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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지기들과 기타큐슈로 떠난 쩐다투어]

-EPISODE 08-

하루에 3만 보는 걸어줘야 여행 아니겠니?

 

 

 

 사람들은 모두들 저마다의 여행 스타일을 갖고 있다.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는 여행,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힐링하는 여행,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는 여행 등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여행 스타일 중 내 여행은 '사서 고생하는' 스타일에 속한다. 물론 여행 계획 단계에서부터 고생을 추구하는건 아니다. 나도 모르게, 어쩌다보니, 가다보니 고생을 하게되는 것 뿐. 과거 스무살 패기에 젖어 자전거 타고 제주도를 한 바퀴 돌았던 경험, 발이 푹푹 빠지는 *호주 골드코스트의 해변가를 6시간 내내 걸은 경험, *스페인 시체스에서 막차를 놓쳐 추운 새벽 길거리에서 벌벌 떤 경험 등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요약하자면 '나와의 여행 = 개고생'인 셈.. 하지만 고생한만큼 남는게 추억이지 않은가. 곧 '나와의 여행 = 개고생 = 진득한 추억'이라고 나름대로 정리하고 싶다.

 

 서두를 이렇게 시작한 것은 기타큐슈에서의 여행 또한 진득한 추억이 되었음을-=개고생의 연속이었음을- 의미한다. 글 제목에서 보이듯 하루에 3만 보 씩이나 걸으며 진득한 추억을 쌓게 된 이야기를 지금부터 시작해보겠다.

 

 

검은 고양이
시모노세키에서 만난 검은 고양이

 

 

 언제나 개고생과 함께하는 내 여행 스타일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여행 전 친구들에게 미리 선전포고를 해둔 바가 있다. "나랑 여행가면 열에 아홉은 개고생이야. 얼마 전 베트남 여행 때는 땀 뻘뻘 흘리면서도 하루에 3만 보를 걷고는 했지."라고 말했는데 아무래도 이게 복선이 된 것 같다. 공포의 3만 보...

 

 

하이! 카랏토 요코초(はい!からっと横丁)
하이! 카랏토 요코초(はい!からっと横丁) 놀이공원

 

 

 이번 시모노세키 여행을 준비하면서 꼭 가보고 싶은 곳이 하나 있었다. 그곳은 바로 시모노세키와 간몬해협(関門海峡)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한 히노야마 공원(Hinoyama Park, 火の山公園). 어느 여행 사이트에서 이 공원에서 보는 노을이 그렇게 아름답다는 누군가의 후기를 보고 방문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전망 좋은 히노야마 공원까지 올라가는 케이블카도 있다기에 일몰 시간에 맞춰 케이블카를 타면 완벽할 것 같았다.

 사실 오후 내내 시모노세키 구석구석을 싸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낸 것도, *하이! 카랏토 요코초(はい!からっと横丁) 놀이공원의 관람차를 타지 않은 것도 다 이를 위한 계획이었다. 그만큼 히노야마 공원 전망대에서 보게 될 풍경에 대한 기대가 컸다.

 

 

시모노세키 풍경

 

 

 어느덧 기다리던 일몰 시간이 다가오고.. 우리는 이 날의 하이라이트를 위해 히노야마 공원으로 향했다. 아쉽게도 공원까지 가는 버스가 없어 걸어가야만 했다. -버스가 있는 것 같긴 한데 구글이 몰라서 나도 모름.- 바닷 바람이 부는 해안가를 따라 걸으면 약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 이 때도 벌써 하루 걸음 수 만 보를 넘었을 때라 다들 지쳐있는 상태였지만, 곧 타게 될 케이블카와 일몰 풍경에 대한 기대와 옆으로 드넓게 펼쳐진 푸른 바다 풍경에 힘을 얻으며 열심히 걸었다. 뭐 입에서 절로 나오는 아이고아이고 소리까지 막지는 못했다만.

