*백팩커스에서 머물며 우리집을 찾으러 다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 곳, 캥거루 포인트에서 생활한지도 한 달이 넘었다.





 한 달은 절대 짧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렇다고 세월이 느껴질 정도로 길지는 않은 것 같다. 그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음을 조금씩 쌀쌀해지는 날씨의 변화로, 어색하기만 했던 외국인 친구들과의 깊어지는 관계로부터 깨닫고 있다.


 한국은 이제 말 그대로 벚꽃엔딩. 온 동네 커플들이 흥얼거리며 거리로 쏟아져 나오던, 솔로들의 마음에는 불꽃이 휘날리던 바로 그 벚꽃 시즌이 끝나가며 슬슬 더워지고 있다고 들었다. 호주에 있음에도 어제 벚꽃을 본 것만 같은 것은 아마도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뒤덮은 벚꽃 사진과 차트를 또다시 휩쓸은 벚꽃엔딩 노래 때문일 것이다. 이곳 호주엔 흩날리는 벚꽃은 없고, 다만 아침 저녁으로 차갑게 피부를 감싸는 바람만 있을 뿐이다. 더운 나라에서 온 더운 나라 대만 친구는 벌써부터 코를 훌쩍이고 재채기를 하며 벌벌 떨고 있지만 한국의 겨울로부터 패딩을 껴입고 호주로 도망쳐 온 우리는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쌀쌀하긴 하지만 아직도 대낮엔 반팔도 벗어던지고 싶을 정도로 덥고, 밤에는 일단 한 번 잠들면 추운지 더운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우리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랑 확실히 다르긴 하다. 그 땐 밤이고 낮이고 아침이고 상관없이 하루종일 더웠으니.

 


테라스에서 보는 브리즈번 강 풍경



 우리가 수많은 집들의 inspection을 거쳐 이 집을 최종적으로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이 뷰(View) 때문이었다. 지난 번 *집 구하는 포스팅에서도 언급했지만, 무너질 것 같은 허름한 집임에도 브리즈번 강을 하루종일 감상할 수 있는 테라스에서의 멋진 뷰만큼은 '허름'이 아니라 '쩌름'이다. 아침에도 반하고, 저녁에도 반하고, 해가 지거나 뜰때는 넋을 잃게 만드는 뷰... 브리즈번 어디에서도 멋진 하늘과 풍경을 볼 수 있긴 하지만, 그리고 지금은 매일 같이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나에게는 왜 그렇게나 매번 특별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한 달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특별하고, 여전히 볼때마다 감탄한다.



15명의 하우스메이트



 달라지는 날씨와 한결같은 아름다운 풍경. 그리고 점점 더 깊이 알게되는 하우스메이트들.. 여기서 주의해야할 것은 '깊이 알아감'이 무조건적으로 긍정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알면 알수록 좋은 사람이 있는 반면, 알면 알수록 나쁜 사람도 있게 마련. 특히나 이곳 캥거루 포인트 하우스에는 우리를 포함해 총 15명이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전자인 사람도, 후자인 사람도 있다.





 대만에서 온 Chuck과 Evan은 알면 알수록 좋은, 계속 더 좋아지고 있는 친구들이다.


 Chuck은 처음 Inspection 왔을 때부터 인상이 좋았는데 같이 살아보니 더 좋은 친구였다. 영어를 잘하지는 않지만 꽃보다 청춘의 조정석보다 구글 번역기와 친할 정도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친구다. 워킹홀리데이로 호주에서 2년을 이미 보내고 지금은 32살의 나이로 호주에서 학교를 다니는, 사실 친구라기보다는 중국 아저씨에 가깝지만 배울 점도 많고, 재미도 있고, 정~말 좋은 사람이다. 가끔 같은 학교의 한국인 친구들로부터 한국어를 배워와서 우리한테 써먹는데, 어느 날은 "화장실이 어디에 있나요"를 배워와서 계속 써먹길래 "똥 마려"가 더 쉽다고 배를 부여잡는 모션과 함께 알려줬다. 그랬더니 그 이후로 계속 또 다른 대만 친구인 Evan과 배를 부여잡고 똥 마려, 똥 마려... 그 날 똥 마렵다는 말만 20번은 들은 것 같다. 그 다음날 학교에서 써먹었더니 한국 친구가 빵 터졌댄다. 한 번은 페이스북에다가도 한국어로 댓글을 달았는데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남자친구랑 계속 웃었다. Chuck 특유의 억양이 내 머릿속에서 음성지원 된다. 친↘구↗해요-


