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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스탠소프 워킹홀리데이]

-EPISODE 040-

고기를 잡으러 댐으로 갈까나




 물가에 낚싯대를 던져놓고 가만히 앉아 입질이 올 때까지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일은 '월간낚시'와 같은 잡지 표지를 장식하는 아저씨들이나 즐기는 일인줄 알았건만. 지루한 스탠소프에서의 일상이 계속되던 어느날 나는 낚통사고를 당했다.





 방 안에 누워 핸드폰과 천장을 바라보면서 시간을 보내던 10월의 어느 날, 낚시를 하자는 친구들의 부름에 무거운 엉덩이를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 낚시 장비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관심도 -1도- 없었지만 딱히 할 일이 없었던지라 쫄래쫄래 따라나갔다.


 생각없이 따라간 낚시원정대(?)는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많은, 친구들이 다니는 *버섯 농장 모임이었다. 처음 보는 누군가의 차에 올라타야했던 그 순간 우리가 낄 곳이 못된다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돌이키기엔 늦은 때였다. 살갑다기 보다는 차갑고, 친화력이 좋기 보다는 그냥 화력이 센 성격인 나에게는 모르는 사람 여럿과 보내는 시간이 어색하기만한데..

 예상했던대로 나는 발끝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는 어색함 속에서 발버둥치며 있었다. -물론 다들 좋은 분들이셨다. 다만 내가 좋은 사람이 못될 뿐- 설상가상으로 물고기를 잡으러 나간 곳에는 물고기는 커녕 물도 없었다. -정확하게는 물 근처에 가지를 못했다.- 흐르는 물을 가운데 두고 어떻게 하면 가까이 갈 수 있을까 한참을 모험하다가 낚싯대는 꺼내보지도 못하고 그렇게 차를 돌렸다.


 그래도 이왕 나온거 그냥 들어가긴 아쉽다는 누군가의 의견에 돌린 차들은 각자의 집이 아니라 스탠소프를 가로지르는 집 근처 개울로 향했다. 발언권과 의사결정권 따위 없었던 우리는 그냥 차가 움직이는대로 가만있었다. -집에 가고 싶었는데.. 어색함 없는 우리집.....- 공원 벤치에 옹기종이 모여앉아서 햄버거를 와구와구 집어먹고 수다를 좀 떨다가 드디어 낚시 장비를 꺼내들었다. 물고기가 있을리 만무해보이는 개울에서.

 처음에는 낚싯대 주인들이 던지는걸 구경만하다가 수줍게 나도 한 번 던져봐도 되냐는 친구의 물음을 시작으로 낚싯대를 차지했다. 낚싯대 주인인 하우스메이트 요코-한국말 엄청 잘하는 홍콩 친구-는 우리에게 낚싯대를 건네주고 휑하니 사라졌다. 물고기가 잡히지 않을 낚시보다는 수다에 더 관심이 있는 듯 했다. 그리고 이 때 나는 뜻밖의 '낚통사고'를 당했다. 

 친구로부터 낚싯대를 건네받아 난생 처음으로 낚싯대를 던져봤다. 그냥 그게 다였다. 물고기 따위는 비늘 한 조각도 보이지 않았지만 낚싯대를 휙~ 하고 던지는 그 행위 자체에서 나는 재미를 느꼈다. 그렇게 우연하게 스탠소프에서의 취미 낚시가 시작되었다.



낚여라 물고기



 단체로 낚통사고를 당한 그 날 이후 -여기서 단체란 나와 남자친구 그리고 계속 나오는 그 친구- 우리는 스탠소프에서 물고기가 잘 잡힌다는 댐으로 향했다. 아, 낚시 장비를 가지고 있는 하우스메이트 요코도 함께갔다. Storm King Dam(스톰 킹 댐)이라 불리는 차로 30분 거리의 댐으로!

 도착한 곳에는 수상레저를 즐기는 아저씨와 캠핑하는 가족 그리고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가자마자 물 가까운 곳으로 성큼성큼 들어가 막무작정 낚싯대를 던졌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 반응을 하는건 풀숲에 숨어있던 모기떼들 뿐...





 댐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크기도 그렇고 풍경도 그렇고 댐 보다는 호수에 가까운 느낌. 사실 댐 자체가 나에게 친숙한 개념이 아니라 댐이 일반적으로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한 개념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무튼 생각보다 예쁜 풍경에 좀 놀랐다.



낚시하는 요코



 낚싯대가 두 개 밖에 없어서 사이좋게 번갈아가며 낚싯대를 던졌다. 미끼로는 요코가 가지고 있는 낚시세트 안에 들어있던 가짜 미끼(루어, lure)를 사용하고 있었다. 일명 루어낚시라 불리는 그것. 미끼가 가짜여서인지 아무리 던져도 별 반응이 없었다. 똑똑한 물고기들 같으니라고는..



