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브리즈번 워킹홀리데이]

-EPISODE 028-

헤매고 헤매다 Nudgee Beach(넛지 해변)




 아무 일 없는 화요일. 기분전환 겸 바다를 보러 다녀왔다. 남자친구도 쉬는 날이었기에 오래간만에 자전거를 빌려 바다까지 달려볼까! 했었지만 예약을 먼저 했어야했다. 늦었다. 시내에 널리고 널린게 자전거(City cycle, 일명 립톤 자전거)지만 하루종일 타고 다니기엔 비용이 꽤 비쌌다. -3시간 이상 타게되면 약 40달러인 City cycle. 참고로 개인 자전거 대여소에서 9시부터 문 닫을 때까지 빌리는 비용이 35달러다.- 아쉽지만 다음주로 미루고 그냥 언제나처럼 기차랑 버스 타고 가까운 바다에 다녀오기로 했다. *잉햄 해고로 상처 받은 멘탈이 어느 정도 복구는 되었지만 완벽하진 않았기에 탁 트인 바다를 보며 힐링하고 싶었다.

 게을러서 블로그에는 올리지 않았지만 주변의 웬만한 바다는 다 다녀왔기에 -*Shorncliffe, Wellington point, *Redcliffe, Cleveland, *Stradbroke island 등... 생각해보면 그 와중에도 참 잘 돌아다녔다.- 이번엔 어디로 가볼까 고민하다가 지도상으로 제일 가까운 곳에 가보기로 했다. -사실 *골드코스트(Gold Coast)나 선샤인 코스트(Sunshine Coast)에 가고 싶었지만 차 없이 가기엔 더럽게 멀고 돈도 많이 들어서 포기했다.- 이름도 생소한 Nudgee Beach(넛지 해변, 넛지 비치)로! 검색해도 별 정보가 안 나오는 것으로 보아 혼자 궁상떨기 딱 좋은 조용한 해변일 것 같았다.



브리즈번 시티에서 넛지 해변 가는 법



 마침 시티에서 해변까지 한 방에 가는 버스가 있어서 좋아했는데 하루에 버스가 네 번 정도 밖에 없었다. 느긋하게 씻고 준비했는데 2시간 후에나 버스를 탈 수 있어서 그냥 기차를 타고 Nudgee역까지 갔다. 역에 내려서는 해변까지 걸어갈 생각이었다. 순발력은 없어도 걷는건 자신있는 슈퍼 뚜벅이니깐!





 몽글몽글한 내 마음을 읽은건지 하늘이 참 몽글몽글한 날이었다. 바다 가기 딱 좋은 날씨라며.





 잉햄 보닝 파트의 리딩핸드였던 Hayden이 생각나는 Hayden Street을 걸으며 -아직 잉햄을 완전히 잊지 못한 나란 여자...- 조금 후에 나타날 바다를 상상했다. 탁 트인 바다에 쏴아아 치는 파도를 보면 안 좋았던 마음도 파도와 함께 쏴아아 밀려나겠지 싶었다. 예전에 누가 '계속 물을 보고 있으면 미칠수도 있을 것 같다'라고 했는데, 그래서 나도 그럴수도 있겠다며 동의했었던 것 같은데. 이상하게 울적한 마음이 들 때면 물을 봐야할 것 같은건 또 왜일까. 서울에 살 때도 힘들 때면 집 근처 성북천을 따라 걸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아무 생각없이 걷다보면 청계천까지도 금방 가곤 했었지. 그게 벌써 얼마 전이야...





 한참을 걸어도 바다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걷는게 나쁘진 않았다. 한적한 이 마을엔 예쁜 집들이 많아서 이 집, 저 집 구경하는게 재밌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나 내 마음에 들었던 빨간 벽돌집. 나중에 혹시 이런 마을에 살게된다면 나도 이렇게 깔끔한 집을 짓고 살고싶다. 아기돼지 삼형제에 나오는 막내가 지었을 것만 같은 그런 벽돌집.





 구글이 알려주는대로 길을 걷다보니 공동묘지도 나왔다. 땅이 넓어서인지 묘지도 엄~청~나게 넓었다. 1900년에 돌아가신 분의 묘도 있었고, 며칠 전에 돌아가신 분의 묘도 있었다. 밤에 오면 무서웠을테지만 날 좋은 날 낮의 공동묘지는 무섭다기보다는 예뻤다. 묘지이면서 잘 가꿔진 공원이었던 곳. 고등학교 때 봄이면 벚꽃놀이를 가던 경기도 안산시 와동의 꽃빛공원이 생각났다. 묘지를 봤는데 뜬금없이 고등학교 추억이 새록새록.





 예쁜 묘지를 지나갈 때까지만 해도 좋았는데 갑자기 길이 이상해졌다. 구글만 믿고 따라가고 있었는데.. 구글이 여기가 공사중이라고는 안 알려줬는데..? 뭔가 느낌이 쎄했지만 그래도 구글님을 믿고 계속 걸었지만 길이 끊겼다. 구글이 걸어가는 길이라며 소개해준 길은 고속도로여서 보행자와 자전거가 진입할 수 없는 곳이었다. 예전에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여행할 때 신 같은 구글도 먹통이 되는 곳이 있구나 했었는데 이 날도 비슷했다. 길이 없는데 어찌 가란 말씀이신지요.