 

 

시모노세키 풍경
시모노세키 풍경

 

 

 날씨 앱이 알려준 일몰 시간까지 남은 시간은 약 40분, 케이블카 승강장까지 걸어가는데 걸리는 시간 약 30분. 시간이 넉넉치 않아 앓는 소리를 내며 뒤따르는 친구들을 빨리 오라며 보채기도 했다. 이 때 당시 내 머릿속에는 온통 저~ 멀리 어렴풋이 보이는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에 올라가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기타큐슈에서만 볼 수 있다는 최고의 전망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아카마신궁(赤間神宮)
아카마신궁(赤間神宮)

 

 

 걸어가는 길에 만난 유명한 아카마신궁(赤間神宮)도 사진 한 장만 남긴 채 지나칠 수 밖에 없었다. 아쉽지만 다음 기회에..

 

 

간몬교(関門橋)

 

간몬해협(関門海峡)
간몬해협(関門海峡)

 

 

 목적지인 공원에 가까워지고 일몰 시간에 가까워짐에 따라 하늘이 점점 금빛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하늘색을 그대로 머금은 간몬해협의 바다색도 같이 금빛으로 물들며 방정맞은 우리와는 썩 어울리지 않는 로맨틱한 배경이 만들어졌다. 주변 배경이 예쁘니 걸을 맛 나고 좋았다. :)

 

 

간몬교(関門橋)
간몬교(関門橋)

 

 

 조금씩 더 가까워지는 간몬교(関門橋),

 

 

저 멀리 보이는 케이블카!

 

 

 그리고 드디어 또렷하게 보이는 케이블카! 하지만 이 후로도 한참을 더 걸어야했다. 케이블카 승강장이 있는 산 중턱까지 오르막길을 걷고 또 걷고. 그래도 이제 다 왔다는 생각으로 꾹꾹 참으며 힘내서 언덕을 올랐는데.. 열심히 올랐는데........

 

 

히노야마 공원 케이블카
히노야마 공원 케이블카 문 닫음..

 

 

 아, 인생... 30분을 넘게 걸어 겨우 도착했건만 케이블카 운행시간 종료 후였다.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움도 크고 허탈감도 컸다. 믿을 수 없는 현실에 한참이나 주변을 서성였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그제야 히노야마 공원 공식 사이트에 들어가 확인한 케이블카의 운행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조금 전 걸어오면서 보았던 케이블카가 이 날의 마지막 케이블카였던 것이다.

 

 이러려고 여기까지 그렇게 열심히 걸어왔나 자괴감이 들고 괴로운 순간이었다. 무엇보다 나만 믿고 계속 따라 걸어준 친구들에게 미안함 마음에 어디 구석으로 도망가고 싶었다. 쩐다투어를 이끌 자격이 없는 사람이야 난...

 


 

 

히노야마 공원

 

 

 아픈 다리와 충격 받은 마음을 진정시키고자 뭔가 신의 은총이 내릴 것만 같은 곳에 잠시 자리를 잡고 앉아 명상의 시간을 가졌다. 케이블카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이곳.. 대체 우리는 지난 몇 분 간 무엇을 위해 그토록 열심히 걸었던가.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아카마신궁이나 제대로 둘러보고 올 걸 그랬다. -흑흑...-

 

 

간몬교

 

히노야마 공원
하산하는 쩐다투어

 

 

 정말 너무너무너-무 아쉬웠지만 산 중턱에서나마 감상한 풍경을 끝으로 내려와야만 했다. 허망한 마음을 무엇으로 달랠 수 있겠느냐만은, 걸어오는 길 내내 감상한 바다 풍경과 기나긴 시간동안 개고생을 함께해 준 친구들이 있었기에 그래도 값진 시간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친구들은 -의외로- 너그럽게 고생시킨 나를 용서해주었다. 사실 용서를 해줬다기 보다는 다들 새벽부터 돌아다니느라 욕을 하거나 원망을 할 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지만. 아무튼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너희들에게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구나..♥

 

 

간몬터널
간몬터널 시모노세키 입구

 

 

 하지만 아직 3만 보까지는 한참 남은 상황. 내 기억으로는 저 산에서 내려왔을 때가 22,000보 쯤 되었던 것 같다. -이 후로도 더 개고생이 이어졌음을 의미-

 산에서 내려와 향한 곳은 바로 시모노세키와 모지코를 잇는 또다른 통로인 해저터널, 이름하여 간몬터널 되시겠다. 마침 산 바로 아래에 간몬터널 입구가 있어 모지코로 돌아가는 수단으로 이를 선택했다. 마음 같아서는 올 때 탔던 페리를 타고 편하게 돌아가고 싶었지만 페리 정거장까지는 또 30분을 걸어가야 했기에.. 그냥 터널을 걷기로 했다. 이러나저러나 걷기의 늪.

