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스탠소프 워킹홀리데이]

-EPISODE 037-

브리즈번 안녕! 스탠소프 안녕? 우리 차 안녕..




 2016년 9월 23일 금요일, 마지막 일자리였던 *잉햄에서 짤린지 약 한 달이 지난 이 날. 드디어 나는 지긋지긋한 브리즈번 시티(Brisbane City)와 작별 인사를 나눴다. 모든 일일 술술 풀렸더라면 2-3주 전에 일어났을 일이지만 예상치 못한 일들-예) 뺑소니-이 펑펑 터지는 바람에 또 긴 시간을 낭비해버렸다. 더이상은 안되겠다 싶어 조금 무리해서 떠나기로 한 이 날도 역시, 일이 술술 풀리지는 않았다. 세상사 내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일찍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단 하나도 내 생각대로 되는 일이 없다니.. 


 농장으로 떠나기 전, 우리에게 주어진 미션은 크게 두 개였다. 렌트를 하고 있던 아파트에 우리를 대신할 커플을 구해놓는 것과 박살이 나버린 차를 어떻게 할지 보험회사와 이야기를 끝내는 것.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지옥 같은 3주를 보냈던 것 같다.



우리가 살았던 브리즈번 시티의 아파트



 우선 렌트...는 처음부터 끝까지 골치가 아픈 일이었다. *캥거루포인트(Kangaroo point)의 쉐어하우스에서 나와 이사를 올 때 *검트리(Gumtree)를 이용해 이 아파트를 찾았었다. 모든 조건이 완벽한데 가격도 우리가 생각한 최고값 미만이여서 냉큼 하겠다 한 집인데, 알고보니 일반적인 쉐어하우스가 아닌 부동산을 통한 '렌트'를 하는 것이었다. -정확히는 렌트를 넘겨받은 것. 거실쉐어 돌리는 악덕 렌트업자 아님- 워낙 괜찮은 집이어서 하겠다 한건데 거의 한 달 동안 부동산을 왔다갔다 해야할 정도로 처리해야할 일이 많았다. 우선 전에 살던 애들이 나가면서 제대로 된 Take over 과정을 거치지 않았었고, 부동산에서는 다른 나라에서 온 임시거주자인 우리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말도 안 통하는 부동산과 중요한 문제들을 얘기하느라 스트레스를 정말 많이 받았었다.

 어쨌든 한 달여에 걸쳐 서류 작업들을 겨우 마치고 몇 개월간 잘 살고 있었던 이 집에서 나가려니.. 들어올 때만큼이나 복잡한 과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를 대신할 또다른 세입자를 찾아야 했고, 그들과 시간을 조율해야 했으며 부동산으로부터 '적절한' 세입자인지 검사를 받아야했다. 두 번째까지는 어렵지 않았으나 초깐깐한 부동산 덕분에 세 커플이나 퇴짜를 맞았다. 덕분에 우리의 이사도 하루, 이틀.. 그러다 몇 주까지 늦어지게 됐다. 망할.

 부동산과의 씨름을 시작한 지 약 2주 째 되던 어느 날, 드디어 부동산으로부터 네 번째 커플이 승인을 받았다. 학생 비자로 호주에 머물고 있는 일본인 커플이 우리의 빈 자리를 채워주기로. 그 후로도 또 몇 차례의 서명과 논쟁의 과정을 거쳤지만 생각만 해도 스트레스를 받으니 서술하지는 않도록 하겠다. 어쨌든 부동산 문제는 나름대로 나쁘지 않게 해결이 되었다. 2주의 시간과 몇 십 달러의 손해를 남긴 채로.



많이 아픈 빨빨이..



 하지만 집보다 더 큰 문제가 남아있었으니... *호주 고속도로에서 뺑소니를 당해 심각한 외상을 당한 우리의 차, 빨빨이.. 지난 번 포스팅에 언급한 것처럼 그나마 다행히 차를 사자마자 RACQ라는 큰 보험회사에 가입해 금전적인 손실을 최소화 할 수는 있었으나, 호주 사람들의 느려터진 일 처리능력이 문제가 됐다. 사고 당일 경찰서와 보험회사에 신고를 하고, 그 다음 날 보험회사에서 알려준대로 카센터로부터 견적도 받았다. -견적 받는데도 5일이나 걸렸다.- 그 후로는 보험회사로부터 견적서와 차의 상태를 한 번 평가 받고-적절한 금액인지-, 수리 또는 폐차가 결정나면 끝이었다. 곧 죽을 것 같은 빨빨이를 데리고 평가 받는 곳에 갔더니 3분 정도 대충 슥- 훑어보고는 전화줄테니 기다리란다. 나는 한시가 급한데 또 기다리라니.. 내일 쯤 연락을 준다던 보험회사는 하루 한 번의 독촉 전화에도 불구하고 나의 소중한 한 주가 끝나는 날까지 연락을 주지 않았다.