꿈틀꿈틀이



 그래서 준비한 진짜 미끼 지렁이! -는 사실 옆에서 낚시하던 아저씨가 다 썼다면서 쓰라고 던져주고감- 한참 호기심 넘치던 초등학생 시절 비가 온 다음날이면 학교 운동장에 널브러져 있는 지렁이들을 가지고 놀곤 했었던 추억이 새록새록 피어올랐다. 꼬물딱꼬물딱 움직이는게 귀여웠던 미래의 물고기밥들.





 운 좋게 얻은 진짜 미끼 지렁이로 물고기를 낚기 위해 낚시 바늘에 지렁이를 관통시켰다. 병원 간호사들이 환자 팔에 주사기를 찌를 때 이런 느낌일까.






 지렁이를 달면 물고기가 던지는 즉각 잡힐 줄 알았는데 여전히 조용했다. 잡히는 물고기는 없고 지렁이는 자꾸 없어지고.. 오늘 저녁은 매운탕이 될 거라며 신나있던 아까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없다. 어느 순간부터는 재미가 떨어져서 내 차례인데도 낚싯대를 남자친구에게 양보하고 사진만 찍었다. 다행히도 풍경은 좋았다.



월간낚시 10월호 / 스탠소프편



 그러던 중 갑자기 '오오옷!!!' 하는 괴성이 들렸다. 또 낚싯줄이 꼬였는가보다 했는데 끌어올리는 낚싯줄에 뭔가 걸려 올라오는게 보였다. 진짜 물고기였다! 우왓!!!

 


파닥파닥



 확실히 진짜 미끼인 지렁이가 효과가 있었는가보다. 물고기를 잡다니! 몇 시간동안 낚싯대를 던지며 보낸 시간이 값진 시간이 되는 순간이었다. 나도 신나고 친구들도 신나고 직접 물고기를 낚아올린 남자친구는 완전 신이 났다. 눈누난나 :D



그렇게 그들은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



 운좋게 첫 물고기가 잡힌 후 남자친구가 물고기를 낚은 자리는 명당이 되었다. 그만 하고 집에 가자던 친구들은 아예 엉덩이를 깔고 앉아 말없이 낚싯대만 던져댔다. -이와 함께 계속된 죄없는 지렁이들의 익사와 물고기밥 신세.. 미안 지렁이들아- 





 바늘에 지렁이가 관통된 낚싯대는 계속해서 던져지고, 물고기는 소식이 없고, 해는 저물어갔다. 해가 넘어가는 순간 하늘을 닮은 댐의 모습이 참 맘에 들었다. 동시에 사람이 넷인데 왜 물고기는 한 마리 밖에 주지 않는건지, 왜 벌써 집에 가라며 어두워지는건지 애석하기도 했다.

 남자친구가 잡은 물고기 한 마리를 비닐봉지에 소중하게 담아들고서 우리는 엉덩이를 탈탈 털고 일어섰다. 집에 갈 시간이었다.





 집에 도착해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또다른 홍콩 친구에게 잡은 물고기 자랑을 하고는 바로 물고기 손질에 나섰다. 물론 나는 아니었다. 살아있는 물고기를 만지는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일이었지만 이 물고기를 베고, 썰고, 자르는건... 마음 약한 나에게는 힘든 일이었기에. 처음이지만 너네한테 맡기면 안될 것 같다며 나선 친구가 칼로, 가위로 물고기를 손질하는 걸 나는 옆에서 구경만 했다. 징그럽다고 말하면서도 신기해서 계속 보게되는 장면이었다.



냠냠



 그렇게 손질된 물고기는 버터를 잔뜩 바른 후라이팬 위에서 노릇노릇하게 구워져 우리의 저녁 반찬이 되었다. 잡았을 땐 꽤 크다고 생각했었는데.. 요리를 하고나니 일인당 한 마리를 줘도 모자랄만큼 작은 크기가 됐다. 그럼에도 우리는 콩 한 쪽을 나눠먹듯 사이좋게 나눠먹었다. 쫄깃쫄깃하니 맛만 좋았다. 혹시나 먹으면 안 되는 물고기일까봐 걱정했었지만 다행히 아무도, 아무 이상도 없었다. 어쩌면 너무 소량만 먹어서 별 이상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첫 물고기 맛을 본 이 날 이후 우리는 본격적으로 낚시세계에 입문하기에 이른다. K-Mart에 가서 친구가 가진 것과 같은 낚시세트도 구입했고, 버섯 농장이 쉬는 날이나 일찍 끝나는 날이면 여기저기로 낚시를 다니고 있다. 안타깝게도 나는 아직 한 마리도 잡아보지 못했지만.. 조만간 브리즈번 근교 바다로 -아마도 *레드클리프*숀클리프 쯤- 낚시여행을 갈 계획도 가지고 있다. 다음 번에는 내가 잡은 물고기'들' 사진을 팡팡 찍어서 블로그에 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섯 명이서 나눠먹어도 배부를 정도로 커다란 물고기로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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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Darney

그만 좀 싸돌아다녀 이것아
@darney.trav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