 

 

간몬터널 엘리베이터
간몬터널 엘리베이터

 

 

 간몬터널은 세계 최초의 해저터널로 보행자용 터널의 길이는 약 780m라고 한다. 보행자는 사진과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터널을 건널 수 있으며 통행료는 무료다. 자전거나 오토바이 소지 시 20엔의 통행료가 부과된다. 가진 거라곤 튼튼한 두 다리 밖에 없는 우리는 통행료 없이 당당하게 해저터널로 입성(?)하였다. 끝없이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면 만화에서 보던 것처럼 투명 터널 밖으로 물고기가 보이는 풍경이 펼쳐지지 않을까 잠깐 상상해보기도 했다.

 

 

간몬터널 스탬프 인증샷! Thanks to 도장 찍는 윤공무원

 

 

 기대하던 것처럼 물고기가 반겨주는 투명 터널은 아니었지만 관광객들을 위한 소소한 재미요소가 있는 곳이었다. 엘리베이터 내리는 곳 근처에 간몬터널 스탬프를 찍을 수 있는 곳이 마련되어 있어 우리도 관광객 티를 팍팍내며 도장 찍고 인증샷도 찍었다. 도장은 시모노세키 쪽 입구에서 반, 모지코 쪽 입구에서 반을 찍어 완성하는 형태였다. 이곳에서는 도장 찍는데에 능숙한 윤공무원씨께서 그 솜씨를 발휘해주셨다. 확실히 도장도 찍어본 사람이 맛을 안다고(?) 아주 똑바르고 예쁘게 도장을 찍어줘서 만족스러웠다. 도장 찍기에는 공무원이 최고!

 

 

간몬터널
육상 트랙 같은 간몬터널

 

 

 해저터널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길었다. 끝에서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 바닥에 그려진 것도 그렇고 어딘가 육상 트랙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실제로 이곳에서 저녁 운동을 하는 주민분들이 많았다. 길도 곧게 뻗어있고 경사가 심하지도 않으니 매일 가볍게 달리기 좋은 곳인 것 같기는 하다. 

 

 

간몬터널
간몬터널을 터널터널 걷는 쩐다투어

 

 

 여태껏 경험해보지 못했던 특별한 해저터널 속 우리는 바닥 난 체력을 쥐어짜서 걷고 또 걸었다. 얼른 이 길이 끝났으면, 얼른 밥 먹고 집에 가서 쉬었으면.. 하는 마음 뿐이었다. 너무 힘들어...

 

 

간몬터널
혼슈와 규슈 경계에서 쩐다

 

간몬터널
혼슈와 규슈 사이에서 조개굴

 

 

 하지만 그 힘든 와중에도 기타큐슈와 시모노세키의 경계선에서는 놓치지 않고 인증샷을 남겨왔다. 당시에는 여기가 혼슈(本州)와 규슈(九州)의 경계인지, 아니면 제정신과 멘붕의 경계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참.. 힘들었다.

 

 

 다시 생각해봐도 정말 빡센 하루였다. 새벽 4시에 집을 나와 비행기를 타고, 기타큐슈에 도착해 짐을 풀고 시모노세키로 가서 신나게 관광하고.. 숙소에 돌아가 바닥에 쓰러진게 오후 9시 쯤이니 하루 24시간 중 17시간을 눈 뜨고 돌아다닌 셈이다. 핸드폰이 기록해준 이 날의 걸음 수는 28,251보. 아침저녁 집에서 화장실 왔다갔다 한 걸음 수를 합해 영혼까지 끌어모으면 3만 보 되지 않을까? -ㅎ_ㅎ..-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고생한만큼 기억에 오래 남을 하루였다. 당시에는 친구들의 힘들다는 말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제는 '그랬기 때문에 더 기억에 남는다.'는 말에 뿌듯함을 느끼곤 한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이런 걸 의미하는가 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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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큐슈로 떠난 쩐다투어 | 2017.10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댓글,

Darney

그만 좀 싸돌아다녀 이것아
@darney.travel