Nudgee Waterhole Reserve



 다행인지 불행인지 공사장 옆에 공원이 있어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바다에 가는 것도 중요했지만 배고픈걸 못 참는 남자친구가 나에게 당장 밥을 먹이라며 옆에서 징징댔기 때문에 공원과 고속도로만 있는 이곳에서 식당을 찾아야만 했다. 힐링하고 싶어 나왔는데 오히려 스트레스가 더 쌓이는 것 같았던건 기분 탓이었을게다.




꼬부기떼



 고속도로에 둘러싸인 작은 공원인줄만 알았던 이 곳은 알고보니 Nudgee Waterhole Reserve라 이름 붙여진, 번역하자면 보호 연못 구역(?)이었다. 개구리가 폴짝폴짝 뛰어다닐 것처럼 연잎이 동동 떠있던 이곳엔 개구리 대신 거북이들이 살고 있었다. -뭐 어딘가에는 개구리들도 있었을지 모르지만.- 어쩌면 나보다 오래 살았을지 모르는 장수의 상징 거북이들이 두꺼운 이끼로 각자의 등짝을 개성있게 장식하고는 연못을 유유히 배회하고 있었다. 사진으로는 다 담지 못했지만 거북이가 진짜 많았다. 그냥 눈에 보이는 것만 10마리가 넘었을 정도로!

 물 위에 떠있는 식물이 연꽃인지 뭔지, 종류는 모르겠지만 분홍분홍하게 벚꽃처럼 띄워져 있어서 만화에서 나오는 신비의 연못 느낌도 났다. 산신령이 튀어나와 금도끼냐 은도끼냐 똥도끼냐 물어볼 것만 같은 그런 느낌.





 연못에는 오리들도 많았지만 오리는 호주에서 하도 많이 봐서 별 감흥이 없었고, 대신 털이 무지개빛으로 빛나는 신기한 새를 봤다. 연못의 물고기를 잡으려 대기하고 있었던 것 같았던 이 새는 등짝의 검정색 털이 마치 물고기 비늘처럼 신기한 색으로 빛났다. 사람을 별로 안 무서워하는지 사진 찍으러 가까이 다가가도 날아가지 않았지만 내가 무서워서 더 가까이 가지는 못했다. 참 탐나는 털을 가진 새였다.


 연못에서 신기한 동물들을 만나 좀 감탄하다가 내 옆에서 배고프다 울부짖는 동물-=남자친구-을 달래기 위해 고속도로를 용기 있게(!) 가로질러 주유소 안에 있는 맥도날드로 향했다. 싸고 맛있는 더블치즈버거와 비싼데 맛없는 클럽하우스치킨버거를 먹으며 배를 채우고, 다시 연못 쪽으로 돌아와 -고속도로를 또 가로지르고- 버스를 탔다. 일찍 오겠다고 기껏 기차 타고 와서 한참을 걸었는데 집에서 두 시간 기다렸다가 버스를 탄 것과 같았다. 심지어 구글이 없어진 정류장을 알려주는 바람에 정류장도 아닌 곳에서 버스를 타서 기사 아저씨한테 Sorry를 10번 외쳤다. 구글한테 배신 당한 느낌.....





 한참을 헤매다 마침내 도착한 넛지 해변은 예상했던 것처럼 조용했고, 볼 것도 별로 없었다. 해변이라기보다는 그냥 마을인데 앞에 바다가 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썰물 때여서 보고싶었던 바다는 저~ 멀리에 있었고 파도 소리도 전혀 들리지 않았다. 쏴아아 하는 파도 소리를 기대했는데 귓구멍을 후벼파는 듯한 바람 소리만 가득했다.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사람이 없어서 다 내 땅 같았기 때문에.



외계행성



 밀물 때는 물이 가득 차있었을 이곳은 바닥이 끈적끈적한 갯벌이 아니라 모래였다. 누가 포크로 긁어놓은 것마냥 모양나있는 바닥이 신기했다. 외계행성을 떠돌고 있는 느낌! 나사(NASA)에서 간간히 업데이트 해주는 우주 행성 사진에서 이런 비슷한 걸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날 좋고, 배경 좋고, 사람도 없으니 혼자 사진 찍고 놀기에는 더할 나위없이 좋았다. 내가 여기서 소리를 지르고 춤을 추고 미친척을 해도 아무도 모른다는 자유! 하지만 나는 얌전하고 차분한 사람이라 그냥 조용히 사진만 찍었다. 미친척은 정말 미치지 않는 이상 나랑은 안 어울린다.





 카메라를 바닥에 내려놓고 인생샷도 찍었다! 언제나 나는 앞모습보다는 뒷모습이... 난 내 스스로를 정말정말 사랑하지만 내 앞모습을 제대로 찍은 사진은 이상하게 별로 정이 안 간다. 슬프게도..