 Evan은 반전매력이 있는 친구다. 처음에는 남자인 줄 알았는데 여자였고-대반전이었다.-, 첫인상은 엄청 까칠해보였는데 알고보니 말도 많고 붙임성 좋은 친구였다. 밥 먹으러 주방 갈 때 자주 만나는데 그 때마다 항상 재밌는 대화 주제를 던져줘서 시간 가는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한 번은 한국 사회의 문제점에 대해서 진지하게 이야기 한 적도 있는데.. 어쩌다가 그런 얘기까지 나왔는지 모르겠다. 오늘은 직접 만든 티라미수를 먹어보라고 줬는데 맛이 또 기가 막혔다. 애슐리나 빕스 같은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먹는 것보다 훨~씬 맛있었다. 정말 반전매력의 끝판왕.  



thumb주방/거실



 이탈리아에서 온 Schamsa는 한 달 전이나 지금이나 그냥 계속 어렵다. 내가 뭐만 하면 태클을 걸어서 나를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지내다보니 그냥 매사에 그런 것 같다. 놀 땐 또 혼자 제일 신나서 춤추고 노래 부르고.. 그치만 평소엔 엄청 까칠하다. 영어도 이태리 억양이 그대로 묻어나는 영어라 알아듣기도 힘들고.. 더군다나 요즘에는 집 청소 담당 분배문제로 예민해서 무슨 말을 못 걸겠다. 하여튼 무서운 언니다.

 무서운 언니 옆방에 사는 콜롬비아에서 온 Nicolas는 최근 이 언니를 예민하게 만든 주범이다. 원래 청소를 방별로 일주일씩 돌아가며 했었는데 얘가 청소는 커녕 자기가 먹은 그릇마저도 치우지 않아서 애들이 단체로 화가 났다. 같은 집에 살지만 활동 시간이 달라서인지 거의 본 적이 없었는데 Evan한테 들어보니 얘가 아주 이 집의 문제덩어리였다. 렌트비도 잘 안 내고, 청소는 커녕 담배며, 설거지며 어지르기만 하고. 심지어 냉장고에서 다른 사람들 음식을 훔치기까지 한단다. 저번에 보니 마약하고 쇼파에서 헤엄도 치던데 대체 왜 이러고 사나 싶다. 이 집에 있는 애들 중에 제일 이해가 안 가는 사람이다.


 Nicolas가 집을 어지르는 주범이긴 하지만 얘가 아니어도 이 집은 그냥 더럽다. 마스터 없이 15명이나 사는 집이다보니 사실 깨끗할래야 깨끗할 수가 없는 환경이다. 처음 inspection을 왔을 땐 뷰 때문에 다른게 안 보였는데 살다보니 어떻게 이런 집에서 계속 사나 싶을 정도다. 사진은 보정도 하고 자세히 보이지 않아서 그래도 좀 깔끔해보이는 편인데 들여다보면 개판, 난장판이 따로 없다. 이곳에서 난, 한 달 사이에 '청결'을 잃었다.

 




 Josh는 이 집의 유일한 호주인인데 그냥 또라이다. 또라이라는 말보다 더 적절한 말은 없다. 호주에 오기 전에 How I met your mother라는 미국 드라마를 첫 편부터 끝까지 다 보고 왔는데 마치 그 드라마 속의 Barney를 복사 붙여넣기 해 놓은 것 같은 인물이다. Barney가 Suit Up!을 외치며 매일 수트를 입고 다녔다면 Josh는 Take Off인 정도? 옷 입은 게 어색할 정도로 집에서는 상의를 잘 안 입고 다닌다. 이것도 물론 처음엔 이상했지만 이젠 춥다고 후드 입고 있으면 다른 사람 같다. 옷 벗고 다닌다는 것만 빼면 외모도 그렇고 Barney랑 90% 일치하는 것 같다. 여자 좋아하고, 스트립 클럽 같은 곳도 다니고, 무슨 일 하는지 모르겠는데 돈은 많은 것 같고, 이상하게 또 요리는 잘하고.. 알 수가 없는 인물이다. 





