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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브리즈번 워킹홀리데이]

-EPISODE 038-

스탠소프의 별 헤는 밤 ★




 브리즈번(Brisbane)에서 차로 3시간을 넘게 달려야 겨우 도착하는 스탠소프(Stanthorpe). 바다와 가까운 브리즈번이나 골드코스트와는 달리 산 속 깊은 곳, 고지대에 위치해 있어 퀸즐랜드(Queensland)답지 않은 추운 날씨를 자랑(?)한다. 작년 겨울에는 눈이 올 정도였다고. -Sunshine State라고도 불리는 퀸즐랜드의 겨울은 보통 한국의 봄 정도의 날씨- 남반구의 계절이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9월, 퀸즐랜드 대표 따뜻한 브리즈번에서 이사를 온 우리는 예상치 못한 추위에 이민가방 깊은 곳 쳐박아 놓았던 수면바지를 꺼내야만 했다. 10월도 어느덧 다 가고 11월이 찾아오는 지금도 여전히 스탠소프는 밤이면 수면바지를 꺼내 입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날씨다. 하지만 반대로 낮에는 해가 더 가까운 탓인지 덥다 못해 몸이 계란후라이 마냥 익어버릴 것처럼 뜨겁다. 때때로 내리쬐는 태양빛이 너무나도 강렬해서 선글라스 없이는 눈을 뜨기가 힘들 정도. 일교차가 큰 고지대 스탠소프에서의 하루는 여름과 겨울을 12시간마다 왔다갔다 하는, 그런 느낌이다.



스탠소프 동네 풍경



 큰 일교차 덕분에 면역력이 뚝뚝 떨어지는 것만 같은 느낌이지만 스탠소프에서의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만족스럽다. 여러 가지 이유들 중에서도 가장 좋은건, 고지대에 위치한만큼 하늘이 더 가깝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스탠소프 타운



 하늘이 가까운 스탠소프에서는 날 좋은 날이면 동네 어디를 가도 엽서 속 풍경 같은 예쁨을 느낄 수 있다. 브리즈번에서도 호주는 왜 이렇게 하늘이 예쁘냐며 찬양을 하고 다녔었는데 스탠소프에 비하면 브리즈번은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싶다. 





 가끔은 뭉게뭉게한 구름이 아닌 신기한 모양의 구름이 시선을 강탈할 때도 있다. 사진을 찍은 이 때는 스탠소프에 온 지 얼마되지 않은 날 집 앞 공원을 산책하고 있을 때였다. 고깃집의 커다란 아이스크림 통에 남은 자국 같았던 이 날의 구름은 얇아서인지 움직임도 빨랐었다.


 뭉게뭉게한 구름도, 펴발라진 구름도 발길을 멈추고 멍하니 바라볼 정도로 예쁘지만 스탠소프에서는 밤이 낮보다 훨씬 더 아름답다. 낮의 하늘이 시선을 강탈하는 정도라면 밤의 하늘은 목이 아프다고 느껴질 때까지 눈을 뗄 수 없는 정도? *스탠소프에 처음 다녀갔던 그 날도 빛 하나 없는 산 중턱에 차를 세워 한참을 바라볼만큼 많은 별에 감동 받았었는데.. 이 곳에 지내다보니 일상이 되었다.





 하루는 이 별을 눈으로만 보는게 아까워 카메라와 삼각대를 들고 집 앞 공터로 나갔다. 사진 찍는걸 좋아하긴 하지만 전문적이지는 못한지라 계속 실패했다. '별 사진 찍는 방법'을 몇 번이나 검색하고 그대로 따라했는데 어째서인지 제대로 찍히지 않았다. 역시 내 실력과 장비로는 무리인가 싶었다. -알고보니 실패의 이유는 구석에서 밝게 빛나는 달 때문이었다. 별 사진 찍을 때 달은 피할 것!-



별 헤는 밤



 그치만 나는 의지의 한국인! 몇 십 번의 실패 끝에 완벽한 별 사진을 얻었다. 너무 완벽하게 찍어서 내가 찍고 내가 놀랐다... 나는 별을 찍으려 했을 뿐인데 은하수가 찍히다니. 너무 신나서 이후로도 30초의 셔터스피드로 몇 장을 더 찍었다. 머리 위로 쏟아지고 있는 별도 감동, 이걸 찍어냈다는 사실도 감동이었다. 순간 눈물날 뻔..☆ 





 완벽한 별 사진에 성공한 그 날 이후로도 한가로운 밤이면 나가서 별을 구경했다. 몇 번은 또 카메라와 삼각대를 짊어지고 나갔었지만 그 전 날만큼 완벽한 사진은 건질 수가 없었다. 동글동글 커다란 보름달이 너무 밝은 탓이었던 것 같다. 별 사진을 찍는 데에는 아무래도 운이 따라야하는가 보다.



 며칠 전 친구들과 옹기종기 모여 앉아 영화 '동주'를 봤다. 친구가 Ebay에서 100달러를 주고 샀다는 빔 프로젝터는 남자친구가 예전에 PC방에서 경품으로 받아온 블루투스 스피커와 어우러져 꽤나 영화관스러웠다. 영화는 잔잔하면서 감동적이었다. 흑백영화인 것도 좋았고, 주연으로 출연한 강하늘과 박정민도 좋고, 또 수능을 위해서 공부했었던 내용을 수능이라는 목적없이 영화로 보고있으니 좋았다. 무엇보다 영화 중간중간 윤동주 시인의 시를 나지막히 낭송하는 부분이 가장 인상깊었다. 영화 내용, 영화에서 보여주는 윤동주 시인의 삶 그리고 강하늘의 목소리가 차분하게 엮여져 감동이 배가된 것 같다.

 영화를 보고난 후 스탠소프의 밤 하늘에 수 놓아진 별들을 보면서 영화 속 잔잔한 목소리가 떠올랐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을 노래하는 그 부분이. 나는 윤동주 시인처럼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면서도 나의 안위와 돈만을 소원으로 빌었지만 영화 속 목소리를 떠올리며 잠깐동안 별을 한 번 헤어봤다. 그 잠깐동안 저 많은 별들 중 하나는 나를 향하고 있지 않겠냐며, 그 중 하나는 보고싶어하는 그 누구일지도 모른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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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Darney

그만 좀 싸돌아다녀 이것아
@darney.trav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