 보험회사의 연락을 기다리는 중 위에서 언급한 집 문제가 해결이 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깊은 고민 끝에, 다치긴 했지만 '안전하게 운전 가능한' -카센터 아저씨와 보험회사 직원이 분명 안전하다 했다.- 빨빨이를 끌고 새로운 커플이 이사 오기로 한 23일 금요일에 스탠소프(Stanthorpe)로 떠나기로 결정했다. 아직 보험회사로부터 연락이 오지 않아 폐차가 될지, 수리가 될지 정해지지 않았지만 느려터진 호주식 일 처리를 더이상 기다릴 수가 없었다. 이미 소중한 시간은 계속 흘러 벌써 9월이 다 가고 있었으니까.



우리집에서의 마지막 밤 하늘



 그렇게 또 시간은 흘러 23일이 되었고, 전날 밤 싸놓은 모든 짐을 빨빨이에 구겨넣었다. 분명 이민가방과 캐리어 그리고 등짝에 백팩 두 개만을 가지고 호주에 왔었는데 집을 나갈 때는 차가 터질만큼 짐이 불어나있었다. 족히 50kg은 나갈 것 같은 거대한 이민가방과 식료품, 샤워용품들을 각각 담은 수 십개의 비닐 봉지를 다 싣고나니 빨빨이가 더 쳐져보였다. 기분탓이라 여기며 스탠소프로 향하는 엑셀을 밟았다. 아무 이상이 없을거라 믿었고, 또 그러길 바랐다.



처음 스탠소프 가던 날 with 멀쩡하던 빨빨이



 브리즈번 시티에서 스탠소프로 가는 길은 멀고, 험하기까지 하다. 겨울에는 눈도 내린다는 산 속의 스탠소프에 가기 위해서는 약 300km를 달려야하며 당연히 구불구불한 산길도 올라야한다. 비 내리는 어두운 밤, 뺑소니 사고가 났던 그 길을.. 친절하신 카센터 아저씨가 운전해도 된다며 몇 번을 강조했었지만 그래도 정말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는 길에 한 번 들러봤다. 카센터 아저씨의 입으로 '너네 가도 돼. 안전해'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카센터에 도착하니 아저씨는 단번에 우리를 알아보고는 반가워해주셨다. 보험회사에서 연락이 왔느냐길래 호주는 너무 느려터졌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아저씨도 느려요..라는 의미도 은근슬쩍 함축- '우리가 다른 곳에 일자리를 얻어서 그런데 이 차로 장시간 달려도 되나요?'하는 우리의 질문에 아저씨는 차 상태는 보지도 않고 'Sure! It's safe!'를 외치셨다. 견적을 내보셨으니 당연히 차 상태를 잘 아시겠지만은, 보지도 않고 무조건 괜찮다니 좀 불안하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했다. 그래서 3시간을 넘게 달려야한다, 산이다, 구불구불한 길을 가야한다는 등 이유를 보태어 기어코 아저씨가 우리 차를 한 번 살펴보게 만들었다. 귀찮게구는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들었지만 나의 이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차 상태를 슥 훑어본 아저씨는 다시 한 번 괜찮다며 '너네 이미 짐도 다 싸서 나왔네'라고 말씀하셨다. 듣고 싶었던 말을 들으니 드디어 마음이 놓였다. 편안한 마음으로 아저씨께 감사하단 인사를 남기고 스탠소프로 출발하려 차에 탑승을 하려던 찰나... 'Wait! wait!'을 외치던 아저씨. 뒷 차에 제대로 치였던 뒷바퀴를 한참 살펴보시더니 표정이 급 심각해져갔다. 오, 신이시여 또... 또 이러시면 안되죠..