 매일 아침이면 주방의 저 열린 창문을 통해서 수십마리의 파리가 들어온다. 신기하게도 아침 6시 쯤 가면 깨끗한데 7시가 지나면 파리 때문에 토스트 하나를 해먹기가 힘들 정도로 파리가 많다. Evan은 disgusting하다고 했고,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하지만 Josh를 비롯한 다른 애들은 별 신경을 안 쓰는 것 같다. 역시 내 청결을 되찾기 위해 빨리 이사를 가야할 것 같다.



난장판인 냉장고



 15명이 쓰는 냉장고는 생각보다 훨씬 더럽다. 냉장고가 총 3개가 있긴한데 하나는 아랫층의 Dan과 Laura만 쓰고 있고, 큰 냉장고 두 개를 7명/6명이 나눠쓰고 있다. 방마다 할당된 냉장고 칸이 있는데 운 나쁘게도 우리는 과일칸(서랍칸)을 배정 받아서 맨날 서랍 바닥에 물이 흥건하고 심지어는 주방을 맴돌다 냉장고에 갇혀 죽은 파리 시체가 나오기도 한다. 파리 시체가 나왔을 때 다시 한 번 제대로 다짐했다. 내 청결을 위해 조만간 이사를 가겠노라.



아랫층 주방



 아랫층의 주방을 독차지한 Dan과 Laura는 우리가 이 집을 떠나고 싶어하는 이유 3순위 안에 드는 콜롬비아 커플이다. 바로 옆 방에서 사는 커플인데 정말 너무 시끄럽다. 쓸데없이 빵빵한 스피커를 가져가지고 아침부터 밤까지 음악은 물론이고 전쟁영화에 좀비영화, 때때로 스펀지밥까지. 아주 내 청각을 골고루 자극해주는 대단한 커플이다. 이것도 모자라서 싸우기는 왜 이렇게 많이 싸우는지 드문드문 사람 죽은 것 마냥 펑펑 울어제끼는 소리도 들린다. 그렇게 하루종일 펑펑 울 정도로 싸웠으면-미안하지만- 헤어지고 방을 나갔으면 좋겠는데 다음날 보면 또 서로 좋다고 난리다. 아! 스트레스. 우는 소리도 정말 듣기 싫지만 여자애가 남자애 부르는 Baby~ 하는 소리가 더더더!!! 듣기 싫다. 여자 목소리가 거북할 정도로 느끼할 수 있다는 걸 여기서 처음 알았다. 그놈의 베이비... 



Possum



 이 집의 또다른 친구인, 어둑어둑해지면 테라스에 짠!하고 나타나는 Possum. 캥거루, 코알라와 같은 호주 동물인데 일종의 '야생쥐'다. 야행성이라 밤에 호주 공원을 돌아다니면 쉽게 만날 수 있는 동물 중 하나인데 우리집 천장 어딘가에 숨어사는 것 같은 이 Possum은 밤마다 먹이를 얻으러 테라스에 나온다. 쥐라고 해서 징그러울 줄 알았는데 실제로 보니 생각보다 귀여웠다. 만지고 싶은 정도는 아니지만.