 골판지 모양의 모래 갯벌(?) 위에서 한참 사진을 찍다가 물이 차오르는 것 같아서 다시 육지로 올라왔다. 바다 바로 옆은 또 초록초록한 공원이어서 걸을 맛이 났다. 여기도 역시 사람이 별로 없었다. 이 동네는 원래 사람이 별로 없는 동네인가보다.





 공원을 걷고 있는데 나를 비추는 해 옆으로 신기한 모양의 무지개가 보였다. 사진은 역광이라 어둡게 나왔지만 실제로는 파란 하늘에 작은 무지개가 떠있는 것 같았다. 잉햄에서 *현장 면접 보고 돌아오는 날 저것과 똑같은 모양의 무지개를 보고 '내가 잉햄에 붙으려는 징조인가보다'하고 좋아했었는데.. 지금도 여전히 좋은 징조이겠지. 이번에는 또 어떤 스펙타클한 사건이 나를 기다리고 있니 무지개야?





 공원을 걷는 내내 햇살은 내 눈을 공격했다.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지만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어서 카메라에게 맡겼다. 사진을 보는데도 눈이 부신 것 같은 건 착각이겠지..





 초록색과 하늘색으로 이루어진 공원의 풍경은 따숩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를 위로해주는 것 같달까. 다음 생에는 이런 걸 보면 예술적인 감각이 확 깨이는 그런 예술가로 살아보고 싶다. 잔잔한 음악을 만든다던가, 색채가 따수운 그림을 그린다던가.





 손가락으로 만지고 싶을만큼 예쁜 하늘이었나보다.





 공원을 따라 조금 더 걷다보니 바다가 보이는 놀이터가 나왔다. 바다가 보이는 놀이터라니. 우리 나라에 있는 놀이터는 아파트 숲 사이에 둘러싸인 것들 뿐인데.. 놀이터에서 놀기엔 너무 커버린 나지만 어린애마냥 그네를 타고 놀았다. 남자친구는 앞뒤로 움직이는 기구를 탔는데 이름은 모르겠다. 그렇게 멍하니 놀이터에서 끼익-끼익- 기구를 타다보니 해가 저물어가고 있는게 느껴졌다.



멍!멍!



 우리는 아까부터 물이 들어오는 것 같다며 육지(?)로 피해있었는데 물이 들어오는 것마저 즐기고 있는 사람들과 강아지가 있었다. 아저씨가 공을 힘껏 던지면 멍멍이는 춥지도 않은지 물 안으로 펄쩍펄쩍 뛰어들어가서 공을 물어왔는데 그 모습이 영화의 엔딩 장면 같았다. 



워홀러들이 타고 있었을지도 모를 비행기



 넛지 해변은 브리즈번 공항과도 가까워서 착륙 또는 이륙하는 비행기들을 어렵지 않게 관찰할 수 있는 곳이다. 저 중에는 설레는 마음으로 호주에 입국하는 나같은 워홀러들도 있겠지 하는 생각에 좀 짠해졌다. 힘내세요... 호주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더라구요. -흑흑-





 어느덧 해가 저물어가고, 하늘은 점차 핑크핑크하게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해 지는 걸 보고 싶었는데 해가 반대 방향에서 지는 줄은 몰랐다. 바다 뒤로 떨어질 줄 알았는데 산 뒤로 떨어져서 좀 아쉬웠다.





 그치만 해 지는 때의 하늘은 예뻤다. 언제나처럼. 이렇게 슬슬 주황빛, 분홍빛이 돌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깜깜해질 거 이제 다 안다. 사람 없는 이 동네는 깜깜해지면 더 무서울테니 얼른 집으로 돌아가야했다.





 하지만 우리가 타고 왔던 버스가 이 날의 마지막 버스였기에.. 우리에겐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았다. 호기롭게 걸어갈까 생각했지만 무서울 뿐더러 밤이 되면 그 고속도로는 더 위험해질테고, 또 예뻤던 공동묘지도.....

 그래서 고민하다가 우버(Uber)를 탔다. 집까지 타고가기엔 너무 비싸서 Nudgee역까지만 타고 가기로. 잉햄에서 늦게 끝나는 날 쓰려고 묵혀뒀던 10달러 우버 쿠폰을 과감하게 사용했다. 덕분에 15센트만 내고 안전하게 역까지! 이 날도 무사귀가 했다. 


 찾아갈 때는 구글이 이상한 정보를 줘서 헤매느라 괜히 왔나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차를 타고 오거나 또는 버스 시간을 잘 맞춰서 오면 조용히 바다 구경을 하기에 나쁘지 않을 곳인것 같다. 아, 바다 구경이라기 보다는 골판지 같은 모래 구경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객관적으로 추천할만한 곳은 아니지만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조용한 곳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찾아가봐도 좋을 듯하다. 그래도 또 가보지는 않을 것 같다.. 굳이....



* UBER 쿠폰 *


아래를 통해 가입하면 처음 우버에 탑승할 때 약 12,000원($10)을 할인 받을 수 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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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Darney

그만 좀 싸돌아다녀 이것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