 몇 번의 검사에도 몰랐던 치명적인 문제를 하필 이 날 발견해버렸다. 이사를 가려고 모든 짐을 구겨넣고 나왔는데, 이젠 맘편히 내 몸을 뉘일 집도 없는데..

 그 날, 빨빨이의 뒷바퀴는 타이어 뿐만 아니라 휠 자체에도 충격이 가해졌었나보다. 자세히보니 새로 갈아낀 뒷바퀴의 타이어가 1자가 아니라 살짝 안으로 휘어져있었다. 이 경우 타이어가 금방 마모되며 타이어 쪽 부품끼리 마찰로 인해 과열이 될 수도 있다고 하셨다. 그러니 절대 타지 말라고.. 장거리 운전 중에 타이어가 터지거나 과열로 멈춰버릴 수가 있단다. 그럼 저희는 어쩌면 좋나요..?


 너무너무 억울한 말투로 아저씨에게 우리의 상황을 설명했다. 다른 도시에 가야한다, 이미 너무 늦었다, 짐도 다 싸들고 나왔다, 보험회사에서는 몇 주째 연락이 없다... 아저씨는 보험회사에도 직접 연락해주시고 좋은 말씀도 해주시면서 우리를 최대한 도와주셨다. 그치만.. 당장 오늘을 살아갈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집은 나왔고, 짐은 다 차에 있는데 차는 운전할 수가 없고.. 스트레스로 온 몸에 열이 나고 머리털이 다 빠져버리는 것 같았다.



친구 차에 짐을 우겨넣고 스탠소프로 가는 길에



 고민의 늪에 빠졌다. 아무 이상이 없었다면 도착했을지도 모를 시간에 나는 카센터 구석에 앉아 이 지긋지긋한 늪에서 빠져나가려 뇌세포 하나하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한참동안의 깊은 고민 끝에 결국 우리는 친구의 도움을 받기로했다. 잉햄에서 함께 짤린 후 스탠소프에 먼저 자리를 잡고 있던, 어느 순간부터 내 블로그에 자주 언급되고 있는 그 친구로부터.

 친구는 우리를 위해 소중한 쉬는 날의 3시간을 바쁘게 달려 시티까지 와줬다. 그리고 다시 서너시간을 달려 무사히 목적지인 스탠소프에 도착했다. 당장 밤을 지내기 위한 집을 구하는 것도 도와주고 이사도 도와준 후 멋있게 사라졌다. 이 고마움을 어떻게 갚을 수 있을지 몰라서 충성스런 두 노예가 되어주기로 했는데 그 후로도 계속 신세만 지고 있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더 크다. 점점 민폐캐릭터가 되어가는 느낌도 들고.. -두고두고 갚을게.....- 허허허.



생각보다 너무 좋은 스탠소프 라이프



 친구의 도움으로 무사히 스탠소프 생활을 시작한지도 어느새 2주가 지났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스탠소프에서의 시골 생활은 재밌다. 좋은 친구들도 많이 만나고, 여기저기 놀러도 다니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농장 일자리도 얻으며 오히려 시티에서보다 잘 지내고 있는 것 같다. 아직까지 차가 없다는 것만 제외하면.. -2주 째 수리중.. 언제 끝날지 모름- 


 호주에서 하루가 가고 일주일이 가는게 신기했는데 이제는 가는 하루가 아쉽기만 한 워홀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떠나오기 전 보았던 워홀 성공담이 실린 책이나 블로그에서 본 이야기들처럼 알차게 보내지도, 스스로 목표로 했던 것들을 이루지도 못했다. 모범적인 워홀 사례가 되지는 못하겠지만 나중에 시간이 지나 이 때를 뒤돌아 봤을때 만족스러운 날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지금 당장은 힘들고 우울할지라도.

 7개월 차에 시작한 내 워홀의 2막, 스탠소프에서의 시간들은 특히 더 좋은 날들로 기억에 남길 바란다. 덜 우울하고, 더 재밌었으면 :) 스탠소프에서는 흔히 보이는 별똥별들에게 진지하게 빌어보련다. 재미있는 워홀 막바지를 보내게 해주세요!






워홀러의 호주별곡 | 2016/스탠소프에 살어리랏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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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rney

그만 좀 싸돌아다녀 이것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