 밤마다 Possum에게 먹이를 제공하는 Valentina는 이 집에서 가장 오래 머무르고 있는 친구다. 휴지, 세제 등 비품들도 Valentina가 돈을 걷어서 사오고 새로운 하우스메이트가 들어오면 집과 집 주변을 소개해주는 것도 이 친구다. 엄격한 채식주의자이면서 동물애호가인, 반박할 수 없는 착한 친구다. 같은 이탈리아 사람인 Schamsa랑은 달라도 너무 다른 이미지. 한 달 전과 달리 요즘 Valentina는 너무 우울해보여서 말을 못 걸겠다. 아무래도 한 달이 넘도록 일자리를 찾기 못해서인 것 같은데.. 기 쎈 Schamsa한테 눌린 것 같기도 하고. 얼른 일자리를 찾고 다시 밝아졌으면 좋겠다.



담배 냄새 나는 테라스



 Sandy, Melanie 그리고 Mary & Clement와는 별로 교류가 없다. Sandy는 스코틀랜드 사람이고 기타 치는걸 좋아하는 것까진 알겠는데 워낙 차도남이라 가까이하기가 힘들다. Melanie도 유럽 어딘가에서 날아온 애인데 주말 아침을 제외하고는 활동 시간이 전혀 안 겹쳐서 대화를 나눌 기회가 별로 없었다. Mary와 Clement는 며칠 전에 이사 온 프랑스 커플인데 이 친구들도 뭔가 어렵다. 둘 다 선이 뚜렷한 서양인의 얼굴을 하고 있어서일까, 남자친구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선뜻 말을 걸기가 쉽지 않다. 


 지금 살고 있는 캥거루 포인트의 집에 대해서 장황하게 글을 써내려갔지만 결론은 간단하다. "한 달 전 브리즈번강의 뷰에 콩깍지가 씌여서 이 집을 선택했지만 도저히 더러워서 살 수가 없으니 이사를 가야겠다."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났고, 또 이 친구들과 헤어지기 싫지만 정말, 견디기 힘들 정도로 더럽다. 왜 세탁기에 넣고 돌린 빨래가 넣기 전보다 더 더러워져서 나오는건지, 왜 내 우유는 유통기한이 한참 남았는데도 상해버리는건지, 왜 내 아침 토스트는 내가 아니라 파리가 먼저 맛 보는건지. 



바퀴벌레.....


 

 그리고 대체 이 바퀴벌레는 언제 죽어서 여기 자빠져 있는 것인지. 세상에서 죽는거, 아픈거 다음으로 싫어하는게 바퀴벌레인데 호주 바퀴벌레는 한국 바퀴벌레는 우스울 정도의 크기인데다가 날아다니기까지 한다. 저기 자빠져 있는 바퀴벌레는 죽어있으니까 그나마 눈 질끈 감고 피해가겠는데 며칠 전 우리 방에서 나타난 초대형 날아다니는 바퀴벌레는 정말... 처음으로 한국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를 향해 정면으로 날아오는 바퀴벌레와 눈이 마주쳤을 때의 그 느낌이란.. 안 본 눈을 돈 주고 사고싶다. 사진 속 바퀴벌레보다 2배는 큰 바퀴벌레였다. 밤중에 나는 소리 지르고, 남자친구는 바퀴벌레 잡는다고 이것저것 던지고..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나중에 잡고 나서 이것도 기념이라고 핸드폰에 사진을 찍어뒀는데 내 블로그를 위해 사진을 올리지 않도록 하겠다. 블로그마저도 더럽히고 싶진 않으니.


 참을 수 없는 더러움, 그리고 바퀴벌레 사건으로 인해 우리는 지금 한 달동안 정들었던 캥거루 포인트 하우스를 떠나려고 준비 중이다. 13명의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지낸 것은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분명 값진 경험이었다. 물론 그 다음 집도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사는 집이 될테지만 13명은 절대 아닐 것 같다. 6명 정도가 적당히 시끌시끌하면서 웬만큼 청결도 지킬 수 있는 숫자인 것 같다. 그 이상은 절대, 앞으로는 절대! 함께 살지 않으리다. -사람 13명은 견딜 수 있지만 바퀴벌레는 하나도 보기 싫으니.-

 그 다음 집은 부디 바퀴벌레 없이 깨끗한 곳이었으면 좋겠다. 그저 내 청결을 되찾을 수 있는 곳이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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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rney

그만 좀 싸돌아다녀 이것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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